우리 인물 세계와 통하다
“세계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변화한 섞임의 결과가 우리 역사이다.”
KBS 역사스페셜, 비범했지만 역사 속에 묻힌
사람들의 기록을 추적해 재구성하다
역사가 당대 집권자들의 논리에 의해 쓰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권을 좌지우지하던 권력자들에 의해 수많은 인재들의 업적이 정사(正史)에 기록되지 않았고, 그 결과 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KBS 역사스페셜 제작팀은 지금껏 조명되었던 위인들이 아닌 당대 비범했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람들의 기록을 실마리 삼아 역사를 재구성한다. 그들의 삶을 통해 역사적 사건, 사고만이 아닌 개인의 삶이 역사임을 검증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 인물, 세계와 通하다]는 그 노력의 결과물로써 당당히 역사의 한축을 담당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의 신분을 지키기 위해 소송을 했던 노비 다물사리, 조선시대 평범한 무관으로써 자신의 일상을 68년간 일기로 쓴 노상추, 멸망한 백제의 마지막 공주로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정략결혼도 마다하지 않았던 부여태비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의 삶을 추적해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실권자들이나 정책 결정자들, 사건이나 사고 등만이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는 요즘. 이 책은 현대인들에게 눈에 보이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역사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수많은 개인들의 삶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해준다. 결국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우리 자신임을 알게 해준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1장은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 이야기들로 조선판 브리태니커 [임원경제지]를 쓴 서유구와 표류민으로 일본과 필리핀, 중국을 돌아보고 온 홍어 장수 문순득, 의자왕 이후 우리나라 역사서에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았던 백제의 마지막 150년을 추적할 수 있게 해준 부여태비 등 뛰어난 개인들의 삶을 다루었다. 2장에서는 조선 무관 노상추의 68년간의 일기를 비롯해, 노비 다물사리의 소송 판결문, 방랑 시인 김삿갓의 수많은 시, 안동 선비들의 계모임을 그린 [임계계회도] 등 당시 문화와 시대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개인들의 소소한 기록들을, 3장에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우리 영웅들 이야기들로 울릉도를 처음으로 한반도 영토로 편입시킨 신라 장군 이사부, 명성황후의 원수를 벤 고영근, 무장 투쟁으로 독립을 꿈꿨던 독립투사 박상진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온 많은 비범한 사람들의 삶, 역사 속에서 한 축을 담당한 주인공이었던 사람들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유럽 강타한 K-POP 열풍도 개인의 열정에서 시작!
비범한 개인의 삶,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기다
얼마 전 유럽을 강타한 한류에 대해 기사가 나온 적 있다. 문화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에서 우리나라 아이돌이 가요계를 평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콘서트는 매진되고, 심지어 2차 콘서트를 열라고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콘텐츠가 일본을 비롯해, 미국, 유럽에까지 점차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시도와 열정’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시도들은 비단 현재형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다. 특히 조선판 브리태니커라고 불릴 만큼 방대한 지식을 집대성한 서유구. 영국이나 프랑스의 백과사전들이 수십, 수백 명의 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결과물이라면 [임원경제지]의 경우 서유구 개인의 업적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또 조선시대 홍어 장수 문순득은 일본과 필리핀, 중국에 표류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현지어도 배우고, 생활한다. 표류민으로 낯선 곳에서 위축된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들의 언어를 배워 면밀히 관찰했다. 하멜이 표류기를 써서 유럽에 한반도에 대해 알린 것처럼 실은 문순득은 제대로 접해보지 못했던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새로운 정보들을 기억해 와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서유구나 문순득은 개인이지만 그들의 삶은 세계인으로서의 면모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역사적으로 조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무려 200년 전에 쓰인 [임원경제지]를 보고 현대 건축가가 영향을 받는 것처럼 ‘산다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유구나 문순득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사회에, 역사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개인의 삶은 어떻게든 역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인물, 세계와 通하다]는 이렇게 점이 모여 선을 이루고, 선이 모여 면이 되는 것처럼 결국 평범한 사람들쟀 삶이 모여 사회가 변화하고,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