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
건강과 행복을 위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할까?
세계적 독성학자 정진호 교수가 들려주는 약의 모든 것
진시황은 영원한 젊음을 꿈꿨다. 불로장생약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그는 불로초를 구하러 간 서복이 돌아오지 않자 대신 수은이 들어간 탕약을 먹었다. 독성이 강한 중금속 수은 때문에 피부가 팽팽해지자 그는 이 탕약이 불로장생약이라 믿었고, 결국 수은 중독으로 49세에 사망했다.
2016년 12월 미국 솔트연구소 후안 카를로스 벨몬테 교수가 유도만능줄기세포 기술을 이용해 “늙은 생쥐를 젊어지게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한국을 포함한 세계가 열광했다. 노화를 늦추거나 예방하는 항노화를 넘어 젊음을 되찾고 싶다는 인간의 오랜 바람에 한 발짝 가까이 갔다고 믿었던 것이다.
약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다
질병과 맞서 싸워온 인류의 열망과 과학
고대부터 현재까지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변함이 없다. 마크 트웨인도 “사람이 여든 살에 태어나서 점차 열여덟 살로 젊어진다면 인생은 대단히 행복해질 것이다”고 늙음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했다.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인류가 보편적으로, 가장 오래 공유한 행복의 기준인 셈이다.
하지만 행복을 찾기 위한 인류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과학적 검증에 대한 인식과 방법이 발달한 만큼만 무엇이 몸에 좋고, 무엇이 몸에 나쁜지를 알 수 있었다. 고대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자연에서 채취한 식물의 효험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네로의 군의관인 디오스코리데스는 《약물지》에 600종의 약초를 감별하는 법과 치료 효과를 남겼고, 서양에서는 약 1500년 동안 이 책을 바탕으로 약을 써왔다. 18세기 이후 과학이 발달하면서 질병의 원인을 찾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약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약의 발견 뒤에 항상 핑크빛 미래가 따랐던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기득권의 비난과 음모론에 시달려야 했고,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다. 18세기 중반 유럽 도시에서는 의사들이 시체를 만진 손을 씻지 않고 분만실에 들어가는 바람에 수많은 산모가 산욕열로 사망했다. 하지만 간단한 소독만으로도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이론이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100년이 더 걸렸다.
신간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푸른숲 刊)는 약이 없어 고통 받던 시절부터 평균수명이 80세를 바라보는 현재까지, 죽음과 질병에 맞서 싸워온 인류의 열망이 ‘약’으로 꽃피운 이야기를 과학자의 시각으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을 쓴 정진호 교수는 세계가 인정한 독성학자다. 지난 30여 년간 약, 식품, 대기, 물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인체 독성과 유해화학물질의 안전성을 연구해온 정진호 교수는 중금속 비소가 심혈관 질환과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국내 학자로는 유일하게 독성학 분야의 최고 권위지 〈케미컬 리서치 인 톡시콜로지The Chemical Research in Toxicology〉가 꼽은 ‘지난 20년간 독성학 연구에 주요 공헌을 한 300인’에 선정, 특집호 표지를 장식했다.
이 책은 마취제, 백신, 항생제, 소독제, 항말라리아제 등 〈영국의학저널BMJ〉가 뽑은 인류를 구한 위대한 약뿐 아니라 아편, 탈리도마이드, 가습기 살균제와 같이 생명을 위협한 약까지 건강과 죽음, 고통과 행복을 가른 ‘약’들이 어떻게 약이 되고 어떻게 독이 되었는지 촘촘히 살핀다. 또한 플라시보, 비타민, 우울증 치료제, 술 깨는 약, 디톡스와 같이 건강에 관해 우리가 가장 오해하고 있는 주제와 논란의 중심에 선 아스피린, 삶의 질을 향상시킨 ‘해피 드러그’ 비아그라,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의 헬스케어 이슈까지 최신 생명과학과 의학 지식을 총망라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한다, 어떤 약이 효과가 있다 등 편의성과 단편적 효능을 강조한 건강서와 달리 이 책은 인류에게 약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현대인이 약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최신 과학으로 분석, 통찰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건강과 행복을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내 몸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에 관한 과학적 혜안을 얻을 수 있다.
