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의, 여덟 살
하늘이 내려준 고강도 밀착 집단 ‘가족’ 이야기
사랑도, 라면도 부족하기만 했던 1980년의 미아리
여덟 살, 대체적 밉상의 문제적 고백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 <행복한 멈춤, STAY>로 수많은 독자를 설레게 했던 유쾌한 입담, 박민우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이다. <마흔 살의, 여덟 살>은 제목에서 보이듯 마흔 살이 된 저자가 여덟 살 당시를 회상하며 써내려간 자전적 소설이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가난하고 부족하기만 했던 미아리에서 무소불위의 힘으로 때리고 빼앗던 형, 핏줄이라는 구태의연한 가치에 귀결되는 가족애, 동네의 생태계에서 소외되는 왕따 등의 경험이 미아리의 가난한 삶과 함께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깐도리, 왔다 쵸코바, 이뿐이 비누, 스카이 씽씽, <소년중앙>, <어깨동무> 등 기억 속에서만 머물고 있는 사물들이 박민우 작가 특유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책 속에서 또렷이 살아 움직인다. 배고팠던 시절, 증오하고, 투쟁하며 결국 서로에게 기댈 수 없는 가족의 가치를 애잔한 향수와 함께 절절히 표현해 낸다.
가난도 지질함도 유쾌하게 그려내는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여행 작가 박민우의 자전적 소설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 <행복한 멈춤, STAY> 등 기존의 여행서와 달리 적나라한 솔직함과 배꼽을 잡는 유쾌함으로 흡인력을 자랑하는 박민우가 첫 소설을 냈다. 이전 여행서에서도 언급했던, 박민우의 첫 소설은 유년 시절의 경험이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나 샘터에 발간한 <노란 손수건>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나도 전하고 싶었다. 그런 느낌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소재가 미아리였고, 나였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서울의 수많은 동네 중 가난의 대명사이기도 했던 미아리에서 펼쳐지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박민우 특유의 입담으로 걸출하게 풀어나간다. <마흔 살의, 여덟 살>이라는 책 제목에서 보이듯 마흔 살의 나이에 여덟 살의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돌아보며 가족과 화해하고,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의 묵은 상처를 따라가다 보면 곪아 있던 우리의 상처도 치유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짙은 향수, 애잔한 그리움
유년의 기억을 통한 1980년 미아리의 기록
7080 세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다. 사랑도, 라면도 부족하기만 했던 1980년의 미아리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마흔 살의,여덟 살>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기억이기도 하다. 똥 속에서 꼬물대던 구더기가 비치고 그 위를 쥐들이 뛰어다니던 화장실의 조악함, 꼬질꼬질한 소매의 옷을 입고 콧물을 흘렸던 꼬마들, 계란프라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형 동생이 싸워야 했던 가난, 척박한 삶 속에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부모님. 그 시절은 아련한 그리움인 동시에 아픈 상처이기도 하다.
자칭 꼬마 천재인 여덟 살 주인공의 독백은 그래서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작가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통해 가난 속에서도 끈끈했던 가족의 사랑과 30년 전에도 여전한 왕따의 아픔 등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였다. 가난했기에 피할 수 없었던 삶의 처절함도 정면으로 응시하고, 써 내려간다. 단순한 향수를 넘어 어린 자아의 성장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성찰까지 이끌어내는 박민우 작가의 첫 소설은, 그래서 결국 아름답고 따뜻하다.
열 번을 읽으면 열 번 모두 다르게 다가오는,
박민우 식의 이상하고 괴상한 소설
박민우 작품의 특징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흔 살의, 여덟 살>은 화자가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넘나들며 마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듯 편하게 이끌어간다. 회상도, 그 회상을 고백하기도 힘든 장면에서는 가끔 이야기를 뚝 끊고 현재로 돌아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이러한 구성 때문에 <마흔 살의, 여덟 살>은 실제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대단한 생동감을 전해준다 .
“내 글을 읽는다는 건, 나를 만나는 것과 같다. 내 글을 읽는 이들이 반가움과 연대감을 느끼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독자들은 마흔이 된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동참해 진한 공감과 애잔한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만 시간 동안의> 시리즈의 팬이라면 이 소설을 통해 박민우 작가와 더욱 깊고 친밀한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