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디 러브
악, 내면화된 공포, 생존의 문제를 파헤친 역작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 조이스 캐럴 오츠 신작 공포소설
『대디 러브』는 1964년 데뷔 이래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편이 넘는 단편을 비롯해 시, 산문, 비평, 희곡 등 거의 모든 문학 장르에 걸쳐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오츠는 전미도서상을 비롯해 오헨리상, 브램스토커상, 페미나상, 시카고 트리뷴 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퓰리처상 후보에 세 차례 올랐으며, 특히 2004년부터는 영미권의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현대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하나다.
우울한 내러티브로 광기 어린 소시오패스의 건조한 내면 풍경을 그려낸 『좀비』를 연상시키는 또 한 편의 공포소설 『대디 러브』는 ‘유괴’라는 폭력에 희생당한 아이의 돌이킬 수 없는 인격 변화와 생존의 강박에 얽힌 이야기다. 젊고 지적인 엄마와 라디오 방송국의 인기 있는 디제이 아빠를 둔 호기심 많고 똑똑한 다섯 살배기 아들 로비가 유괴된다. 유괴범은 아이에게 ‘기드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면서 이 일은 신의 뜻이고,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이후 두 사람은 희생자와 포식자로서 예측할 수 없고 정상적인 감각조차 잃어버린 기묘한 유대와 공생을 시작한다.
오츠는 섬뜩하리만큼 현실적이고 위선적인 페르소나를 뒤집어쓴 ‘대디 러브’를 통해 다시 한번 악인의 내면에 자리한 파멸적인 욕구를 특유의 건조하고 차가운 문체로 그려낸다. 또한 사악한 억류자 밑에서 분열하고 타락해가는 아이를 통해 인간이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어떤 방식으로 타협하는지, 그저 생존이라는 목적을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자신의 진정성을 희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울하고도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다.
거장 오츠가 집요하게 탐구해온 생의 비극적 테마
참을 수도 달아날 수도 없는 부조리의 폭력과 파괴
다이너와 로비는 대형 쇼핑몰 주차장에서 자신들이 타고 온 차를 찾고 있다. 엄마는 평소 아이에게 주차장에서 차를 찾는 ‘책임’을 맡겼고, 다섯 살 로비는 오늘도 이 ‘숙제’를 하느라 초조하고 고단하다. 또 그녀는 이 와중에 아이에게 ‘직각’이 뭔지 가르치려 했다. 이때 그들을 주시하던 한 남자가 다가와 순식간에 로비를 차에 태워 도망치고, 뒤쫓던 엄마는 차 밑으로 끌려가다 피를 흘리며 무기력하게 거꾸러진다.
『대디 러브』는 아이가 유괴(2006년)되어 집으로 돌아오기까지(2012년)의 육 년에 걸친 서사를 총 3부로 나누어 기록한다. 1부는 유괴 직전부터 육 개월 후까지의 이야기다. 주차장에서 일어난 엄마와 아들의 가벼운 패닉은 그후 아동 유괴라는 커다란 공포로 이어지고,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처럼 아가리를 쩍 벌린 공포는 쓰러졌던 엄마가 일어나 경찰에게 사건을 설명하는 혼돈스러운 상황에서 길길이 날뛰다가, 만신창이가 된 그녀가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 이 가족의 삶을 완전히 집어삼키고 잠시 몸을 숨긴다.
“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어요…
그가 이를 드러내며 씩 웃는 것도 봤어요……”
아무도 상상하길 원치 않는 공포를 형상화하는 작가, 삶의 도처에 널렸으나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공포를 그리는 오츠는 ‘유괴’를 테마로 다시 한번 “참을 수도 달아날 수도 없는” 세상의 폭력과 불행의 순환을 탐구한다. 시간을 뒤섞고 비슷한 문장을 반복하는 미묘한 패턴의 서술은 읽는 이의 감정과 인식을 흔들며 불안을 새기고, 특히 1부에서 두드러지는 이러한 서술 방식은 아이 앞에서 강한 척하지만 무력하고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젊은 엄마의 내면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게 한다. 이기적이고 혹독했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다이너는 반발하듯 자신의 외아들 로비에게는 간절하고도 일방적인 사랑을 퍼붓지만, 육아는 이 젊고 예민한 엄마를 그리도 쉽고 빨리 지치게 만들곤 했다. 어머니에 대한 애증과 콤플렉스, 즐겁고 멋진 삶을 사는 사람이면 절대 느끼지 않을 무력감, 그리고 매일 타는 자동차 하나도 제대로 못 찾아 아이를 초조하게 만드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 그것을 숨기고 자기암시를 걸며 살아가던 지친 영혼의 엄마는 유괴라는 커다란 상실과 낭패 앞에서 순식간에 모든 주문이 풀려버린 실패자로 전락하고, 자신만만했던 아빠는 “포식자인 다른 존재에게 아들을 뺏”긴 힘없는 수컷 가장으로 추락한다.
