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박물관
불꽃처럼 살다간 조선의 위대한 수학자들과 수학을 만난다!
해마다 치러지는 수학능력시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과목 가운데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또 요즘 학부모들이 자녀를 영재로 키우기 위해 가장 많이 신경 써서 투자하는 과목은 뭘까? 이 두 가지 물음의 공통 해(解)를 구하면 바로 ‘수학(數學)’이다. 수학은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난해한 학문으로 알려져 왔다. 오죽했으면 대학에서 수학(修學)할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한다는 ‘수학능력시험’이 ‘수학(數學) 능력을 확인하는 시험’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까지 생겨났을까.
그렇다면 복잡하고 어렵게만 보이는 이 수학이라는 학문을 좀 더 즐겁고 흥미롭게 만나볼 수는 없을까? 이 책 『수학 박물관』의 저자 장혜원 교수(진주교육대학교 수학교육과)는 조선시대 수학자들의 삶과, 그들이 수학을 통해 우리 역사에 꽃피웠던 찬란한 결실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그 해법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수학을 ‘역사와 문화의 언저리에서 여행하듯 따라가 보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산학서 번역’에 참여한 뒤에 이와 관련된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해 온 저자는, 중인 및 사대부 출신 수학자들의 특징과 독창적인 풀이방식은 물론이고, 수학에 관심을 갖고 이를 국가적으로 장려한 군왕들의 행보와 업적까지 구체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수학에 좀 더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불꽃처럼 살다간 그들의 치열한 학구열과 당시 대국이었던 청나라 대수학자마저 굴복시켰던 창의성 등을 추적해 봄으로써,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 숙제라 할 수 있는 학습법과 교육 방향까지 지혜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중인에서 군왕까지 11명의 학자들이 엮어낸 ‘조선 수학의 모든 것’
3부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업(家業)으로 수학(당시에는 산학算學이라고 했음)에 종사했던 중인 출신의 수학자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1부 1장에서는 중인 출신 수학자 홍정하(洪正夏)가 등장하는데, 그는 당시 청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대수학자 하국주(何國柱)와 대담하면서, 조선의 수학 수준을 얕잡아보던 상대를 단숨에 꺾어버린 사람이다. 저자는 이 역사적 명장면을 설명하면서, 당시 산학(算學)의 명문이었던 홍정하의 집안과 그가 남긴 『구일집(九一集)』이라는 산학서를 소개한다. 2장에서는 조선 최고(最古)의 수학책 『묵사집산법(默思集算法)』의 저자 경선징(慶善徵)이 그 자신만의 해법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열정적인 장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한 3장과 4장에서는 신분을 초월해 공동연구를 한 중인 이상혁(李尙爀)과 사대부 남병길(南秉吉)이 등장한다. 남병길은 『산술관견(算術管見)』과『익산(翼算)』이라는 이상혁의 저서에 서문을 써 주었고, 이상혁은 남병길의 저서인 『측량도해(測量圖解)』의 서문을 쓴 것으로 추정됨으로써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들은 함께 조선의 수학을 이론화하는 데 힘쓴 인물들이다.
남병길을 시작으로 제2부에서는 사대부 출신으로 수학을 연구했던 조선의 수학자 다섯 명이 등장한다. 5장에서는 철학으로 수학을 풀어낸 최석정(崔錫鼎)과 그의 저서 『구수략(九數略)』이 소개되는데, 그는 수학을 『주역(周易)』의 관점에서 조망했던 독특한 수학자였다. 수학적 원리가 진하게 배어 있는 『주역』의 64괘에서 ‘2진법’의 원리를 이끌어내고, 『구수략』을 통해 ‘마방진’을 소개함으로써 조선 전역에 그 명성을 떨쳤다. 6장에서는 어머니에게 수학을 배운 홍길주(洪吉周)와 그의 어머니 영수합 서씨(令壽閤 徐氏)를 소개함으로써, 수학교육에 있어서 가정교육의 중요성과 자녀교육을 위해 온갖 지혜를 동원했던 사대부 집안의 모범적인 사례들을 접할 수 있다.
또한 7장에서는 음악과의 조화 속에 수학을 꽃피운 홍대용(洪大容)이 등장하는데, 금(琴)이나 슬(瑟)을 잘 다루던 그는 중국의 천주교 성당에서 생전 처음 접했던 파이프오르간으로 거문고 곡조에 따라 조선의 음악을 연주한다. 뛰어난 수학자이면서 동시에 탁월한 천문학자였던 그는, 지구가 상자 모양이 아니라 둥글다고 주장했고 동양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조선의 코페르니쿠스’였다. 홍대용과 더불어 조선의 빛낸 팔방미인형 학자로 8장의 황윤석(黃胤錫)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죽기 이틀 전까지도 자신의 경험과 학문을 정리해 활동을『이재난고(?齋亂稿)』라는 57권의 일기에 담아냈고 수학에 대한 열정을 『산학입문(算學入門)』과『산학본원(算學本源)』이라는 저서로 풀어냈다.
제3부에서는 백성과 나라를 위해 수학에 열정을 바친 조선의 대표적인 국왕들과 소현세자가 등장한다. 먼저 9장에서는 수학을 기초학문으로 인식하고 수학공부법을 연구했던 세종대왕의 열정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장영실과 이순지 등의 인재를 영입해 ‘과학’ 분야 전반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의 치적이 드러난다. 또 도량형(度量衡) 정비 과정과 그 결과를 자세히 담아냄으로써, 미터법이 도입되기 전이었던 조선시대 도량형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어서 10장에서는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지만 조선 최초로 서양의 수학을 만나 조선의 수학 수준을 높이려 했던 소현세자의 일대기가 드라마틱하게 그려진다. 특히 저자는 소현세자가 독일인 신부 아담 샬[Johann Adam Schall von Bell]과 긴밀한 우정을 나누었던 것을 근거로, 그가 왕이 되어 서양의 문물과 선진적인 역법인 시헌력(時憲曆)을 미리 들여왔다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과감한 추측까지 한다. 또 마지막 11장에는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를 이끈 영?정조의 학문하는 자세와 과학에 대한 업적이 드러나는데, 특히 정조가 등용한 수학자 김영과 당대의 천재 이가환에게서 수학을 비롯한 학문 전반에 대한 열정과 자세를 배울 수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2010년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
이 책은 원고 단계에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인정을 받아 ‘2010년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그동안 세부적인 내용이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시대 수학자들의 삶과 그들이 빚어낸 수의 세계를 치열하게 탐구함으로써 행복한 ‘수학읽기’를 모색한 사실상 국내 최초의 시도라 할 수 있다. 또한 조선을 대표하는 수학자들이 남긴 탁월한 해법들과 독창적인 풀이방식을 통해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함과 동시에 선조들의 창의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더불어 조선 수학의 흐름을 따라가는 가운데, 조선과 필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던 중국 및 서양 수학에 대해서도 역사와 문화의 창을 통해 자연스럽게 들여다보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수학을 학문의 근본으로 삼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연구했던 조선 수학자들의 열정과 창의성을 배울 수 있다. 실용학문이 우대받고 취업 위주의 교육만이 성행하는 이 시점에, 조선의 수학자들은 그들의 삶 전체를 드러내면서 기초학문의 중요성과 학문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