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해야 청춘 - 서툴지만 포기하기엔 이른 당신을 향한 독설
청춘, 상처 없이 다음은 없다
너는 한 번이라도 청춘이었던 적이 있는가
바야흐로 힐링의 시대다. 누구나 아프지만, 그것이 시대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청춘이어서 유독 아픈 걸까, 청춘을 지나면 더 이상 아프지 않을까? 그리고 다가오는 의문 하나, 난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읊조리듯 이 말을 내뱉고 나면 자괴감이 찾아온다.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우물쭈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도 남들만큼 살아가고 싶은데, 부모님에게 떳떳한 자식이고 싶은데 내 앞에 놓인 인생은 녹록치가 않다. 누구나 겪었을 시간일 것이다. 지나올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나만 힘든 것 같은 시절을 지나오고 나니 깨달아간다. 그리하여 수많은 책들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말하며 청년들에게 무엇이든 알려주고 싶어 안달하는지 모른다.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일들, 그러나 부모, 선배 입장에선 안타까운 마음에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다. 그렇게 가면 안 된다고, 조금만 달리 가면 훨씬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야해야 청춘』은 그런 말을 조금은 다른 맥락에서 건네고자 한다. 감히 이 시대에, 기성세대에게, 청춘에게 되묻는다. 당신은 한 번이라도 청춘이었던 적이 있는가.
이 글은 나의 세 자녀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인생은 누구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초행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좋은 스펙으로 청년 시절을 지내다 야생으로 뛰쳐나가, 짧지 않은 시간 사업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깨달은 나의 작은 생각을 들려주고 싶어서다. 진정으로 잘 산다는 것, 성공적인 인생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말이다.
야해야 청춘이다.
레밍 대열 안에서 소속감에 만족하고 스펙에 안주하고 있다가는 개인도 나라도 큰일 난다. 아프다고 주저앉아 있어서는 힐링도 되지 않는다. 거친 야생이 당장은 위험하고 힘들어 보여도 거기에 문제의 해결책이 있으며, 보물이 숨겨져 있다.
_「프롤로그」에서
내 인생이다, 여기서 다시 시작이다
아픈 만큼 당신의 젊음은 찬란할 것이다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밝아온 저자, 20·30대 편하게만 살아오다 문득 너무 안주하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사업을 시작했다. 승승장구하며 평탄하게 살아온 그때 실패라는 건 자기 인생에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기운이 자신을 향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실패가 계속되었다. 흡사 세상이 자신을 벼랑으로 등 떠미는 것만 같았다.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사업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세 아이를 키우며 이 나라를, 청춘들을 보다 보니 위기가 느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청춘은 갈 길을 잃고 결국 우리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것은 성공과 실패라는 인생의 양극단을 경험한 저자가 체득한 삶의 한 단면이자, 자신의 세 자녀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조언이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충고는 아니다. 무작정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무책임한 위로를 건네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 아버지의 애정 어린 돌직구를 듣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이, 남들만큼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왜 이렇게 고통을 겪을까 수많은 밤을 고민하면서 깨달았다. 영원한 것은 없고, 길게 보면 모든 삶은 공평하다는 것이다. 계속 승승장구하는 인생도, 계속 안 풀리는 인생도 없다. 얻는 것이 있으면 한편으로 잃는 것이 있고, 좋은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쁜 일이 따라온다.
내가 청년 시절 너무 대접받는 삶을 살았구나, 대접에는 대가가 따르는구나,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옛말에 이런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
많이 들어봤음직한, 그리고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_88~89쪽에서
지나온 청춘이 다가올 청춘에게
나는 자라서 멋진 어른이고 싶었다
마케팅연구소를 운영하며 유수의 기업체 강의 및 컨설팅을 하고 있고, 대학 강의를 통해 이 시대 청춘들을 실제로 만나고 있는 저자가 그간 현장에서 보고 느낀 점을 전한다.
첫 시작은 자기 부모가 친부모가 맞는지 의심하라는 것, 전통적인 관계 맺기에 얽매이지 말고 부모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라고 말한다. 한 가정에 자식이 많아야 둘인 요즘, 부모는 어려서 겪은 어려움을 자기 자식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우며 결국 직장까지 부모가 찾아주는 지경에 이른다. 성년식을 치르게 하기는커녕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부모가 자녀를 장애인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등록금이라도 스스로 벌어보라고 충고한다. 무조건 부모에게 손 벌리지 말고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하라는 것이다.
또 하나, 대학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면 모든 대학을 서울대로 만들잔다. 저자 역시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로, 그로 인한 후광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은 것이다. 대학에 얽매이지 않고 대기업에만 매달리지 말고, 창의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마흔다섯이면 퇴직해야 하는 지금, 언제고 창업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젊을 적 창업을 해보고 실패하는 편이 백번 낫다. 값을 싸게 치를 수 있는 청년 시절, 빨리 그리고 많이 실패한 뒤 평생의 업(業)을 찾아야 한다. 그저 공부만 잘해서는, 시키는 일만 잘해서는 로봇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기존 기성세대와 다른 점은 돈을 욕망하라고 말하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건강한 돈을, 부를 축적해야 하지 않을까? 건강하게 돈을 추구하는 것은 무작정 행복을 좇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지금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조건이다.
스펙의 삶에서 도전의 삶으로
내 안의 야성을 깨우는 청춘 수업
저자는 위로하지 않는다. 힐링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을 직시하라고, 바뀌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좀 더 거칠게, 날것의 인생을 살아가라고 다그친다. 또 한 가지 우리 가슴을 울리는 것은 모든 것이 청춘, 너의 탓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너의 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이제라도 ‘제대로’ 청춘을 살아보라고 말한다. 네 안의 야성을 일깨워서.
그렇다, 야(野)해야 청춘이다. 야성을 되찾고 동물원을 벗어나 야생으로 뛰쳐나가야 한다. 우리 사회의 미래, 청년들의 미래는 거기에 달렸다. 『야해야 청춘』은 그럼에도 희망을 갖고 싶은 한 아버지의 세상에 대한 외침이다. 그 외침에 답하는 청년이 한 명이라도 있기를, 늑대 같은 청년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기득권층의 무지와 오만에 청춘들이 병들고 있다. 병을 이기는 방법은 스스로 병과 싸우는 것밖에 없다. 지금 20, 30대 청년들이 살아갈 미래는 다른 누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 스스로 길을 개척해가야 하는 것이다.
동물원을 탈출하는 늑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동화 속의 늑대는 양들을 잡아먹지만, 청년 늑대는 우리 사회를 살릴 것이다. 우리는 이미 스토리의 결말을 알고 있다.
“늑대가 나타났다.”
그 늑대가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_「에필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