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들의 학교
"지금 한국의 극우주의와 여성혐오를 탐구하는 소설의
최전선에 박민정이 있다."_강지희(문학평론가)
새로운 여성 소설을 향한 치열하고 야심찬 발걸음
2017 문지문학상 수상작가 박민정 신작 소설집
박민정의 두번째 소설집 『아내들의 학교』가 출간되었다. "IMF 이후 청년 세대의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특화해 그려냈다"라는 평을 받으며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한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민음사, 2014) 이후 삼 년 만이다. 문지문학상 수상작인 「행복의 과학」을 포함해, 2014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써내려간 일곱 편의 중단편소설은 그전보다 강력해진 목소리로 우리의 귀를 당긴다.
그 목소리는 특히 바로 지금, 국가와 시대를 초월하여 벌어지고 있는 여성혐오 문제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에서부터 "몰래카메라"와 같은 은밀한 폭력에 이르기까지, 박민정은 여성혐오와 관련된 다양한 사례를 소설 속으로 가져와 그간 "덜 시급한" 것으로 취급되어온 여성 문제를 전면으로 들고 나온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써내려간 『아내들의 학교』는 이 시대 여성 소설이 어떻게 다시 쓰일 수 있는가에 대한 가장 치열하고 설득력 있는 응답이다.
“지금 한국의 극우주의와 여성혐오를 탐구하는 소설의
최전선에 박민정이 있다.”_강지희(문학평론가)
새로운 여성 소설을 향한 치열하고 야심찬 발걸음
2017 문지문학상 수상작가 박민정 신작 소설집
박민정의 두번째 소설집 『아내들의 학교』가 출간되었다. “IMF 이후 청년 세대의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특화해 그려냈다”라는 평을 받으며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한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민음사, 2014) 이후 삼 년 만이다. 문지문학상 수상작인 「행복의 과학」을 포함해, 2014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써내려간 일곱 편의 중단편소설은 그전보다 강력해진 목소리로 우리의 귀를 당긴다.
그 목소리는 특히 바로 지금, 국가와 시대를 초월하여 벌어지고 있는 여성혐오 문제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에서부터 ‘몰래카메라’와 같은 은밀한 폭력에 이르기까지, 박민정은 여성혐오와 관련된 다양한 사례를 소설 속으로 가져와 그간 ‘덜 시급한’ 것으로 취급되어온 여성 문제를 전면으로 들고 나온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써내려간 『아내들의 학교』는 이 시대 여성 소설이 어떻게 다시 쓰일 수 있는가에 대한 가장 치열하고 설득력 있는 응답이다.
나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그들은 나를 망칠 수 없다.
박제된 페이지를 찢고 나오는 여성들의 목소리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목소리들이 연결되는 순간
우리의 서사는 새롭게 쓰이기 시작한다
“한국 사회와 문화는 전반적으로 정말이지 피해자를 두려워하는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연약하고 징징대고 예민하고 과하다고들 하면서요. 특히 여성의 목소리를 그렇게 치부하는데, 남성이 이룩해온 이런저런 역사와 전통 아래 감수성의 일대 변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피해자의 말을 온전히 들을 귀는 없을 겁니다.” _박민정 인터뷰 중(『제7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한 인터뷰에서 인상적으로 언급한바, 박민정은 이 시대의 여성 문제를 전면화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 과제를 제기한다. 하나는 ‘남성이 이룩해온 역사’를 재점검하는 것, 또하나는 ‘삭제된 여성의 목소리’를 되살리는 일이다. 일종의 연작인 「행복의 과학」과 「A코에게 보낸 유서」는 이 두 가지 문제를 천착하며 여성혐오와 민족 문제가 결탁하는 양상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편집자 ‘하나’는 일본의 대형 베스트셀러 『류의 이야기―행복의 과학』의 한국어판을 편집하면서 저자인 ‘기노시타 류’의 가계(家系)에 대해 알게 된다. 히키코모리처럼 지내다 신흥종교 ‘행복의 과학’에 입교한 뒤 거기에서 도망쳐 나온 기노시타 류는 일본 최고의 CF 감독 ‘기노시타 히로무’의 손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설은 이 집안에서 배제되어온 존재, ‘기노시타 미노루’의 서사를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히로무의 아들이자 류의 아버지인 미노루는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한국에 현지처를 두었다는 사실에 분노해 한국 여성을 살해한 인물이었던 것. “한국 여성을 특정 증오한” 이 살인 사건은 한국인이자 여성이라는 민족적, 성적 정체성만으로 누군가의 증오와 살해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박민정은 단순히 이 사건을 충격적으로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노루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박영희’의 일기를 소설에 삽입하여, 피해자의 삶이 흥미 위주의 ‘소비’ 대상이 되지 않도록, 그렇게 죽은 사람에게도 “인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피해자 자신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준다. 남성이 이룩해온 역사에서 삭제되어버린 여성의 목소리를 어떤 왜곡도 미화도 없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이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소설세계에 대한 인상적인 인장을 마련한 박민정은 「당신의 나라에서」에서 한번 더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한다. “가상의 역사를 지어내는 사관(史官)으로서 박민정은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은폐된 범죄를 통해 이 시대의 윤리성을 고발하는 생생한 목소리를 이 소설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심사평)라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레닌그라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와 그 시절 ‘나’의 부모의 러시아어 과외 선생이었던 ‘윤지나’의 사연을 교차시키며, 그 차곡차곡 쌓인 사연의 끝에서 피해자이면서 방관자였던 두 여자가 어떤 식으로 서로에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
표제작 「아내들의 학교」는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화된 가상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소설은 동성애를 향한 사회의 배타적인 시선을 넘어선 더 깊은 문제를 다룬다. ‘선’과 ‘설혜’는 결혼 후 아이를 입양해 키우며 살고 있는 커플이다. 문제는 모델인 선이 〈톱 모델 서바이벌 코리아〉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면서 발생한다. 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방송 소재로 적극 활용하려고 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의 행태는, 대학 시절 여학생회 활동을 하던 설혜가 한 선배에게 “부끄러운 일 아니잖아. 너는 네가 부끄럽니?”라는 말을 듣고 아우팅을 당해야 했던 경험과 연결된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금기가 사라진다는 게 곧 동성 커플이 그토록 바라던 ‘유토피아’가 왔음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이 소설은 동성애가 사회에서 소비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아내들의 학교」는 두 여성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문제적이다. 소설 속 여성들은 ‘온갖 욕설을 동원해 모욕하고 엎어놓은 뒤 발길질을 하고 목을 조르거나’, “이마를 마음놓고 쓸어보고 싶었고 붉은 빛깔을 가진 입술과 손톱을 매만져보고 싶”은, 때문에 폭력적이기도 한 욕망을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이는 『아내들의 학교』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들 중 어떤 여성도 평면적이고 수동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사실과도 연결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혐오범죄의 대상이 되면서도, 끝내 고유한 서사를 통해 자신의 온전한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 가해자의 육성이 생생하게 새어나오는 중에도 그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보다 더 날카롭게 울려퍼지는 여성들의 목소리 덕분일 것이다.
여성 문제를 둘러싼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박민정은 이 뜨거움이 양날의 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뜨겁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쉽게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그 뜨거움에 눌려 냉철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내들의 학교』가 우리에게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소재 때문이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박민정의 차갑고 집요한 시선 덕분일 것이다. 뜨거운 문제를 손에 쥐고 동시대와 긴밀히 감응하는 박민정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서사가 새롭게 쓰이는 순간을 목도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