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공부 가이드
한국의 평생학습 실태와 대안으로서의 평생공부
서울시를 비롯한 많은 지자체에서 평생학습, 평생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종류의 교과 과정이 운영되고 국정사업으로까지 추진되고 있는 걸 보면 평생학습을 해야 한다는 명제는 이제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국민의 평생학습 참여율은 35.6퍼센트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40.4퍼센트에 훨씬 못 미치고 소득계층 간 평생학습 격차도 14퍼센트나 된다. 현행 평생교육법은 각 시·도별로 평생교육진흥 시행계획을 세워 평생교육진흥원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2013년 말 현재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1곳(64.7퍼센트)에만 진흥원이 설치된 상태이고, 그나마도 11곳 중 9곳은 위탁 형태여서 안정적인 운영이 안 되는 실정이다.
한국에서 평생학습 교육과정은 재취업을 돕거나 단순한 기예를 익히도록 하는 실무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넓게 보면 평생공부의 목적은 개인의 신체적·인격적인 성숙과 사회적·경제적·문화적인 성장 발달을 전 생애를 통해 지속하는 데 있으며, 이러한 평생공부의 기회는 삶의 현장에서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든 이루어질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전설적인 브리태니커 편집장 모티머 애들러는 이러한 평생공부의 개념마저 한 단계 뛰어넘어 인간으로서 이룰 수 있는 수준 높은 교양의 경지, 르네상스인(종합적 교양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인류가 이제까지 쌓아온 지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지도를 완성했다. 그것이 바로 이 책 『평생공부 가이드』다.
진정한 앎의 추구
사람은 앎을 추구한다. 아니 앎과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 앎은 필요불가결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이 문제는 예부터 지금까지 알고자 하는 이에게 언제나 수수께끼였다. 축적된 자료를 통해 다음 단계로 발전하는 일이 가능한 물질문명과 달리 거의 온전히 개인 자신에게 속하는 정신문명은 자신이 깨달은 것 혹은 알아내고 아는 것을 타인에게 완벽하게 전할 수 없다. 따라서 여기서의 앎은 지식이 아니다.
지식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선 안 된다. 당장 먹고살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 컴퓨터 쓰는 법을 모르고 현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듯, 우리의 생활은 크고 작은 지식으로 영위된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삶을 보았을 때 사람은 지식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앎을 추구하는 사람은 우리 앞에 펼쳐진 지식과 정보를 관통하는 핵심과 그 모든 것을 개관할 수 있는 시야를 원한다. 그것이 단지 박학다식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런 사람이 앎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통찰하는 힘이 아닐까.
이 책 『평생공부 가이드』의 저자 모티머 애들러가 그 힘을 얻기 위해 강조하는 공부가 바로 그것이다. “청년기에 학교 교육을 끝마친 이후 성년기에 스스로 공부해서 교양을 두루 함양한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는 이들의 종합적 공부.” 이 공부는 한 분야의 지식으로 특화된 전문가가 아니라, 인간의 학식 전반을 개관하는 종합적 교양인이 되기를 원하며 거기에서 지혜를 얻으려는 사람의 공부다. 이 책은 그런 공부를 하려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다.
전문화라는 야만
전문가 양성을 표방하며 삶과 앎을 분리한 교육의 병폐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된 문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합적 교양인을 목표로 삼던 지성인은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전문성을 추구하는 사회의 요구에 점차 삶과 앎을 분리했다. 예리한 지성인들은 일찍이 이런 편향된 지식 추구와 전문화의 문제를 지적했고,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역시 그런 이 중 하나다. 그의 ‘전문화라는 야만’이라는 표현은 전문성을 빙자한 편향된 지식을 경고한다.
“문명은 20세기 초에 이르러 하나만 잘 알고 다른 모든 것에는 근본적으로 무지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얼마나 어리석고 그러면서도 얼마나 공격적인지를 드러내는 경악스러운 광경을 목도했다. 균형 잡히지 않은 전문가주의와 전공 때문에 유럽인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 결과 유럽인은 한때 자신이 가지고 있었으며 지금 절실히 필요로 하는 중요한 것을 몽땅 잃고 있다.”(235쪽)
모티머 애들러가 이 책을 쓴 것은 오르테가의 경고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평생공부의 지도
평생공부를 하고자 할 때 우리는 대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먼저 저자는 가장 이상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종합적 교양인이자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학교 교육을 받는 시기와 성년기에는 종합인이 되어야 하고, 중간의 대학 시절에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지식의 전 영역에서 학식을 고르게 익혀야 한다(그가 제시한 이 지식의 영역은 부록에 잘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저자는 인문학을 제시한다. 다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오염되어 상투적으로 쓰이는 인문학은 아니다. 저자에게 인문학이나 인문학적 학식은 “지식의 특정한 갈래에서 전문성을 갖추는 것과 상반되는, 지식의 모든 부분에 대한 종합적 접근법”을 뜻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고대와 중세에는 학식의 영역을 이론과 실천으로 나누었다. 이론은 앎 자체를 위한 앎 혹은 생산성과 기술에 필요한 앎이며, 실천은 우리 자신의 삶과 사회에서 지혜롭게 행동하도록 돕는 앎이다. 그러나 실천의 위한 앎, 삶을 위한 앎은 현대로 오면서 기술과 생산성에 밀렸고 지금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분과들을 제하고 남은 떨거지가 되었다.
저자는 종합적 교양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우선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별로 앎을 어떻게 분류했는지, 그 분류가 시대의 요구에 어떻게 부합했는지 현대에는 이 분류를 어떻게 응용하고 확장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그다음 앎 자체가 무엇인지 탐색하며 종합적 교양인에게 전문적 학식과 함께 인간의 모든 학식에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종합적 교양인이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라고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흔해서 의미조차 희미해진 ‘교양인’과 ‘인문학’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따져 묻는다. 그리고 그 묻는 과정에서 독자에게 올바른 앎이란 쏟아지는 정보를 암기하는 따위가 아니라 삶 자체에 녹아들어 자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요컨대 이 책은 앎에 대한 근본적 탐구이자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알아 가고자 하는 이에게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지도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