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몽골 초원의 핍진한 삶을 망라한 인류학적 보고서!
소설보다 재미있고 여행기보다 생생하며 문화인류학보다 깊이 있다
“이처럼 풍부한 이야기가 있는 여행에세이는 처음이다.”
_이병률(시인)
“이 압도적 디테일을 보라. 오직 그들과 자고 깨고 시달려서만 얻을 수 있는,
실로 무지막지한 실감의 세계가 펼쳐진다.”
_김형수(시인, 소설가)
“모닥불 옆에서 그에게 무심코 들은 얘기가
그 대지의 가장 깊은 얘기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했다.”
_전성태(소설가)
몽골 초원의 핍진한 삶을 망라한 인류학적 보고서!
소설보다 재미있고 여행기보다 생생하며
문화인류학보다 깊이 있다
풍성한 서사가 굽이치는 몽골 기행문이자 몽골 유목민의 생의 본질까지 들여다본 인류학적 보고서인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가 출간되었다. 이국의 낯선 풍경을 일별하고 쓴 가벼운 단상이 아니다.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뒹굴며 살아봐야만 느낄 수 있는, 몽골의 바람 냄새와 삶의 냄새가 책 속에 깊고 진하게 배어 있다.
세기가 바뀐 2000년, 숨을 옥죄어오는 도시에서 막연한 불안과 불온한 희망 사이를 방황하던 때, 저자는 미지의 땅이자 야만족 오랑캐의 영토로만 여겨졌던 몽골을 무작정 여행하기로 결심한다. 그의 눈에 들어온 넓은 초원 속 ‘오랑캐’의 삶은 좁은 땅덩이 안에서 사람 귀한 줄 모른 채, 자연 귀한 줄 모른 채 아등바등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듯했다. 그후 저자는 수백 번 몽골을 드나들며 관광객이 아닌 이웃의 시선으로 유목민의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 배웠고, 야만이란 이름으로 폄훼되어왔던 유목민의 삶 속으로 많은 이들을 인도해왔다.
이 책은 그런 저자가 ‘두게르잡 비지아’라는 몽골인 친구와 오랜 시간 교유하며 완성해낸, 유쾌하고 감동적인 한 권의 다큐멘터리이다.
지금까지 당신이 알던 몽골은 ‘이미지’일 뿐이다
이 산문집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읽히는 것은 몽골인의 생의 순간들을 바라보는 ‘비지아’의 눈이 렌즈가 되고, 저자의 현장감 넘치는 서술이 그 렌즈에 비친 광경을 생생한 영상처럼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와 비지아가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며 찍은 몽골의 풍경 사진 또한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비지아와 그 친지들의 실제 경험을 보고 들은 저자는 그들의 출생부터 성장, 사회생활, 결혼과 장례풍습까지를 총 아홉 개의 장에서 순서대로 다루며 몽골 유목민의 일생을 망라한다. 그중에서도 세상을 떠야 할 시간이 되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그들의 ‘죽음 의식’은 “유목민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정수”다.
이틀 사흘 걸리는 이삿길을 함께하지 못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노인은 스스로 죽음을 준비한다. 죽음을 앞둔 노인이 떡 벌어지게 차려진 음식상을 받는다. 가족과 친지들, 동네 친구들까지 모두 모인 흥겨운 잔치가 벌어진다. 즐거운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주인공 노인이 잔칫상의 머리맡에 정좌를 하고 앉는다. 노인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라는 양의 엉덩이 비계(말랑말랑하면서도 씹을수록 고소한 기름 덩어리)를 입에 넣는다. 눈을 감고 편안히 앉아 있는 노인 앞으로 걸음마를 막 뗀 어린 손자가 다가선다. 그리고 입에 문 양의 넓적다리뼈를 툭 쳐서 비곗덩어리를 목구멍 안으로 밀어넣는다. 비계가 숨길을 막아 순식간에 노인은 죽음을 맞는다.(338쪽)
몽골의 사회상이나 한국과의 오랜 관계도 여실히 서술되어 있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던 몽골의 사회적 격동기가 청년 비지아의 감각을 통해 체감되기도 하고, 고려시대부터 형제의 나라로, 사돈의 나라로 얽혔던 두 나라의 역사가 다양한 사료로 뒷받침되어 서술되기도 한다.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든 몽골어의 영향을 이야기하는 대목 또한 흥미롭다.
요즘 쓰이는 말 중에도 재미있는 몽골어가 있다. 피로회복에 좋다는 ‘아로나민’이다. 우리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아로나민’이란 상품명은 무슨 뜻일까? 몽골어로 숫자를 셀 때 ‘아로’는 열, ‘나임’은 여덟이다. 열여덟은 ‘아롱나임’이라고 하는데, 피로회복제 아로나민은 몽골어 아롱나임을 변형해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열여덟의 청춘을 되살려준다는 숨은 의미가 있는 셈이다.(298~299쪽)
그 밖에 유목민은 걸음마보다 말타기를 먼저 배운다는 것(67쪽), 유목민에게는 평생 고기만 먹고도 건강한 비결이 있다는 것(122쪽), 몽골은 아들과 딸 중 한 명만 대학을 보낸다면 딸을 입학시킬 정도로 여성의 지위가 높다는 것(214쪽),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이 오랑캐의 후예이기도 하다는 것(52~54쪽) 등, 오랜 기간 몽골을 드나들며 몽골 전문가가 된 저자가 자료를 곁들여가며 풀어내는 해박한 지식을 따라 읽다보면 지적 충만감에 절로 즐거워진다. 멀고도 가까운 친척 같은 나라 몽골에 대한 막연한 신비감은 벗겨지고, 몽골의 또렷한 실체가 눈앞에 바짝 다가온다.
