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저자
최동석
출판사
21세기북스
출판일
2014-06-23
등록일
2014-11-26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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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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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11년 설봉호, 그리고 2014년 세월호
반복되는 국가적 재난, 누구의 책임인가?

2011년 9월 6일 자정을 막 지난 시간, 여수 남쪽 73km 해상을 지나던 여객선 설봉호에서 원인모를 불이 났다. 여객선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설봉호의 선원은 곧 선장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고, 선장은 즉시 해경에 신고하고 선원들을 정 위치에 배치했다. 동요를 막기 위해 승객들에게는 조용히 상황을 알리고 구명동의를 지급한 뒤 선수갑판으로 유도했다. 곧 비상 사다리가 내려지고 구명정이 펼쳐졌다.
신고를 받은 해경은 급히 출동하면서 해군에 상황을 알렸고, 인근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해군 함정이 먼저 현장에 도착해 구조 활동을 펼쳤다. 바다에 뛰어내린 승객들은 고속단정이 건져 올렸고, 뒤이어 해경 경비정 등 배 30여 척이 몰려들었다. 화재 진압에 나선 배, 구조 활동에 나선 배, 구조 승객을 수송하는 배가 모두 제 역할을 하기에 바빴다. 결국 2시간여 만에 승객 전원이 구조됐다.
세월호 사건은 설봉호 사건에 비해 육지에서 훨씬 더 가까운, 훤한 아침의 잔잔한 바다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시간적 여유도 충분했다. 하지만 배 안에 있는 승객 중 단 한 사람도 살려 내지 못했다.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걸까?
답은 간단하다. 세월호 사건에는 윗선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설봉호 사건에는 윗사람들이 개입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해경과 해군이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신속하게 사고를 처리했다. 하지만 세월호는 선장과 선원들이 해운사와 해경 윗선의 지시를 받느라 승객 구조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윗선이 개입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없던 문제까지 생긴다. 그들은 현장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원칙적인 지시를 내리면서 아랫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한다. 현장에서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더라도 윗사람의 지시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제가 점점 커진다. 세월호 사건도 그렇게, 재앙으로 끝났다.
계속되는 재난은 지도자의 무능이나 국민성이 아닌,
올라갈수록 권한은 커지지만 책임은 줄어드는 관료시스템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과 간첩조작 사건, 용산 참사 그리고 세월호의 침몰….
국가적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후속 조치들이 발표되지만 그때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건은 형태를 달리하여 되풀이된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의 저자 최동석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는 원인을 ‘개인의 무능’이나 ‘국민성’이 아닌 관료조직의 ‘의사결정제도’에 두고 있다. 시스템이 똑똑한 사람들을 무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바로 ‘품의제도’다.
품의제도란 어떤 사안과 관련된 말단 사원이 최종결정자에게 올릴 품의서를 만들어 결재를 받는 제도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사결정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최종결정자뿐만 아니라 결정에 참여한 모두에게 있다.
그래서 품의제도는 마치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여 사안을 결정하는, 얼핏 보면 ‘민주적인 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최종결정자에게 권한은 몰아주고 책임은 지우지 않는 제도일 뿐이다.
우선 의사결정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잘못된 의사결정과 실행을 하지 않더라도 권력자의 필요에 따라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대개 윗사람이 행사한 권한에 대한 책임은 아랫사람이 지고, 그래서 큰 사고가 발생하면 그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 이 제도에서 부하들은 상관에게 품의하기 위한 ‘인적 자원’에 불과할 뿐 아무런 자율적 결정 권한도 없고, 고유 업무도 갖지 못한다.
그럼에도 품의제도가 폐기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권위주의적인 사람들에게는 품의제도보다 더 좋은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상관이나 지도자로서 현실을 분석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한 후 이를 토대로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려면 끊임없는 공부와 창의적인 아이디어 생산이 필요하지만 이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최동석 교수는 독일연방은행 직원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이러한 우리나라의 관료사회와 서구 관료사회의 실태를 비교한다.
“우리는 63세까지 일해야 해요. 정년 나이가 너무 높아서 불만이지요.”
“우리는 58세까지 밖에 일을 못해요. 그것도 56세에는 현업에서 손을 놓고 후선으로 물러나야 하는데, 독일은 상당히 좋은 편이군요. 우리도 정년을 좀 더 연장해야 하겠네요.”
“(…) 역시 한국인은 일하기를 좋아하고, 더 오래 일하기를 원하는군요. 우리가 58세까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저는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그들은 정년을 낮추기를 원했고 우리는 63세까지 연장하기를 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 그들이 은퇴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윗자리로 올라갈수록 자신이 직접 처리해야 할 업무량과 권한이 늘어날 뿐 아니라 동시에 책임도 막중해져 육체적, 정신적 압박이 훨씬 커지기 때문입니다. (…)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권한은 막중해지면서 책임은 오히려 줄어드는 매우 ‘야릇한’ 시스템 속에 살고 있다는 실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 ‘한국인은 일하기를 좋아한다?’ 중에서
올라갈수록 책임과 권한이 막중해지는 서구조직과 달리 우리나라 관료사회에서는 지위가 올라갈수록 더 편하고, 더 많은 권력을 누리고, 더 많은 보수를 받고, 더 많은 아랫사람들을 거느리고, 책임은 오히려 줄어든다. 승진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단 올라서면 모든 것을 갖되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제도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진하고 승리하는 데 사활을 거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히 관료들에게 국민이나 아랫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상관에게만 잘 보이면 되기 때문이다.
야만적인 제도를 바꿔야
개인과 국가의 근본적인 개혁이 가능하다

영어에는 ‘결재’라는 단어가 없다. 개인이 독립적으로 자신의 권한과 책임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직무수행 방식을 그저 의사결정이라고 부를 뿐이다. 최동석 교수는 품의제도의 대안으로서 이러한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제시하면서 이를 ‘단위업무담당제’라고 부른다.
단위업무담당제에서 상관은 의사결정 사안을, 품의제도에서처럼 위계질서에 따라 업무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라 그 사안에 대한 전문가, 즉 적임자를 골라 직위에 관계없이 업무지시를 내린다. 그러면 업무를 맡은 담당자는 다시 자신의 부하에게 그 일을 재차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검토안을 작성하여 보고한다. 그리고 상관은 보고안을 검토한 후 자신의 책임 하에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렇기 때문에 각 직책을 맡은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업무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진다. 직무수행 결과에 대한 평가를 받기 때문에 규제를 위한 규제도 있을 수 없다. 한마디로 각자 자기 일을 자기가 알아서 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국가적인 위기를 경험할 때마다 개인의 의식을 바꾸고, 조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의식개혁을 위한 각종 교육과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방법이다. 우리는 이미 새마을 운동, 새정신 교육, 새생활 운동, 바르게 살기 운동, 심성 훈련, 각종 의식개혁 교육 등에 수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하지만 구호나 운동, 정신교육 프로그램으로는 개인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개인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구호는 자신의 생각을 조작하려 한다는 반감을 갖게 할 뿐이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에서는 조직구성원과 조직을 변화시키기 위해 의사결정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는 제도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명확히 밝혀 주는 단위업무담당제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제도가 주는 책임감만이 개인의 창의력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제도는 결국 다시 인간을 만든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관료조직이 과거에 성공적이었던 사고방식과 행동패턴을 바꿔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부패에서 부패로, 왜곡에서 왜곡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무능과 부패를 가속화하는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어떠한 개혁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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