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
“왜 지금 임시정부 답사기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와 현장 답사를 제대로 살펴보고 싶다면
이 책이면 충분하다!
서울을 비롯해 특히 우리나라 전국의 역사 유적지를 20여 년간 답사한 저자는 201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답사를 하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나라 안팎에서 임시정부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정작 알려진 내용은 부족하다는 것,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영역 밖에서 펼쳐진 역사라는 점에서 접근 방법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특정 사건, 특정 인물 중심으로 답사할 경우 임시정부의 역사를 제한적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또 현장 중심으로 답사를 할 경우 희생과 고난을 강조하는 답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것도 필요하겠지만 저자는 독립을 넘어 건국을 꿈꾸던 임시정부의 역사를 이해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저자는 임시정부 답사단의 안내자가 되면서 그동안 고민한 부분을 여러 사람과 소통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임시정부의 역사는 한국사韓國史이되 한국의 범위를 넘는, 그러니까 공간의 역사로 이해하는 모델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국사一國史의 영역은 근대 이후에 오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부문에서 그 영토적 경계가 상당 부분 무너지는데 임시정부를 답사할 때 그러한 시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이후 저자는 몇 차례 이어진 답사에서 이러한 고민을 정리해나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도 폭넓은 시야로 임시정부를 바라보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책을 쓰고자 했다.
더 먼 미래를 보고자 한다면 더 넓은 세계를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보는데도 중요한 안목이 된다는 것을 저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답사’를 통해 대표적인 선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가 생생하게 기록하고 뜨겁게 기억해야 할 궁극의 역사!
1919년부터 1945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의 길을 따라 걷다
온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쳤던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하는가. 그해 여름, 우리나라 곳곳을 뒤덮었던 축구 열기는 그야말로 뜨겁다 못해 대단했다. 예선 통과도 힘들던 나라가 4강 신화를 꿈꿀 수 있게 되자 전 국민은 하나둘 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때 붉은 물결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으니 곧 ‘대한민국’은 우리를 하나로 결속해준 말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언제, 누구에게서 나온 말일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1910년 8월 29일 국권 피탈로 사라진 ‘대한제국’이 임시정부에 의해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1919년 3월 1일, 황제가 빼앗긴 나라를 국민의 힘으로 찾겠다고 선언한 3·1운동은 우리 민족사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전국적으로 2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목놓아 울며 독립을 애타게 부르짖었으니 어쩌면 오늘날 월드컵에 비견할 바 아니겠다. 이 책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3·1운동을 계기로 제국의 시대에서 민국의 시대를 선포하며 출범한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야기다.
역사의 큰 흐름은 왕으로부터 일반 국민, 시민으로 넘어왔다. 3·1운동은 이제까지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나라를 뺏긴 처지에 그저 슬퍼하지만 않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이제부터 나는 우리 민족, 우리 국민과 함께한다’라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독립운동의 기지가 된 ‘상해’로 사람들은 다시 희망을 갖고 모여들었다. 남의 나라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남의 나라에서 군대를 만들어야 했던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를,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다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100년 전 독립운동가들과 공감할 수 있는 역사적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왜 그런 선택을 했으며, 왜 그래야만 했는지, 그러기 위해 어떤 노력을 쏟았는지 함께 현장을 걸으며 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이야기한다.
김구와 김원봉, 이봉창과 윤봉길, 조소앙과 박찬익, 곽낙원과 정정화까지
뜨거운 가슴으로 ‘대한민국’을 꿈꾸던 청년 투사들의 현장을 가다!
인터넷에서 이봉창을 검색해보면 양손에 수류탄을 든 채 웃고 있는 그림을 흔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봉창은 웃지 않았다. 31세에 독립운동에 투신한 그는 그 누구보다도 태극기와 선언문 앞에서 진지했다.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해에 왔습니다.”
일본 천황을 저격했으나 ‘불행히도 명중하지 못한’ 이봉창 의거는 윤봉길 의거 때 완성되었다.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너희도 만약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이 책은 이처럼 이전 두 젊은 투사와의 만남에서 김구가 내렸던 결단들과, 이후 의열단·조선민족혁명당·조선의용대를 조직해 김구와 함께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다는 김원봉의 계획들까지 ‘역사와 현장’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국을 위해 투신하기로 결심한 아들 김구의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인내하고 믿어주었던 곽낙원, 임시정부의 자금을 구하기 위해 10여 년 동안 무려 여섯 차례나 국내에 잠입해 돈을 빌려와 요인들의 살림을 책임졌던 정정화 등 빛도 없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여성운동가들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고리 역할을 했던 임시정부 외교의 리더 박찬익, 새로운 국가건설을 꿈꾼 거인 여운형, 삼균주의의 창시자 조소앙, 끝까지 임시정부를 지탱한 기둥 엄항섭까지 격변의 순간순간을 접할 때마다 뭉클함이 밀려올 것이다.