유괴범 체스터 캐시는 자칭 공예가이자 교회를 돌며 설교하는 시간제 목사이며, 지난 수년간 아이를 납치하고 성적으로 학대하고 아이가 자라 더는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됐을 때 가차없이 살해하는 악행을 저질러온 소시오패스다. 소설의 2부는 바로 이 남자와 로비(기드온)의 기묘한 공생, 그리고 공황상태에 빠진 다이너 부부의 위태로운 희망을 그린다. 1부에서 아이를 빼앗긴 다이너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든 것처럼 2부에서는 대드 러브의 학대와 일그러진 사랑에 억눌린 로비(기드온)의 자아가 분열하고 타락하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간다. 로비의 변화는 이 소설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고, 공포감을 자아내며,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노예 같은 아들과 반항하는 아들이라는 두 인격으로 분리되어가던 로비에게 또다시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순종의 가면 밑에 숨겼던, 아빠(대디 러브)를 닮아가던 또다른 로비의 인격은 그로부터 어서 달아나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돌아온 소년이 감춘 균열과 불편한 미래의 진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구석을 파고드는 오츠의 힘을 증명하는 소설
오츠는 작품을 통해 폭력과 종교, 인종, 성차별, 계급 갈등 등을 꾸준히 이야기해온 작가다. 그녀는 폭력과 광기, 욕망과 파멸이 만연한 현실을 객관화해 그 안에 상존하는 은폐된 균열을 바로 보게 한다. 때문에 그녀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그로부터 우리가 보아야 할 진실은 무엇인가’이며, 이러한 점에서 오츠가 형상화하는 폭력은 미학적이고 숭고하다.
생존을 위해 대디 러브에게 종속되었던 아이는 또다시 생존을 위해 탈출을 감행한다. 아이의 탈출 소식에 언론은 유괴범의 행적을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네티즌은 익명성과 비대면성에 기대어 피해자 가족에게도 비방과 언어폭력을 퍼붓는다. 세상은 범인의 행적과 아이의 탈출 사실에만 관심이 있지만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는 그 이면의 것들이다. 폭압 속에 갇혀 살았던 아이의 자의식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이가 받은 폭력은 어떻게 발현될까, 그 치유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과연 도울 수나 있을까. 더불어 오츠는 우리에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던진다. 유괴범에게 아이를 잃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 아이에게는 어떤 대가가 기다리는가? 그리고 이 괴물의 심리는 무엇인가?
“모두 다 괴물이야. 알고보면 다 그래.”
소설은 로비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행동이나 그림으로 추측하게 하는데,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부모의 보호 아래 심리치료를 받는 로비가 그린 그림은 대디 러브와 살았을 때 그렸던 잔혹한 괴물의 그림과 얼마나 달라졌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인 그 그림은 끝까지 공개되지 않고, 이 두려운 추측에 방점을 찍는 가장 섬뜩한 단서는 3부이자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짧고 충격적으로 드러난다. 로비의 귀환으로 이제 행복하고 완전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다이너는 저주와도 같은 이 장면에서 소금기둥처럼 굳어버린다. 그것은 로비의 부모가 믿고 싶지 않았던, 외면하려 했던, 살아 돌아온 아이의 미래를 암시하는 장면이자, 폭력이 불러온 이 세계의 우울함에 대한 오츠의 계시다. 오츠는 언제나 “통제 못하는 어떤 패턴으로 고착된 개인의 감정”을 다룬다. 로비의 내면은 언젠가는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말 것이고, 그것이 ‘대디 러브’와 어떻게 다를지, 나약한 그의 부모들과는 또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진다. “폭력적이고, 일시적이고, 대규모이고, 추하고, 썩고, 천박하고, 히스테리하고, 미친 것처럼 융통성 없는 곳. 참을 수도 달아날 수도 없”는 세상에서 다시 생존을 위해 걸어가야 하는 열한 살 소년의 눈빛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 강렬한 기억을 우리에게 새길 것이다. 긴장감 넘치는 이 소설에서 오츠는 인간의 내면 어두운 구석을 탐험하는 데 그녀를 따를 이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