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잃어버린 세계 - 캄브리아기 폭발의 비밀을 찾아서
다윈에게 인정받을 단 한 권의 책. _〈파이낸셜 타임스〉
“그 많은 생물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시베리아 끝에서 외몽골, 아마존 밀림, 스코틀랜드 산골짜기까지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지구에 새겨진 생물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고생물학자들의 분투기
왜 하필 캄브리아기에 생명이 폭발적으로 등장할까
《종의 기원》을 쓰기 직전 다윈은 무척 당황했다. 캄브리아기 암석에는 삼엽충을 비롯한 동물 화석이 가득했지만, 그 이전의 암석은 무서울 정도로 적막했다. 캄브리아기 동물들의 조상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캄브리아기와 선캄브리아 시대 사이에 기나긴 단절이 있었을까? 생명의 기원을 알려줄 단서는 영영 사라진 것일까?
말하자면 1859년까지 어떤 지질학자도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에서 신빙성 있는 화석을 찾아내지 못했다. 삼엽충 아래에는 뚜렷한 동물 화석이 없었다. 선캄브리아 시대가 짧은 시기였다면 별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캄브리아 시대는 지구 역사의 대부분(약 80%)을 차지했다. 저자 마틴 브레이저는 이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라 칭한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캄브리아기 폭발’이라고 알고 있는 생명의 빅뱅이 일어난 이유를 마치 추리소설의 범인을 추적하듯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19세기 중엽에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바라보는 시각은 창조론이 대세였다. 실제로 창조론자들은 ‘캄브리아기 폭발’을 창조의 증거로 선전하였고, 과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캄브리아기 이전의 지층에서는 아무런 생명의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갖가지 가설이 난무했다. 캄브리아기 밑에서 골격 화석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화석 기록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라는 ‘라이엘의 감’,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쉽게 화석화되는 광물 골격의 진화 때문이라는 ‘솔러스의 수’, 바닷물의 화학적 조성 변화로 인한 칼슘 골격의 진화 때문에 일어났다는 ‘달리의 꾀’. 저자는 캄브리아 폭발이 일어난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면서 결국 이 세 가지 가설이 틀렸음을 증명한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나? 불가능한 것을 제거하고 나면, 무엇이 남든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하든 그것이 진실일 수밖에 없다고 말일세.” (셜록 홈스)
진화의 현장을 목격한 증인, 미화석을 통해 들여다본 생명의 진화사!
‘찻숟가락’만큼의 모래와 진흙에 얼마나 많은 생물이 들어 있을까. 아라비아 사막의 모래처럼 새하얗고 밋밋한 해저 표본에는 유공충 원생동물 수백 종이 들어 있다. 개체 수로 따지면 1만 마리에 달한다. 그 밖의 작은 생물이나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제외하고도 그 정도다. 지구상에는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이런 생물이 무척 많고 다양하다. 이들을 통해 과학자들은 생명의 역사를 파헤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얻는다. 과학자들은 미화석을 이용해 고고학 유물을 찾거나 기후변화를 연구하기도 하고, 석유를 탐사하고 무엇보다 심층사의 관점에서 생명의 역사를 탐구한다. 미화석은 진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한 확실한 증인이기 때문이다.
1859년에만 해도 찰스 다윈은 미화석에 이런 잠재력이 있으리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다. 오히려 약 5억 4,000만 년 전 캄브리아기가 시작할 무렵에 살았을 큰 동물의 화석이 전혀 발견되자 않자 무척 당황했다. 그 뒤로, 특히 최근 60년 동안 현대과학을 통해 충격적 사실이 밝혀졌다. 그것은 바로 진화사의 약 90퍼센트가 대부분 세포의 형성을 준비하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화석 기록은 생명체의 패턴과 과정, 의미를 해독하기 위한 최고의 안내서다. 이 책은 과학자들이 근사하게 보존된 대형 화석과 수십억 년 묵은 암석에 들어 있는 미화석을 연구하여 동물의 초기 역사를 조금씩 파헤치는 과정을 생생히 그려 보여준다.