임시정부가 계속해서 옮겨 다녀야만 했던 이동 시기, 김구가 숨어 지냈다는 피난처를 오늘날 탐방하는 장면들을 읽을 때는 못내 같이 숙연해진다. 또한 불안정한 삶의 연속이었던 요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이나마 현장에 가서 보는 것만으로도 제법 깊은 상상이 가능해진다. 이 책은 그저 묵직한 역사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감상을 더한 답사기에 그치지도 않는다. 왜 이곳을 꼭 들러야 하는지, 이곳에서는 우리의 어떤 역사가 숨 쉬고 있는지, 자국의 역사도 아닌 유적을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 보존한다는 것이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 이 책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들려준다. 앞으로의 100년은 그들과 ‘영광’을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현장 사진과 사료 도판 200여 장 수록, 임시정부 이동 경로와 답사 지도 공개!
역사 공부와 생생한 답사를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책
처음 임시정부 요인들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낯선 상해에 착륙했을 때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언젠간 다시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꿈이라도 꿀 수 있었을까. 지금의 우리로서는 가늠하기조차 힘들지만 분명 타국의 화려한 외탄을 바라보며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더더욱 크게 느꼈을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제치하를 벗어난 진정한 독립을 위해, 또 반드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야 말겠다는 꿈을 위해 언제가 될지 모르는 고단한 여정을 끝내 선택했을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처럼 1919년 서울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을 외쳤던 ‘상해 시기’, 1932년부터 1940년까지 항주 등 여섯 군데를 옮겨다니며 물 위에 뜬 정부 상태였던 ‘이동 시기’, 그리고 1940년부터 1945년 마지막 해방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중경 시기’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의 길을 함께 탐사한다. 또한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나라 밖에서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 요인들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내며, 200여 장에 달하는 답사 사진과 사료 도판, 지도 일러스트 등에 담긴 임시정부의 ‘현장’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무엇보다 정확한 역사와 고증을 소개하기 위해 저자는 100년 전 임시정부 요인들이 걸었던 그때 그 장소 곳곳을 수회 답사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그 시간,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과 진심으로 만나기를 바란다”며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과 미래를 살펴보는 역사 공부는 물론, 역사 전문가의 시선에서 순례하는 진짜 답사 이야기를 한 권에 살펴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책이다.
■ 추천평
나의 조국, 대한민국. 과연 이 이름은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이유로 만들었을까? 바로 3·1운동이 계기가 되어 제국의 시대에서 민국의 시대를 선포하며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다. 20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이제 그 ‘기억’을 기록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이 시간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임시정부의 고난과 영광의 여정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기억할 것이다. 기억해야 역사가 되기에.
-최태성(한국사 강사)
100년 전 이국땅 상해에서 피어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꿈을 좇는 열차가 플랫폼에서 기적을 울리고 있다.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는 아무데서나 멈추지 않는다. 기관사를 자처한 저자는 ‘역사의 정거장’을 누구보다 잘 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사의 시공간을 온몸으로 누벼온 저자의 안목과 내공이 오롯이 담긴 이 책을 들고 ‘임시정부행 100년 열차’에 얼른 올라타고 싶다 .
-정재환(방송인·문학박사)
이 책은 답사기에 멈추지 않는다. 100년 전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을 개척한 독립운동가들의 심장소리를 느끼게 해주며, 그들이 걸어간 발자국을 눈앞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빼앗긴 조국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맨바닥에서 역사를 만들어나간 청년 운동가들의 꿈과 설움과 미래를,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꼭 한 번은 읽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역사가 없는 오늘은 없기 때문이다.
