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석원의 서울연가
기억 속 서울의 풍경과 사람을 말하고 그리다
화가 사석원의 진짜 서울 이야기
서울 토박이 화가 사석원이 자신의 기억을 따라 서울 구석구석을 훑으며, 인정이 흐르는 풍경과 추억의 장소를 탐방한다. 놀라운 기억력으로 써 내려간 작가의 서술은 한 남자의 성장기이자 당시를 산 서울 남자 모두의 역사이기도 하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알고 있던 진짜 서울의 속살.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들. 화가로서 그만의 정감 어리며 솔직한 그림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동양과 서양의 미학을 한 폭의 그림에 모두 담는 화풍으로 미술계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인기 화가 사석원.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입담 또한 특출한 재주 많은 작가이다. 국내뿐 아니라 뉴욕, 파리, 도쿄, 홍콩 등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며 활발한 활동을 하는 중에도 자신만의 글을 써 이미 몇 권의 책을 출간했다.
소문난 풍류객인 그는 전국 각지의 대폿집을 돌며 써 내려간 《막걸리 연가》, 쿠바 여행 에세이 《황홀한 쿠바》 등 다수의 책을 출간하여 글 작가로서도 인정받고 있다. 그의 글은 자신의 그림처럼 언제나 정감 어린 사람의 냄새와 따뜻한 해학이 묻어난다.
《사석원의 서울연가》는 그의 그림과 글이 오롯이 들어간, 사석원만이 쓰고 그릴 수 있는 특별한 책이다. 서울 토박이 중년으로서 수개월간 일간지에 연재하며 쓰고 그린 진짜 서울 이야기. 1960년생으로 386세대의 맏이라 할 수 있는 한 화가가 복원한 생생한 기억과 추억에 독자들은 젖어들었다. ‘못 다한 연가’ 등 연재 후 보태고 다듬은 글과 그림이 덧붙여진 《사석원의 서울연가》는 19편의 연가와 이 책을 위해 그린 35점의 그림을 수록하며 태어났다.
때로는 부끄럽고 안타까운 회상도 있었다. 아프기도 했고 희열에 몸을 떨기도 했다. 청춘이니 그랬었다. 사랑과 욕망과 열정의 시기였다. 많은 이들이 내 낯짝의 두꺼움을 수군거렸다. 그렇지만 뻔뻔하게도 그런 많은 얼룩들을 스스럼없이 발설한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본 비슷한 세대들에겐 공감하는 마음이 있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맞아, 그땐 그랬었지. 그래 나도 그랬어! 아, 그건 바로 내 얘기야.” 그 시절에 서울서 청춘을 보낸 사람들에게 듣고 싶은 말이었다. 그것이 철면피라는 질시를 감수하고 이 책을 쓰게 된 진정한 동기였다. 비록 잘했다고 힘찬 박수는 받지 못할지라도 저마다 지나온 청춘을 잠시 돌이켜 보는 여유를 갖게 된다면, 그래서 살아온 세월을 그리워하고 그 모진 시대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면 나로선 분에 넘치는 과찬인 셈이다.
- 「서문」에서
한 남자의 성장기이자 당시를 산 서울 남자 모두의 역사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알고 있던 진짜 서울의 속살
사랑하는 대상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연가’. 작가는 이 책에 사랑했고 그리워한 마음을 담아 한 편씩 연가를 써갔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을 거쳐 중년이 되기까지 토박이로서 세월을 보낸 서울 안에 그 대상들이 있다. 때로는 사람을 추억하고 때로는 장소를 기억하며 써간 그의 연가는 서울에서 세월을 보낸 이들이 공유하고 공감하는 모두의 역사이기도 하다.
사람의 기억은 모두 다르겠지만 이미지를 명징하게 구현해내는 화가가 들려주는 기억 속 서울은 그 세밀한 묘사와 뚜렷한 색감이 놀랍기만 하다. 서울 안 추억의 장소를 한 곳씩 찾아가 들려주는 그의 연가는 잊고 있던 우리의 추억을 왁자한 술자리에서 꺼내는 친구처럼 반갑고 즐겁다.
서울의 맛, 서울의 멋, 서울의 색으로 나눠 각 6편의 연가를 담은 《사석원의 서울연가》. 작가는 자신의 그림과 술이 시작된 광화문, 풍류와 인생을 배운 국보급 식당의 거리 을지로, 전통의 광장시장 속 그만의 단골집 등을 찾아가 서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맛의 명맥을 탐방한다. 서울의 맛을 그대로 간직한 보물 같은 장소들은 이 책이 소개하는 특별한 명소로 다가온다.
예술인들이 모였던 옛 명동의 추억, 온갖 고수들이 모이는 문화의 거리 대학로, 미술의 중심지 인사동에 관한 이야기는 그가 겪고 만난 사람들에 관한 생생한 기억이다. 시간의 지층이 쌓이며 자아낸 오묘한 서울의 멋이 작가의 솔직하고도 대담한 입담으로 생생하게 펼쳐진다.
끊이지 않는 정치적 소요가 검은 구름이 되어 장막을 드리운 1980년대의 서울은 성장의 진통과 함께 밤의 거리가 오히려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그 시절을 겪은 이들이 공유하는 서울의 색은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원색적인 서울의 속살이다. 춘천으로 떠나는 청춘의 출구이자 욕망의 입구 588이 있는 청량리역, 대학 시절 작가의 화실이 있던 아현동 ‘싸롱’거리의 풍경과 기억, 어르신들이 간직한 여전히 젊은 욕망이 모이는 종로 탑골공원 일대 등에 관한 단상은 화가인 작가가 느낀 서울의 색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작가는 책의 마지막 ‘못 다한 연가’에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간직해온 기억 속 서울의 면면을 하나씩 덧붙여 풀며 서울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고백한다. 서울은 그에게나 그곳에서 살아온 다른 이들에게나 엄마 같은 곳, 그 품에 안겨도 그리운 엄마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사석원의 서울연가》는 가장 변화무쌍했던 격동의 시간을 서울과 함께 나이 들어간 서울 속 우리에게 바치는 사석원 작가의 연가이기도 하다.
갑자기 칼바람이 분다. 이런 날은 내 단골이 있는 종로5가 광장시장의 좌판주막에 가고 싶어진다. 그곳의 장터 의자엔 등받이가 없지만 서로가 어깨를 빌려주며 추위와 피곤을 이겨낸다. 서울을 삭막한 비정의 도시라고 말하는 이도 많지만 그것은 선택하는 자의 몫이다. 서울이 세월의 흔적을 점점 잃어버린다는 우려도 많지만 그것 역시 서울 사는 우리가 해결할 몫이다. 내일의 서울이 끔찍한 서울이 될지 빛나는 서울이 될지는 지금 얼마나 서울에 애정을 갖고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내게 서울은 엄마다. 날 낳아주고 길러주신 애틋한 엄마 말이다. 엄마란 그 품에 안겨 있어도 엄마가 그리운 존재. 나이 들어도 더 깊숙이 엄마 가슴팍에 파고들고 싶어진다. 아! 따뜻하다. 서울에 살어리랏다. 추억과 사랑을 먹고 서울에 살어리랏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