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증폭사회
누가, 왜 우리를 불안과 공포로 내몰고 있는가?
-멸종의 길에 들어선 한국사회와 미쳐가는 한국인에 관한 최초의 심리 보고서
오늘의 한국인은 단군 이래 최악의 불안과 우울, 무기력과 분노를 경험하고 있다. G20 정상회담 주최, GDP 증가,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도달, OECD 가입 등 갖가지 성공적인 지표 이면에는 한국인의 어두운 그림자를 알려주는 통계가 도사리고 있다. 행복지수는 세계 50위권에 불과하고 OECD 국가 중 남녀 소득 격차, 국채 증가율, 세부담 증가율, 저임금 노동자 비율, 근로 시간, 노동유연성(해고의 용이성), 산재 사망자, 비정규직 비율, 이혼율, 자살률, 사교육비 비중 등이 1위인 대한민국. 이 보고들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생존을 위협당하며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김태형은 신간 『불안증폭사회』(위즈덤하우스 刊)에서 한국인의 심리 상태를 한마디로 ‘불안’, 즉 생존위협에 대한 만성화된 공포라고 규정하고, 자살률이 높아지는데 출산율은 줄어드는 한국사회가 이미 멸종의 길로 들어섰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또한 IMF경제위기 이후 사회 시스템의 변화와 환경에 대해서는 다각도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국인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인의 병든 마음의 일차적 책임은 한국사회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마음의 병을 유발하는 사회적 요인은 아무리 양보해도 70퍼센트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간의 (저자를 비롯하여) 심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자살 및 범죄 등 사회의 이상 징후에 대해 당사자의 이상 심리와 일탈로 해석하고 개인 책임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70퍼센트에 대해서는 침묵해왔다. 왜일까?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불안증폭사회』는 이 사회적 책임 70퍼센트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다.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해야 병을 극복할 수 있는 법. 이 책은 IMF위기 이후, 한국사회가 한국인의 마음을 어떻게 망가뜨려왔고 병들게 했는지, 또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의 불안의 실체는 무엇이고 한국인들이 왜 유독 불안 요소에 취약한지를 분석한 심리학 보고서이다. 이 책은 또한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한국인의 9가지 심리 코드로 분석해내는 한편, 우리 민족의 심리적 강점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공동체 만들기를 제안한다.
대한민국은 불안공화국이다!
심리학자가 분석하는 불안 증폭의 9가지 심리 코드
심리학자인 저자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한국인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9가지 심리 코드로 설명한다. 이기심, 고독, 무력감, 의존심, 억압, 자기혐오, 쾌락, 도피, 분노가 그것이다. 치솟는 자살률, 성범죄율, 사이비종교의 확대와 각종 중독 등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사건, 사고, 병적 징후는 이 9가지 심리 코드로 나타나며 이러한 사건들은 다시 한국인에게 부정적 감정을 야기하여 우리 사회에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된다.
특히 이 가운데 무력감과 의존심, 자기혐오는 생존을 위협당하는 현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한국인 스스로 일어날 의지마저 박탈하고 있다. ‘나 혼자 이 미친 세상을 어떻게 바꿔?’라는 무력감과 독재자에 대한 향수, 역사적으로 중국, 일본, 미국에 의존하는 주류세력의 사대주의, 나라 경제를 재벌에게 맡기고 국민은 떡고물이 언제 떨어질까 기다리게 하는 트리클다운 정책, 분에 넘치는 명품 모방소비, 하급계층이 부유층을 대변하는 부자정당을 지지하는 계급배반 투표 등, 한국사회 특유의 심리 코드를 심리학자인 저자는 신랄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해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나의 불안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파악하고 한국인의 운명통제 욕구가 어디서 어떻게 좌절되어 우리 사회가 이토록 분열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병을 이기는 것은 병을 아는 데서 출발하듯, 우리 사회가 병든 원인과 결과를 철저하게 분석한다면 비로소 자기반성이 가능해지고 희망적인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vs. 외상후 성장
위기 이후 한국인의 선택은?
