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잠으로의 여행
좋은 잠, 나쁜 잠, 이상한 잠
역설적이게도 깨어 있는 시간을 지배하는 것이 잠자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단지 푹 자야 건강한 신체를 유지한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우리는 꿈을 통해 객관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할 주관적인 경험을 하며 깨어 있는 삶에 대한 내성을 만든다. 또한 깨어 있는 동안 배웠던 지식과 그에 따라오는 감정을 자는 동안 곱씹으며 나의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잠은 좋은 것이고, 가끔은 나쁜 것이고, 또한 이상한 것이다.
우리는 매일 두 가지 세상에서 산다
현대인의 하루를 이야기해보자. 아침에 눈을 뜨고, 각자 일터로 학교로 혹은 집에서의 일을 하러 자리를 옮긴다. 그러고는 삶에서 각자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다가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흔히 우리가 잠자리라 부르는 곳으로 돌아와 눈을 감으며 하루를 끝낸다.
과연 하루는 그렇게 끝날 것인가? 외부와 단절된 채, 깨어 있던 시간에 만났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내면의 세상과 만나게 되는 새로운 시작이 기다린다. 바로 잠이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그 순간에 대해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잠은 완전히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잠을 잘 때는 자기 자신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한 진술도 할 수 없다. 일부 생생한 꿈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흐릿한 기억에 의존할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잠을 자면서 했던 경험은 소용이 없는 것일까? 남들과 공유할 수 없는 경험이지만 우리는 잠자며, 무서운 것에 쫓기고, 나무에서 떨어지며, 하늘을 날고, 성관계도 한다. 그런 경험은 우리 인생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일까? 수많은 훈련을 했던 권투선수는 다운을 당하면서도 주먹을 내뻗는다. 이후에 그 선수는 자기가 주먹을 뻗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작용하지 않을까? 무의식 상태에서 했던 수많은 경험이 일상 생활에서 발현되거나 영향을 주는 것 말이다.
우리는 하루 중 거의 3분의 1일을 보내는 잠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잠을 비효율적인 시간이라 생각해서 잠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는가 하면, 잠을 남들보다 더 자는 것을 게으른 것이라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잠은, 저자의 말을 따르자면, 이 행성에서 살아가려면 꼭 필요한 것이고 또 하나의 신비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잠은 효율적이다
현대화된 서구 문명에 큰 영향을 끼친 벤자민 프랭클린이나 에디슨은 잠을 매우 비효율적인 활동이라 보았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게으름뱅이가 자는 동안 땅을 갈아라, 그러면 팔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의 옥수수를 얻을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고, 에디슨은 “밤에 8시간에서 10시간씩 자는 사람은 완전히 잠을 잘 수도 완전히 잠에서 깰 수도 없다”며 잠을 100퍼센트 채우는 건 비효율적이라 했다.
하지만 최근 과학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서파 수면 시간 동안 우리는 낮에 새로 배웠던 내용을 반복하며 학습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로 찾기 훈련을 하고 나서 잠을 잔 쥐는 같은 훈련을 하고 잠을 자지 않은 쥐보다 길을 더 빨리 찾는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시험 준비 시간과 상관 없이 잠을 많이 잔 쪽의 성적이 더 좋았다. 잠은 꽤 효율적인 활동이라는 사실이 속속히 밝혀지고 있다.
게다가 잠은 꽤 창조적인 활동이다. 폴 매카트니가 꿈에서 들었던 음율로 만들었다는 <예스터데이>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잠은 꽤나 창조적이다. 깨어 있을 때는 시간의 축을 따라가는 우리의 인식이 잠이 들면 감정의 축을 따라간다. 잠이 막 들려고 할 때는 예전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이 중첩되면서 새로운 퍼즐을 만들고 그것을 풀어나간다. 구체적인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잠은 매우 위험한 활동임에도 불구하고(잠을 잘 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으므로) 잠을 버리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잠과 깨어 있음은 서로 소통한다
효율과 과학 측면 외에도 잠은 감성을 공유하는 측면이 있다. 서구의, 특히 미국의 부모는 아이를 따로 재우며 울어도 바로 달래주지 않는 것이 독립심을 키운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또한 이를 적절한 수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양 쪽에서는 아이를 즉시 안아줄 수 있는 공간에서 재우는 것이 일반적이며, 바로 달래주는 것이 아이의 정서 발달에 더 좋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리는 코르티솔 수치를 측정한 결과 동양적 방식(함께 자는 방식)이 아이의 스트레스를 크게 낮춰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꿈에서 특정 인물이 나에게 해를 끼쳤다면,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왠지 편한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꿈에 어떤 신비한 힘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꿈에서의 감성과 깨어 있을 때의 감성은 서로 연결되어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꿈에서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다고도 한다. 수천 년간 많은 문화권에서는 잠과 꿈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관찰하고 결론을 내렸다. 인도의 ‘우파니샤드’에서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잠과 꿈에 대한 정의를 내려 놨는데 현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개념과 매우 흡사하다. 잠에 많은 비밀이 있으며 그 신비를 밝히는 방법이 꼭 과학에만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면 더욱 많은 비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잠에 대해, 깨어 있음에 대해, 그리고 잠과 깨어 있음의 그 중간 지대에 대해 선명한 통찰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잠의 과학, 잠의 문화 그리고 잠의 비밀인 것이다.
결국, 잠은 아직 우리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있지만 그 안에 수많은 선물이 숨어 있음을 『행복한 잠으로의 여행』을 읽으며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