-박기태(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단장)
■ 책 속으로
아마 그 길은 고되고 힘들 것이다. 타는 듯한 햇빛과 뼛속으로 스며드는 스산한 기운, 반나절은 족히 걸리는 버스와 기차 여행은 고단할 것이다. 그러나 나라 뺏긴 사람들의 피난살이와 어찌 감히 비교할 수 있겠는가. 집을 이고 가는 달팽이는 무겁고 답답한 걸음을 한다. 하지만 이 여정의 끝에 독립과 새로운 나라가 있다는 희망을 가진 이들은 닥치는 고통을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했을 테다. 그러니 만약 지금 이 책을 들고 답사를 떠난다면 그들의 마음이 되어보자. 그들이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하고, 그들이 슬프고 화날 일을 겪을 때 같이 슬퍼하고 화내는 거다. 그렇게 100년의 시간을 좁혀보자.
-2부 물 위에 떠다니는 정부 〈대장정, 길에서 역사를 만들다〉
이봉창이 상해에 온 지 1년이 다 되어갈 무렵 김구는 본격적인 거사 준비를 했다. 1931년 11월, 하와이애국단에서 보내준 1천 달러를 거사 자금으로 쓰고 중국군 소속 김홍일(왕웅)과 김현을 시켜 폭탄 두 개를 준비하도록 했다. 하나는 일황 폭살용, 다른 하나는 이봉창의 자살용이었다. 그리고 이봉창에게 계획을 알려준 뒤 안공근의 집으로 가 선서식을 거행했다. (중략) 그러나 히로히토가 탄 마차는 지나가버렸고 뒤따르던 궁내부 대신의 마차만 뒤집어졌다. 실패였다. (중략) ‘불행히도 명중하지 못했다[不幸不中].’ 만주사변 직후 반일감정이 격해진 중국 정부와 중국인의 마음이었다. 이 말은 곧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만보산 사건 이후 멀어졌던 한국인, 그리고 임시정부에 대한 중국인의 지지를 회복하는 밑거름이 됐다. 한국과 중국이 대일전선에 같이 설 가능성을 다시 만든 것이다.
-1부 상해에서 독립을 외치다 〈일본 천황을 저격한 이봉창의 결단〉
박물관 건물이 있는 마당에는 우리나라의 소녀와 중국의 소녀가 나란히 앉아 있는, 슬프지만 의미 있는 조각이 있다. 조각의 이름은 〈한중 평화의 소녀상〉으로 2016년 제막식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이용수 할머니와 중국의 진련촌陣蓮村(천롄촌) 할머니가 참석했다. 두 소녀상의 그림자가 주는 메시지도 특별하다. 우리나라 소녀의 그림자는 깨져 있다. 꼭 삶이 산산이 부서지고 꿈이 깨져버린 비참한 상태를 표시하는 것 같다. 그 옆에 중국 소녀가 걸어와 곁에 앉은 것처럼 발자국이 표시되어 있다. 견딜 수 없는 아픔이지만 그래도 나누면 나을까. (중략) 다시 보니 두 소녀상 옆에 빈 의자가 하나 더 있다. 소녀들과 함께할 마음을 가진 누군가가 앉을 자리다. 그리고 앞의 글에 덧붙인 한마디. “We can forgive, but we can never forget.” 그렇다. 잊지 않아야 용서할 수 있지 않은가. 잊어버린다면, 역사를 잊는다면 그들이 사죄를 해오더라도 용서할 방법이 없다.
-1부 상해에서 독립을 외치다 〈한국과 중국의 소녀가 나란히 앉은 풍경〉
마침내 11월 3일, 임시정부 요인들이 중경 연화지 청사 계단에 모였다. 뒤편에 대형 태극기를 교차시켰다. 기나긴 임시정부를 마감하는 상징적 자리,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광복을 맞이한 벅참,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불안감 등이 교차하는 가운데 사진을 찍었으리라. 주석 김구를 가운데 두고 국무위원들이 중심에 섰다. 그리고 사진 찍을 준비를 하는 동안 임시정부 요인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도 불러모았다. 맨 마지막에는 임시정부 경비를 하던 경위들도 불렀다. 한 명이라도 더 사진에 들어가야 했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한 장 더 찍었다. 청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꼬마 심현석도 이때 사진에 잡혔다. (중략) 이렇게 꿈에도 그리던, 그리고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소중한 나라라고 알려주던 고국으로 귀국을 했다. 거창한 환영식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역만리에서 독립운동을 한 고생을 알아주기만 해도 좋았을 것 같다. 그러나 광복을 맞은 지 거의 1년이 다 지나 도착한 그들을 대하는 고국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3부 독립전쟁, 그리고 해방이 오다 〈아! 환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