이 책은 캄브리아기 폭발과 수수께끼 같은 에디아카라 생물군에서 출발하여 10억 년 전 첫 복합세포의 탄생을 향해 과거로 훌쩍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매 장을 시작할 때면 중요한 질문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시베리아, 중국, 인도, 이란, 캐나다, 스코틀랜드 등 전 세계 주요 화석 발굴 현장을 그림처럼 묘사하고, 화석 사냥꾼, 고생물학자들이 거대한 지층에서 찾아낸 화석과 그 비밀을 캐내기 위한 고투를 낱낱이 보여준다. 또한 최초의 생명을 탐구하는 이 모든 일이 얼마나 풍부하고 다채로운가를 쉽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생명은 어디서 왔을까? 과거의 무수한 과학자들이 이러한 질문에 나름의 해답을 내놓았고, 또 그다음 세대의 과학자들이 다시 무대에 등장하여 더 나은 해답을 찾아냄으로써 과학은 진보한다. 저자는 고생물학이라는 분야가 어떻게 과학으로서 연구되는지, 질문이 어떻게 모양을 갖추는지, 초기 동물 생태의 화석 기록이 어떻게 해독되는지 밝힘으로써 발아래 풍부하게 펼쳐진 생명의 역사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모래알 속에 든 작은 세상, 고생물학의 매력에 흠뻑 취하다
저자에 따르면, 캄브리아기가 시작될 무렵의 바닷속은 걸쭉한 먹이 입자 수프를 후루룩 들이마시는 대롱벌레 천지였다. 저자는 마치 퍼즐 맞추기를 하듯 캄브리아기 폭발에 숨겨진 생명의 역사를 찾아가면서 아득히 먼 옛날 지구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보여준다. 까마득히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지구 위에 생물들이 어떻게 존재하고 생명을 이어 나갔는지 구수한 입담과 뛰어난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보는 생물들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생물들이 춤을 추듯 유영하는, 차라리 머나먼 행성처럼 보이는 지구의 낯선 모습을 그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고생물학자로서 철학과 신념, 기상천외한 개인적 일화, 화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과학계의 숨겨진 뒷이야기 등을 곁들여 얼핏 고리타분해 보이는 고생물학의 세계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과학계의 암투와 자기가 발견한 표본에 대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과학자들의 태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정화되는 과학의 메커니즘까지 재밌게 소개된다.
천문학이 별과 우주를 바라보며 인간의 존재를 아울러 생각하게 한다면, 고생물학은 겸허히 우리 발밑에 존재하는 거대한 지구와 생명의 역사를 상상해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마치 추리소설의 범인을 추적하듯, 저자가 설명하는 대로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 나가다 보면 어느새 심원한 지구의 시간 속을 유유히 거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흥미진진한 비밀을 찾아, 누구나 시간여행자가 되어볼 일이다.
다윈 탄생 200주년 기념 도서
저자 마틴 브레이저는 현재 옥스퍼드대학교 고생물학과 교수로 선캄브리아기와 캄브리아기의 미화석과 진화 연구로 유명한 고생물학자이자 우주생물학자이다. 유네스코 및 국제 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선캄브리아-캄브리아 경계 결정을 위한 국제지구과학프로그램의 의장이었으며, 이 회의에서 수직 굴을 파는 동물의 흔적화석 군집을 토대로 현생누대, 캄브리아기와 선캄브리아기의 시작과 끝을 정의하였다. 화석 사냥꾼, 즉 고생물학자들이 하는 일은 현장 지도와 일지, 광학적 암석 분류, 안정동위원소의 지구화학적 성질, 공초점 현미경, 마이크로프로브, 고해상도 3D 스캐닝과 레이저 라만 분광법 등 고리타분해 보이는 이름과 달리 최신 과학 기법들을 이용해 초기 화석 기록의 맥락과 특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마틴 브레이저는 대학 졸업 직후 다윈이 탔던 비글 호의 후임 선박인 폰 호에 올라 선상 박물학자가 되었으며, 이후 40여 년 동안 시베리아, 중국, 몽골,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수많은 오지에서 현장 조사를 하였다. 이 책은 그의 첫 대중과학서로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2009년에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