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낯설어지기 위해 떠날 뿐이다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첫 여행에세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달뜨는 순간들이 있다. 비행기표를 끊는 순간, 휴가계를 내는 순간, 비행기에서 와인 한 잔을 받아든 순간…. 뭔가 대단한 경험이나 자아 찾기를 할 수 있어서 여행을 탐닉하는 게 아니다. 그 어떤 것을 하더라도, 일단 집이 아닌 곳에 있다는 사실에 좀 견딜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된다. 여행이란 예정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평소보다 조금 더 유연하고, 가볍고, 즐겁게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 이곳에서의 삶을 위한 떠나기. 지금 또다시 여행을 준비하는 이유.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낯설어지기 위해 떠날 뿐이다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만드는 시간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달뜨는 순간, 여행
우리는 늘 떠나는 순간에 대한 로망이 있다. 차표를 끊는 순간, 휴가계를 내는 순간, 비행기에서 와인 한 잔을 받아든 순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기분이 든다. 작가 올리비아 랭의 표현을 빌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려 할 때 다가오는, 기운이 고무되는 그 느낌”이다.
뭔가 대단한 경험이나 자아 찾기를 할 수 있어서 여행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 어떤 것을 하더라도, 일단 집이 아닌 곳에 있다는 사실에 좀 견딜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된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여행과 일상 사이, 놓여 있는 생각들에 대하여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는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만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함께 공감하는 책이다.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첫 여행에세이로, 그동안 팟캐스트 [빨간책방], EBS 라디오 [책으로 행복한 12시] 등 다양한 매체에서 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면, 이번 책에서는 ‘여행’과 ‘떠남’에 대한 작가만의 시선과 생각들을 담아, 때론 쿨하고 때론 정감 가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여행이란 이곳에서의 삶을 위한 떠나기다
우리는 여행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이 ‘떠남’을 시도하는 것도, 온전히 즐기는 것도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또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느니 도전정신을 기를 수 있다느니 여행의 목적과 가치에 너무 비중을 둘 때도 많다.
작가는 여행이란 예정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평소보다 조금 더 유연하고, 가볍고, 즐겁게 받아들이게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여행에 대한 생각의 힘을 빼면, 좀 더 여행을 여행 자체로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내가 여행과 관련해서 유일하게 되뇌는 점이 있다면, “예정대로 되지 않는 일을 받아들일 것.” 오로지 그것을 더 여유 있게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매일의 삶에서 예정대로 되지 않는 일은 내 힘으로 돌파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라면 더 부드럽고 가볍게, 여러 가지 변수를 받아들인다. 아마도 나는, 평상시에 대충 ‘해치울’ 수 없는 것들을 해버리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 같다.”
(‘떠나는 찰나의 중독성에 대하여’ 14쪽)
생각 없이 떠날 것을 권합니다
혼자 떠나도 좋고, 함께 떠나도 좋다. 비 오는 날이 나쁠 건 없고, 출장도 여행일 때가 있다. 가보지 않은 곳만 탐닉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곳을 즐겨 가는 사람이 있다. 극도로 지치고 피곤해 쉬는 게 필요하다면 집이 최상의 여행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일단 해봐야 안다. 좋은지 나쁜지.
“해보니 별것 없더라”와 “해도 별것 없대”는 다르다. 여건이 된다면, 결론을 내기 위해 직접 경험할 수 있다면, 하기를 권한다. 여행을 다녀오지 않고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내 안으로 여행하기’를 잘 하려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뭔지부터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하다못해 여행을 싫어한다는 사실도, 여행을 해봐야 알 수 있다. 인내와 금기는 엉뚱한 판타지만 키우더라.
(‘할지 말지는 해봐야 안다’ 154쪽)
지금 또다시 우리가 여행을 준비하는 이유
이 책에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 여행에 대한 공감 가는 이야기들, 여행을 준비하면서 혹은 다녀와 돌이켜보면서 한번쯤 생각해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자를 위한 안내문’은 내 딴에는 애쓴다고 애썼는데 결국 다투고 돌아오는 모든 아들과 딸들을 위한 내용이 담겨 있고, ‘혼자 여행하는 독신녀의 건강염려증’은 휴가 쓰려고 그 전날까지 폭풍야근을 한 바람에 여행지에서 아팠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내용이 담겨 있다. ‘예쁜 쓰레기 스페셜리스트’는 그곳에선 참 예뻤는데 왜 내 방에 오면 어색할까 싶은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쩌면 ‘떠남’만을 이야기하는 책이라기보다는 ‘떠나기’와 ‘돌아오기’에 대한 책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행에 관해서라면 악몽에 가까웠던 많은 것들이 웃음과 함께 좋은 기억으로 남곤 한다. 실제 경험과 기억 사이에 발생하는 왜곡은, 밥벌이가 매일의 고민인 사람들의 발버둥 아닐까.” 책을 읽고 나면 그것이 여행이 아닐지라도 공간의 이동과 장소의 발견이 주는 설렘을 계획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