약과 독의 두 얼굴,
약은 우리 몸에서 어떻게 독이 되나
독성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약과 독’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약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독이 될 수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약과 독이 가진 양면성을 극단으로 보여주는 아편은 기원전부터 강력한 통증 치료제로 쓰였다. 아편 추출물로 만든 헤로인 역시 진통 효과가 뛰어났지만, 많은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망가드릴 정도로 중독성이 강했다. 인간이 마약을 끊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원래부터 뇌 속에 마약 수용체 엔도르핀을 갖고 태어난 인간은 쾌감의 유혹에 너무 약한 존재다.
디톡스 제품이 몸 안에 독소를 빼준다고 하지만 우리 몸에 디톡스 제품으로 제거할 수 있는 독은 없다. 게다가 디톡스 제품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과학이 정의하는 해독이란 농약, 화학무기, 중금속과 같이 강한 독성을 가진 물질이 몸속에 들어왔을 때 특정 독에 맞는 치료법을 뜻한다.
시간이 지나자 헤로인을 투여받은 환자들에게서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중독 현상이 나타났다. … 의사들은 증상이 악화되자 더 많은 헤로인 주사를 놓았고, 그 결과 더욱 심하게 중독되는 환자들이 생겨났다. -107쪽
우리 몸은 강한 회복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극한 독에 노출되는 경우 해독제를 써야 하지만, 정상인에게 디톡스 제품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디톡스 제품을 먹으면 인체에 불필요한 부담이 많아진다. -115쪽
많은 사람들이 매일 챙겨 먹는 비타민제는 어떤가? 우리 몸에 비타민이 꼭 필요한 것은 맞지만 여러 종류의 음식을 골고루 잘 먹는 사람은 비타민이 결핍될 확률이 매우 적다. 이 책은 최근 종합비타민제가 건강 유지에 도움을 주는지에 의문을 제기한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미국의학협회저널JAMA〉은 2011년 비타민 E제를 너무 많이 먹으면 전립샘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2012년에는 항산화 종합비타민제가 만성질환을 예방한다는 증거가 없고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E는 오히려 사망률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비타민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과다 복용했을 때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종합비타민제를 먹고 몸이 좋아졌다고 느낀 것은 플라시보 효과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종합비타민제는 균형 잡힌 건강한 식사를 대체할 수 없다. 식품에는 비타민뿐 아니라 건강 유지를 위한 다양한 천연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타민 결핍 위험 계층에 속해 있거나 정상적인 식생활이 어려운 경우,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 비타민들이 권장 섭취량 수준으로 들어 있는 종합비타민제를 먹을 수 있다. -37쪽
전문가들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건강과 위생을 지켜준다고 믿었던 약이 독으로 돌아와 수많은 사람의 삶을 망가뜨린 사례도 있다. 50년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 탈리도마이드 사건과 가습기 살균제 사건. 1960년 입덧약 탈리도마이드 부작용으로 전 세계 1만 명 넘는 기형아가 태어났고, 탈리도마이드는 세상에 나온 지 5년 만에 판매가 금지되었다. 하지만 탈리도마이드는 한센병과 혈액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새로운 기능이 밝혀져 여전히 약으로 쓰이고 있다.
21세기에 일어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피해자가 처음 나온 1994년부터 특별법이 제정된 2016년까지 약 20년이 걸렸다. 피해자들을 20년간 방치한 셈이다.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저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왜 신속하게 해결되지 못했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3단계로 나누어 분석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기업, 정부, 전문가 집단,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지만, 저자는 특히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의약품과 화학물질 안전 관리를 위한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이렇게 끝내면 안 되는 이유다.
그러나 탈리도마이드는 사라지지 않았다. 1964년 이스라엘의 한 의사는 피부 통증이 심한 나병, 즉 한센병 환자에게 탈리도마이드를 주사하자 통증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 임상 시험을 거쳐 탈리도마이드로 한센병을 치료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87쪽
결국 5년이 지나도록 질병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고, 피해자는 계속 늘어만 갔다. 폐질환은 바이러스 같은 세균, 유해화학물질, 생리적·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이다. 하지만 국내 질병관리본부에는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질환을 다루는 전담 부서가 없다. -101쪽
우리가 약이라고 믿어온 것은 정말 약일까?