IMF경제위기는 한국인에게 거대한 쓰나미와도 같았고, 이후에도 우리는 그 생존위협이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한국사회는 IMF 때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보호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신자유주의 경제발전 노선을 채택하여 국민들을 무한경쟁 속에 방치함으로써 한국인의 트라우마를 악화시키고 공포를 만성화시켰다. 그때부터 한국인은 자기 자신 말고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다는 처절한 교훈을 떠안은 채, 승자독식 원리에 지배당하고 있다. 승자독식, 즉 악의의 경쟁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는 경쟁이다. 이기는 극소수의 사람이 패배하는 다수의 몫을 털어가는 우리 사회는 ‘개평도 없는 싹쓸이’, 즉 피눈물도 없는 도박판으로 변모했다. 한국의 소득불평등이 OECD국가 중 ‘최고속’으로 악화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승자독식의 원리는 또한 ‘오광이나 판쓸이’ 혹은 ‘로또 당첨’에 대한 환상과 투기 심리를 불러일으키고 경쟁에서의 낙오가 죽음을 뜻하는 공포감을 조성하였다. 그리하여 저자는 한국인이 혹독한 IMF위기와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휩싸인 결과, 흠씬 두들겨 맞고 푹 삶아져 보신탕집 식탁 위에 오른 개 신세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이러한 한국인의 심리 상태를 IMF경제위기라는 크나큰 정신적 외상을 겪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본다. IMF위기가 크나큰 외상으로 각인된 것은, 위기 자체가 공포였다기보다 위기 상황을 개인의 힘으로는 전혀 통제할 수 없었던 무력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신적 외상을 입은 후에 오히려 마음이 더 튼튼해지고 성숙해지는 이들도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외상후 성장’이라고 한다. 저자는 한국인들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서 벗어나 외상후 성장으로 현재의 고통을 승화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아무리 큰 정신적 외상이라도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계승·발전되어온 우수한 민족적 특성을 단번에 뭉개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 고유의 심리적 강점에 주목하며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도 이 책을 집필한 주요 동기다.
더 이상 돈과 불안을 맞바꾸지 않겠다
우리에게는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
국회의원 차명진은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 캠페인에 참여해 최저생계비 6,300원으로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게’ 세 끼를 먹고도 문화생활과 이웃돕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였으나 세간의 웃음거리만 되고 말았다. 사람이 돼지라면 사료만 먹고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돼지가 아닌 인간이기에 최저생계만으로는 생존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돈과 물질만으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은 신자유주의가 심어놓은 허상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사람은 특히 한국인은 육체적 생명보다 사회적 생명을 중시한다. 과거 일제시대 애국자들이 죽음을 두려워 않고 독립운동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도 육체적 생명보다 사회적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 까닭이다. 사회에서 소외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기도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삐뚤어진 명품 열풍과 사교육비의 증가 등 많은 한국사회의 문제들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준에 자신을 무리하게 맞추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 이상 한 강토에서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면서 살아온,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사회집단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들의 공동체의식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아주 강하다. 동학농민운동이나 독립운동과 같은 반외세 저항운동, 4·19혁명이나 5·18 민주화운동 같은 반독재 민주화운동, IMF사태 때의 금모으기 운동, 월드컵 때의 길거리 응원,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건 직후의 전 국민적 자원봉사 등은 한국인이기에 가능한 공동체의식의 발로였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한국인들은 집단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크게 느낀다는 의미가 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무한경쟁의 사회, 국민의 삶의 질과 여가, 건강에 무심한 사회는 극소수의 승자와 패배한 다수로 양분될 것이고 이는 곧 우리 사회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극히 사회적인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다시 일어나 희망으로 가는 길
한국사회를 비판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한편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폭주하는 한국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남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점검하고 바꾸어나가야 할 대안이다.
가장 핵심적인 대안은 공동체를 재건하는 것.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거나 두세 명이 뜻을 모아 독서모임조차 만들지 못하는 현실이지만, 개인적인 분투만으로는 병적인 사회의 파상공세를 이겨내기도, 역공격을 가하기도 어렵다. 저자는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해결책은 파편화된 개인이 고립된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극히 사회적인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는 말처럼, 한국사회의 문제가 곧 한국인의 생존을 위협하고, 동시에 한국인의 고통과 불행이 한국사회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다. 개개인이 당장의 생존을 걱정하기보다 사람답게 사는 길을 고민하고, 힘을 모아 건강한 공동체를 조직함으로써 사회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악영향을 함께 이겨낼 때 우리 사회는 차츰 역주행을 멈추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