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마음따라 세계일주
≪세계일주 여정표≫
한국─중국─러시아─벨라루스─우크라이나─헝가리─오스트리아─체코─독일─프랑스─이집트─탄자니아─이집트─스페인─포르투갈─스페인─미국─캐나다─미국─멕시코─과테말라─엘살바도르─니카라과─코스타리카─파나마─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아르헨티나─우루과이─아르헨티나─칠레─아르헨티나─파라과이─브라질─페루─에콰도르─콜롬비아─쿠바─엘살바도르─온두라스─과테말라─멕시코─미국─한국
10년 전에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꿈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의 꿈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긴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언제나 크게 어긋나선 안 된다고 자각하고 있었고, 뛰어나게 잘난 건 없지만 그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이나 미래의 모습에 대해 적어오라고 하면 딱히 바라는 것이 없어서 남들이 많이 적는 것 중에 골라서 썼다. 초등학교부터 첫 직장까지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결혼하고, 애 낳고, 직장에서 승진하고 돈 버는 낙에 살다가 때가 되면 정년퇴직할 때까지 그것은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사실 그때 내가 얘기한 꿈은 꿈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색했다. 두 가지를 얘기했는데 하나는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선을 타는 것이었다.
첫 번째 것은 돈이 그렇게 많이 드는 것이 아니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실현 가능한 것이라 꿈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어색했다. 다만 그 뒤의 삶이 어떻게 이어질지 걱정스러웠을 뿐이고, 다만 시기가 문제였다. 그리고 우주여행은 몇십 년 지나면 비용이 많이 낮아질 테고 그때까지 열심히 돈 벌면 가능한 것이라 여겼는데 이것 또한 꿈이라 부르기엔 아주 사치스러운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아서 꿈이라 부르기도 어색했다.
한때 감정의 공황상태에 빠진 적이 있다. 하루에도 몇십 번씩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변화가 많았다. 기분이 우울하다가 밝아지고, 자신이 있다가도 없어지고 마치 조울증에 걸린 사람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도대체 원인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내 안의 나는 나보다 똑똑해서 나도 모르게 문제를 제시해 주었고 어떠한 문제든지 충분히 생각해서 결론에 이르면 다시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분노, 화, 짜증, 피곤, 고통, 슬픔, 통증, 갈증, 모두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단어이다. 그렇다고 꼭 나쁜 의미라고 해석할 수 없다. 때때로 안에서 올라오는 이러한 감정들은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재촉하는 신호이다. 그래서 부정적으로만 인식할 만한 것은 아니다. 목마름이 없으면 상쾌한 물맛을 알 수 없고, 배고픔이 없으면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처럼 이러한 감정의 상태가 없으면 행복과 쾌락이란 것도 의미가 없다. 안에서 보내는 다양한 신호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나니 두려움이 많이 줄었다. 떠날 준비가 된 것이다.
누군가와 여행을 같이 다니면 느낌을 서로 나누고, 새롭고 즐거운 곳에서의 기쁨은 훨씬 크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우선 함께 시간과 장소를 맞춰 가기가 쉽지 않고 설령 같이 가게 되더라도 함께하는 즐거움이란 게 항상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즐겁게 보내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다투며 지내다 돌아오는 게 부지기수니 말이다.
그렇다면 혼자 하는 건 어떤가. 쓸쓸함과 고독, 심심함의 연속이다. 그러나 같이 하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포기할 것만은 아니다. 꼭 같은 장소에 있어야만 그 느낌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느낀 감정이나 경험을 글로 옮겨놓는다면 나는 내면의 나와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이고,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같이 있지 않지만 나의 여행에 대해서, 나의 생각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해서 장황하게 얘기를 늘어놓지 않고도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내 글을, 사진을 보고 즐거워한다면 그것보다 기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이 글은 여행하면서 기록한 일기를 엮은 책이다. 너무 개인적인 시각에서 서술해서 글쓴이의 생각과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겠지만, 세계일주하는 기분으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1부 중국(중국 영토이지만 중국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곳을 여행한 것이라 소제목을 ‘중국’으로 하지 않았다) 편은 여러 번 나누어 여행을 했고, 2부는 중국을 지나 러시아를 필두로 세계일주를 하게 된 것을 대륙별로 엮었다. 부록으로 비용을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정리해 놓았다.
- 본문 ≪머리말≫ 중에서 발췌
긴 여행을 혼자 하며 중간중간 이런저런 생각할 시간이 많이 있었다. 그런 시간은 나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정작 그것이 뭔가라고 구체적으로 말하려면 말문이 막혀버리는 것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서도 정확한 답은 당연히 얻을 수 없지만 해답에 좀 더 가까이 가볼 수 있었다. 나는 어디에 있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사회가 정해 준 목적이 아닌 나의 목적에 맞춰서.
엄청 고생해서 목적지를 찾았는데 가보면 별 볼일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그 고생이 후회스럽진 않았다. 어쩌면 목적지 자체는 실제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그곳에 가기 위해 겪어온 그 길과 과정이 목적지 자체보다 더 소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상을 향해서 가되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 나의 목적은 아니었다.
≪중략≫
여행은 본능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한동안 출근하던 나의 회사는 한 갈래 길을 제외하고는 미로 같아 대부분 고정된 방향으로만 다녔다. 그런데 어쩌다 미로 같은 길에 잘못 들어서면 헤매기 일쑤였지만, 아주 시간이 촉박한 때가 아니라면 그 방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어떤 때는 일부러 그 미로 속에 빠지기도 하였다.
어느 날 공사로 자주 다니던 길이 막힌 적이 있는데, 그 전에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다면 나는 지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여행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과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길러주므로 생존본능에서 나온 것이지 단순히 즐기는 것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행이 꼭 즐겁고 행복해야만 좋은 여행이 될 이유가 없다.
내 소원은 죽음을 앞두고 내 삶을 돌이켜봤을 때 큰 후회 없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보냈노라고 느끼며 눈을 감는 것이다. 어떤 목표가 있는데 모두가 원하는 바를 다 이룰 순 없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이유로 소모한 시간이 모두 헛된 것이 된다면 목표를 이루지 못한 수많은 인생은 너무 쉽게 허망하게 될 것이다. 허망한 삶을 부정하기 때문에 오늘도 난 길고도 시간이 많이 드는 길을 비행기보다 싼 버스나 기차를 타고 천천히 구경하며 다닌다. 삶을 되돌아보니 꿈을 이루는 순간보다 꿈을 꾸고 있을 때가 더 즐거웠다. 한때 나의 꿈은 세계일주를 해보는 것이었지만, 지난 그 시간은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는 시간이었다.
본문 ≪맺음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