질병을 막으려는 간절한 바람이 미신에서 과학으로 진화한 이야기
인류의 역사에서는 늘 과학과 비과학이 공존해왔다. 고대의 민간요법이 현대에 와서 과학으로 밝혀지기도 하고, 과학이라고 믿었던 것이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19세기 말까지 서양을 지배한 대표적인 치료법은 몸 안에 피를 빼내 병을 치료한다는 ‘방혈 요법’이었다. 영국 찰스 2세,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모두 방혈 요법으로 치료를 받다가 피가 부족해서 사망했다. 윌리엄 하비가 혈액순환 이론을 제시하고, 그 뒤를 이어 마르첼로 말피기가 현미경으로 모세혈관 그물망을 발견하기까지 약 2000년 동안 서양 의사들이 방혈 요법을 아무 의심 없이 신뢰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말피기가 혈액순환 이론을 검증하고 나서도 200년이 넘도록 많은 의사들이 방혈 요법에 집착했다. 체액의 균형이 맞지 않아 병에 걸린다는 생각이 여전히 지배적이었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다른 특별한 대안도 없었기 때문이다. -219쪽
우리가 흔히 심리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플라시보’는 최근 신경생리학적으로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환자가 플라시보, 즉 위약을 먹을 때 증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면, 실제로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통증이 줄어듦을 느낀다는 것이다. 정신―뇌―신체의 삼각관계에서 플라시보 효과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검증한 연구, 플라시보를 먹으면 인체 면역력에 변화가 생긴다는 연구 등이 플라시보의 과학을 뒷받침한다. 선진국에서는 적절한 치료 방법이 없을 때 의사가 적극적으로 플라시보를 처방하는데, 특히 통증 치료와 류머티즘 치료, 우울증, 불안감, 수면 장애 등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플라시보라는 개념이 처음 생긴 이래로 의사들은 약 200년 동안 플라시보 효과의 신경생리학적 및 정신심리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해왔다. 최근에는 정신-뇌-신체의 삼각관계에서 플라시보 효과가 어떻게 일어나는지가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22쪽
과학자들은 술 깨는 약을 개발하기 위해 숙취의 원인을 밝히고자 했다. 하지만 숙취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곧 숙취 해소제는 숙취의 원인을 모르고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한편 민간요법이 현대에 와서 과학으로 밝혀진 사례로 설사약이 있다. 동서양 구분 없이 예로부터 설사하는 아이에게 죽이나 수프를 끓여 먹였다. 서양에서는 ‘할머니 처방’이라고도 부르는 이 방법은 설사로 몸에서 물과 전해질이 빠져나가 생명이 위태로운 아이에게 매우 과학적인 치료법이었다. 과학자들은 ‘할머니 처방’에서 착안해 식품을 소재로 한 경구수액제를 만들어 설사로 위협 받는 많은 어린 생명들을 살렸다.
숙취 원인을 모르면서 숙취 해소제를 개발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동서양에서 숙취 특효약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생약과 식품, 민간요법 등이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그러나 숙취 해소제는 숙취와 관련된 증상 가운데 한두 가지를 완화시킬지 몰라도 숙취의 전반적인 증상을 해소할 수는 없다. -68쪽
1980년대부터 식품을 소재로 한 경구수액제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풍부한 곡류 및 콩류, 쌀 또는 옥수수 분말 가루를 이용해 경구수액제를 만들어 설사 환자에게 먹였다. 그 결과 표준 경구수액제와 비교해 식품 소재 경구수액제는 설사량을 50% 감소시키고 설사가 지속되는 시간을 줄여서 유아 설사에 매우 유용함이 확인되었다. -59~60쪽
생명을 구하고 질병을 물리치는 여러 방법들의 탄생을 살펴보면, 주변의 회유와 비난에도 굴하지 않은 용기를 발견하게 된다. 최초로 인두 접종법을 실험한 메리 몬태규 부인(143쪽), 우두 접종법을 개발해 백신을 널리 전파한 에드워드 제너(146쪽), 소독의 중요성을 알린 이그나츠 제멜바이스(153쪽), 상수도에 처음으로 염소 소독을 시도한 존 스노우(163쪽), 질병의 원인이 세균임을 밝힌 과학자들(166쪽), 특허약 산업의 사기 행태를 고발해 식품의약품법 제정을 이끌어낸 새뮤얼 애덤스(223쪽), 탈리도마이드의 미국 시판을 불허한 프란시스 켈시(86쪽) 등은 보편적 믿음과 집단 이기주의를 거스르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사회적인 위협과 경제적인 피해를 무릅써야 했다. 때론 자신이나 가족의 목숨을 걸기도 했다. 질병을 이겨내려는 간절한 바람과 생명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이 만나는 지점에 ‘약’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