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오고 있는가
광복 이후 분단 70년,
우리는 어떤 통일을 준비하고 있는가?
최근 통일 논의가 활발하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넘쳐나고 통일의 이해득실 계산이 분주하다. 하지만 통일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우리는 통일 그 자체를 위한 맹목적인 통일을 추구할 수는 없다. ‘무엇을 위한 통일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분명한 답을 찾아야 한다. 이 책은 통일의 열쇠가 한반도의 독특한 지정학적 문제에서 비롯된 주변 열강들의 세력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음을 역설한다. 저자는 한반도 통일의 대전제로서 ‘영세중립화 통일’과 ‘우리 민족의 미래상에 대한 범민족적 컨센서스(합의) 구축’을 제시한다. 한반도 통일은 흡수통일도, 무력통일도 아닌 제3의 길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에 대한 ‘열린’ 논의
올해는 광복 이후 분단 70년이 되는 해다. 반세기 넘게 남북으로 분열된 우리 민족은 한국전쟁을 비롯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분단의 멍에를 메고 무거운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남북 간의 극한 대결과 대치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통일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통일 대박론’과 함께 통일 준비에 대한 관심 고조로 꽉 막힌 통일 논의에 일말의 변화 조짐이 보인다.
≪통일은 오고 있는가≫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재미 정치학자로서 오랜 시간 한반도 통일 문제를 고민하고 연구해왔다. 과연 한반도에 우리 민족이 염원하는 ‘평화통일’의 봄이 찾아올 것인가. 그리고 통일 후에 우리 민족은 어떤 나라와 사회를 건설하고 살 것인가? 그것은 한국 사회의 연장인가, 북한 사회의 연장인가. 아니면 남북한 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와 국가인가. 이 책은 이 같은 질문들에 답하면서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한 제3의 길을 제시한다.
분단과 남북한 사회의 비정상적 발전
저자는 우선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 그로 인한 냉전의 심화로 남북한 사회가 비정상적 발전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현실을 분석한다. 애초에 한반도 분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전쟁을 조속히 끝내려는 미국이 소련을 전쟁에 끌어들임으로써 시작되었다. 그것은 미국의 전략적 오판이었다. 분단에 이은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헛된 야욕과 소련의 ‘작은 도박’으로 촉발되어 한반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지만, 결국 남북 모두 실패한 통일 전쟁이 되고 만다.
한국전쟁은 당시 미소 간 냉전을 더욱 격화시키고 우리 민족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지만, 한편으로 휴전협정 아래 남북한이 자신의 이념과 체제 속에 독자적 발전을 이룬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남한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눈부신 경제 발전과 민주화라는 정치발전을 성취했다. 동시에 분단은 남북한 사회를 모두 비정상적 발전으로 이끈 근본 원인이다. 한국은 물질 만능주의와 부정부패가 공동체를 위협하는 수준의 사회가 되었고, 북한은 사상 초유의 병영국가(혹은 요새 국가)로 권력 만능주의 사회가 되었다. 저자는 남북한 사회의 이런 비정상적 발전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통일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민족이 당면하고 있는 통일 문제는 과거 힘에 의해 이루어졌던 삼국시대의 통일과는 본질적으로 그 성격이 다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이념적으로 분열된 우리 민족을 통합하는 내부 문제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동북아시아 지역에 있어 열강들 간의 세력균형 문제로서 국제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본문 7쪽) 때문이다. 특히, 저자는 한반도의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 파괴를 의미하는 일방적 흡수통일(혹은 무력통일)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한반도 통일의 대전제와 제3의 길
즉, 통일은 수단이지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니다. 우리는 통일을 추구하기 전에 ‘무엇을 위한 통일인가’, ‘통일 후에 어떤 나라와 사회를 이 땅에 건설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이 물음은 곧 우리 민족의 미래상과 통일의 내용에 관한 것이다. 민족의 장래에 대한 아무런 공통 비전 없이 이루어지는 통일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모순(열강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닥뜨린 곳)과 분단으로 인한 민족 내부의 기형적 모습을 전혀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한반도 통일의 대전제와 비전은 무엇인가. 그것은 통일 한반도(저자는 편의상 배달공화국으로 부르고 있다)의 영세중립화(통일의 대외적 완성)와 우리 민족의 미래상에 관한 범민족적 컨센서스의 구축이다. 우선 영세중립화 통일 방안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들, 즉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이해관계를 가장 적절하게 조정할 수 있다.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만이 모든 주변 열강들의 군사전략적 이해관계를 조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한반도가 영세중립국이 되지 않는다면 서로 상충하는 주변 열강들의 지정학적 이해득실을 조정하며 무마할 방책이 없다.”(본문 125쪽) 왜냐하면 열강들은 한반도 통일 그 자체보다 통일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이 깨지는 것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또한 통일 한반도와 우리 민족의 미래상에 대한 비전은 무엇인가. 저자는 한국의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주축이 되어 새로운 건국이념과 통치 철학을 확립할 것을 제안한다. 먼저 새로운 건국이념으로 홍익인간과 중용사상을 결합한 ‘홍중사상’을 주장하고 있다. 홍익인간의 이념은 인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인본주의 철학이 내재되어 있고, 편협한 민족주의를 뛰어넘어 모든 인간의 복지를 추구하는 세계주의적 안목이 있으며, 개인과 사회를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이다. 저자는 이러한 홍익인간의 이상을 구현할 방법과 기본 원칙으로 중용사상을 제시한다. 홍중사상의 건국이념은 “남북한의 기형적 사회 발전을 막고 그 병폐를 치유하기 위한 새로운 정신적 기반을 제공할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나아가 저자는 홍중사상의 건국이념을 구체적으로 구현할 새로운 통치 철학으로 ‘민주적 사회주의’와 의원내각제라는 권력 구조를 제안한다. 북유럽 국가에서 성공 모델을 찾을 수 있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과거 구소련의 몰락을 불러온 공산주의 이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국유화 같은 낡은 이념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 시장경제 체제의 장점을 받아들여 효율성을 추구한다. 동시에 진보된 복지사회 건설을 통해 인도주의적 가치와 국가 경쟁력 향상을 도모한다. 저자가 보기에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추구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통치 철학이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 통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통일 한반도와 우리 민족의 미래상에 대한 비전 없는 통일은 더더욱 위험한 일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통일 논의에 대한 열린 자세와 개방적 논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통일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우리 민족의 진정한 영광은 우리 민족의 운명이 국제정치 환경의 변화로부터 가능한 한 자유로워지는 데 있다. 그것은 한반도가 ‘지정학적 저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배달민족의 진정한 해방이다.”(본문 2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