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구암 허준
MBC 드라마로 방송되는 <허준>을 읽다.
2013년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
유네스코 《동의보감》 발간 기념의 해로 지정!
허준은 서자도 아니고 유의태의 제자도 아니었다. 양반의 제자로 태어나 사서오경을 읽어 경사에 두루 통달했고, 양예수와는 선후배로 협력하여 내의원을 이끌었다.
이 소설에는 실존인물들인 당대 최고의 의원 양예수, 허준, 허임, 전유형이 등장하여 다채롭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조선 최고의 침의 허임, 조선 최초의 해부의 전유형, 그리고 길에서 만난 무수한 의원들….
양예수와 허준은 쌍벽을 이루는 인물이다. 허준은 양예수와 함께 의서를 편찬하기도 하고 선조의 진료를 함께하기도 했다. 양예수가 나이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훌륭한 선배라고 할 수 있다.
허준은 침술의 대가가 아니었다. 침술의 대가는 허임으로 조선 최고의 침의라는 평가를 받았다. 허준은 침술보다는 본초, 탕약 쪽에 더욱 높은 실력을 갖고 있었다.
허준이 동양 최고의 의원으로 평가받는 것은 의술로서가 아니라 의서의 편찬에 있다. 허준은 《동의보감》뿐이 아니라 언문으로 된 세 권의 책을 펴내 의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치병제중, 병을 다스려 백성을 구하려고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허준은 임상의로서가 아니라 학의(學醫)로 더 높게 평가받는다.
허준은 《동의보감》 편찬에 자신의 일생을 걸었다. 《동의보감》이 완성되었을 때 광해군은 그의 공로를 칭송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양평군 허준은 일찍이 선왕 때 의방(醫方)을 찬집(撰集)하라는 명을 특별히 받들고 몇 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였는데, 심지어는 유배되어 옮겨 다니고 떠돌아다니면서도 그 일을 쉬지 않고 하여 이제 비로소 책으로 엮어 올렸다. 생각건대, 선왕께서 찬집하라고 명하신 책이 과인이 계승한 뒤에 완성을 보게 되었으니, 나는 비감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허준에게 숙마 한 필을 직접 주어 그 공에 보답하고, 이 방서(方書)를 내의원으로 하여금 국(局)을 설치해 속히 인출(印出)케 한 다음 중외에 널리 배포토록 하라.
허준은 유배를 다니면서도 《동의보감》 편찬에 전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은 한의학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 청나라에도 건너가 출판되어 편작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400년 전에 이 거대한 의서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전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허준은 불의의 명저가 간행되고 5년이 지난 1615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