몽골고원, 그 광막한 자연에 흐르는 압도적인 긴장과 무한한 자유!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가 정주문명의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우리 앞에 펼쳐 보이는 몽골 초원은 어떤 사건도 상황도 제거된 원초적 공간이다. 하늘과 대지 사이를 가득 채운 압도적인 침묵 속에서 인간은 단일한 개체로서의 자신을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광활한 우주의 점 한 톨 같은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찾아드는 무한한 자유로움과 깊은 자아성찰의 자리가 이 책에 고스란히 옮겨와 있다.
사내의 행복이란 혹독한 추위와 엄청난 더위를 이기고,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이기고 얻은 것이다. 비겁한 사내들이나 조금 덜 추우려고, 조금 덜 더우려고, 조금 덜 외로우려고 초원을 떠나고, 도시에 모여서 작게 산다. 넓은 대지를 버리고 좁은 곳에 끼어 부대낀다. 몰려 사는 게 죄다. 그리워야 사람 귀한 줄도 알지 부대끼니까 서로 경쟁하게 되고 어깨 부딪칠 때마다 싸워야 한다. 편안히 숨쉬고 살지 못하고 가슴을 동여매고 사는 꼴이다.(65쪽)
여전히 몽골 초원 어딘가에서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들은 유목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물질문명과 전통적 삶의 경계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삶의 태도에서는 자신이,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오만함을 찾아볼 수 없다. 지구의 일부가 되어 자연의 순리에 따라 흐르는 그들의 삶은 복잡하고 좁은 도시 안에 갇혀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병들어가는 우리가 새롭게 도달해야 할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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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유목민에 대해 이만큼 통달한 서술을 본 적이 없다. 이 압도적 디테일을 보라. 오직 그들과 자고 깨고 시달려서만 얻을 수 있는, 실로 무지막지한 실감의 세계가 펼쳐진다. 타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자기와 다른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것은 자아 구축에 어떤 자극을 주는가? 이 책은 그에 대한 ‘교본’이라 할 것이다. _김형수(시인, 소설가)
일찍이 몽골을 여행한 많은 작가들이 이영산의 안내를 받았다. 이 바람 같은 사내는 몽골 대지가 다시 열린 후 이십 년 동안 세상에 숨쉴 데는 거기밖에 없다는 듯 그 높은 땅을 주유하며 지냈다. 모닥불 옆에서 그에게 무심코 들은 얘기가 그 대지의 가장 깊은 얘기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했다. 이 책의 주인공 비지아는 그런 그가 몽골 대지에서 만난 가장 근사한 동무다. 이 알타이 사내를 겪어보면 이영산이 오랜 세월 몽골 대지에서 찾아 헤맨 게 ‘사람’이라는 것, 우리가 오래전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왜 그가 기꺼이 몽골의 바람이 되었는지 알게 된다. _전성태(소설가)
이처럼 풍부한 이야기가 있는 여행에세이는 처음이다. 게다가 지적이면서도 인간적이며 살짝 차오르며 넘치는 슬픔은 덤이다.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는 몽골의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고, 읽음과 동시에 당장 어디로든 굉장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촉촉한 자극을 선사한다.
책장을 넘기면서 자주 웃었다. 건포도를 먼저 먹어본 몽골인들은 그다음에 수입된 포도를 먹고는 ‘물 많은 건포도’라고 이름 붙여 부른단다. 또 술만 마시는 남편이 미우면 남편의 타는 말의 고삐를 풀어 멀리로 도망가게 한 다음 말을 못 타게 함으로써 더이상 ‘남자’ 구실을 할 수 없게 만든단다. 그뿐인가. 미혼의 딸이 아이를 낳으면 부모는 이 아이를 손주가 아닌 가족의 막내로 여기면서 키우는데 부모가 죽을 경우 재산을 모두 물려주는 게 전통이라고 한다. 또 ‘아로나민’이라는 영양제의 이름이 몽골어로 ‘열여덟’ 청춘을 나타내는 의미였다니.
몽골 사람들의 유목정신이 처절한 외로움과의 투쟁이었다는 것을 새삼 말해 무엇할까. 그 삶 자체가 우리 인류를 성스러운 자격으로 끌어올렸음을, 이 세계를 힘있게 밀어올렸음을 이 책은 증명하고 있다. 착하고 뭉클한 이 책을 통해 별을 닮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별인 사람들을 만났다. 참으로 밀도 높은, 자랑스러운 책을 알게 되었다. _이병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