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해석의 지혜, 풍수 - 살림지식총서 477
‘풍수의 역사’에서 ‘주요 논의’까지,
‘풍수’에 대한 크고 작은 물음에 대한 갈무리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이야깃거리가 있으니, 바로 ‘풍수적 관점에서 분석한 대선 후보들의 성향’이나 ‘풍수지리 정치학’ 같은 이야기들이다.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 사이에 ‘풍수’가 회자되고 있음은 어떤 의미일까? 천년고도 서울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풍수’의 역사적 맥락, 가능하면 좋은 묏자리에 조상을 모시고 싶어 하는 후손들의 발복(發福) 의지, ‘생활 풍수’라는 신조어로 우리 집 침실에까지 들어선 이 이론을 과연 ‘과학인가, 잡술(雜術)인가’의 해묵은 문답으로 치부하는 것은 온당한 일일까?
이 책 『공간 해석의 지혜, 풍수』는 “풍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서 시작된, 작은 ‘풍수 해설서’다. 전작 『사주 이야기』를 통해 ‘인문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사주’에 대해 논의한 바 있는 저자는 이번에도 특유의 입담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풍수의 역사와 중요개념, 기본원리가 물 흐르듯 이어지지만, 복잡한 이론이나 한자어 일색인 ‘전문 풍수서’가 아닌 만큼 부담이 적다. 쉽게 읽힌다.
그렇다고 논의되는 주제들마저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풍수와 사주의 관계’에서부터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 같은 역사 속 논쟁거리, ‘동기감응(同氣感應)’ 등의 미묘한 주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생활풍수’의 단편까지, 풍수 개론에서 한발 더 나아간 주제들이 제법 묵직하게 다뤄진다. 도서관에 푹 몸을 담근 채, 풍수 고전에서부터 최근의 풍수 관련 서적과 논문까지 가능한 많은 자료들을 분석했다는 저자의 노고가 읽히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풍수서들이 범하고 있는 아쉬운 결말에 대해 저자가 꺼내든 단어를 한번 살펴보자. ‘양피지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글씨’라는 뜻의 ‘펠림세스트(palimpsest)’다.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흔적. 풍수적 사고 없이는 읽어내기 힘든 현실의 공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풍수를 들춰보겠다던 저자의 탐구보고서는 어떤 ‘펠림세스트’를 남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