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맨발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열반에 든
싯다르타의 맨발, 그 아프면서도 숭엄한 가르침!
불기 2558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붓다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 『사람의 맨발』이 출간되었다. 한승원은 1966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으로 데뷔한 이후 수많은 작품을 통해 한국 문학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한 작가이다. 1996년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전남 장흥으로 내려와 집필실 ‘해산토굴(海山土窟)’에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해산(海山)은 작가 한승원의 호(號)이고, 토굴(土窟)은 집을 낮추는 의미로 그 속에 들어가 창작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에게 소설은 그의 존재 자체라고 말한다.
작가 한승원이 1985년에 발표해서 구도소설의 대표작이 된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만들어져 크게 주목받은 바 있다. 그 뒤 작가에게는 영혼의 스승인 석가모니 붓다의 삶을 소설로 써보고 싶은 오랜 염원이 있었다.
한승원은 『사람의 맨발』에서 인류 역사 속에 실존했던 한 인간으로서의 싯다르타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특히 싯다르타가 젊은 시절에 왜 출가를 했는가, 그 의미를 소설로 한번 제대로 풀어보고 싶었다고 작가는 술회한다. 작가는 싯다르타를 신격화된 절대적 존재라기보다 모든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실존적 고뇌를 거듭한 한 인간으로 생동감 있게 형상화했다.
작가는 여행 중에 와불(臥佛)의 맨발을 볼 때마다 붓다의 ‘맨발’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곤 했다. 길 위에서 태어나 평생토록 온 세상의 길을 맨발로 걸어 다니며 사람의 길에 대하여 가르치다가 길 위에서 열반한 싯다르타의 맨발이란 무엇인가? 그에게 싯다르타의 맨발은 슬프면서도 장엄한 출가 정신의 표상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싯다르타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싯다르타의 성불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출가에 초점을 맞추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출가는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나 스님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도 출가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 수 있다. 과거나 현재나 세상은 계급사회이다. 자본주의 계급사회 속에서 출가하는 마음, 출가 정신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렇다면 출가 정신이란 무엇일까? 싯다르타의 출가 동기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는 일화 속에 담겨 전해진다. 사문유관이란 싯다르타가 카필라 성의 동서남북 네 성문으로 나가서 동문에서는 늙은이를 보고, 남문에서는 병든 이를, 서문에서는 죽은 사람을, 북문에서는 슈라마나 수행자를 보고 드디어 출가할 뜻을 품었다는 계기를 말해주는 설화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싯다르타의 출가 동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계급사회로 인해 핍박받는 사람과 탐욕으로 인해 지옥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고, 싯다르타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린다. 우주 자연 속에서 불안한 인간은 스스로 절대자라고 의미를 부여한 신에게 매달린다. 악을 저질러 놓고 신에게 핑계를 댄다. 모든 것을 신의 뜻이라고 말한다. 싯다르타는 그 고독한 인간을 구제하려고 신을 거부하고 출가하게 된다. 싯다르타가 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란 ‘내가 지상에서 최고의 존재로서 우뚝 서 있다’는 오만의 의미가 아니다. 인간인 ‘나는 오직 내 운명의 짐을 혼자서 지고 가야 하는 절대 고독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과연 누구로부터 그 지혜를 얻을 것인가?
작가는 인간 본위의 휴머니즘이 우주에 저지른 해악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불교 사상에서 찾았다. 작가는 말한다. 독자들이 싯다르타의 맨발을 통해 출가 정신을 잊지 말고 참다운 자유인으로 살기를 바란다고.
줄거리
싯다르타는 기원전 5세기경 마가다국의 변방 카필라 성의 태자로 태어난다. 예언가는 싯다르타가 전륜성왕이 되거나 부처가 될 거라는 예언을 남긴다. 당시 인도의 일반 정세는 마가다국이나 코살라국처럼 강력한 전제 정치의 도시국가가 그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약소국가인 샤카족으로서는 싯다르타에게 많은 희망을 걸게 된다.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친어머니 마야 왕후가 7일 만에 죽자, 싯다르타는 이모 마하 프라자파티 왕후 손에 정성껏 양육된다.
싯다르타는 아버지 슈도다나 왕의 명령으로 아버지 대신 국정을 보살핀다. 싯다르타는 백성들이 모두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가운데 신분 차별이 엄격한 카스트 제도의 벽에 부딪힌다. 슈도다나 왕은 싯다르타가 부처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생 다리나 재정대신의 세 딸과 싯다르타를 결혼시킨다. 한편 싯다르타는 불가촉천민들의 마을을 잘사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지만, 모든 이권이 탐욕스러운 장인 다리나 재정대신의 손에 넘어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싯다르타는 장인인 재정대신을 몰아내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오히려 재정대신에 의해 싯다르타가 궁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고뇌에 빠진 싯다르타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고통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마침내 출가를 결심한다. 스물아홉 살에 출가자로서의 삶을 시작한 싯다르타는 약 6년 동안 떠돌아다니면서 고행과 명상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싯다르타는 고행을 포기하고, 어느 날 홀로 나무 아래 앉아 고요히 선정에 들었다가 중도의 수행만이 최상의 길임을 깨닫는다. 그 후 싯다르타는 제자들을 거느리고 중생들이 해탈로 이르는 길을 가르치다가 80세에 열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