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거인 이야기
“숲으로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으세요? 이 이야기는 쓰러진 한 거인의 이야기입니다.
숲속 나무의 가지와 잎에는 아직까지도 거인의 슬픈 울음소리가 서려 있죠.”
I. 숲의 언어를 인간의 문자와 그림으로 통역한 작품
이 작품은 ‘성 요한의 축일’을 배경으로, 불에 탄 거대한 나무를 거인에 은유하여 숲속 식물들의 죽음과 소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나무를, 숲을, 자연을 눈에 담으려고 합니다. 식물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단정 짓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식물은 여러 방법으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넨답니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색을 통해, 떨어지는 잎사귀를 통해, 찢어진 상처를 통해, 그리고 온몸에 가득 품은 물방울이나 빛을 통해서요. 그러나 그 언어를 듣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특별한 문법을 알아야 합니다.
볼로냐 도서전 라가치상 수상자인 안 에르보는 『숲의 거인 이야기』라는 작품을 통해 숲의 언어를 인간의 글과 그림으로 통역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떻게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 넌지시 알려줍니다.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넘길 무렵이나 나무가 몹시 보고 싶어지고, 나무를 찾아간 후에는 그들을 아주 천천히 뜯어보며 숲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됩니다.
II. 토양학자 아버지와 언어학자 어머니의 딸의 숲 여행
프랑스 중부의 작은 도시 빌롱(Billom)에서는 벨기에를 대표하는 동화 작가 안 에르보를 초청하여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중세 시대 시골 마을의 소박한 정취를 보존하고 있는 빌롱의 도시 경관과 자연의 축복을 듬뿍 받은 풍경이 그녀에게 특별한 자극이 되어 새로운 작품 탄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아주 작거나 아주 거대한 것을 좋아하고, 가시, 직물, 점, 조약돌, 의자와 주전자를 즐겨 표현하는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작가는 말 그대로 빌롱의 매력에 흠뻑 매료됐습니다. 정겹고 따뜻한 사람들, 낮게 흘러가는 구름, 불을 뿜는 것을 잠시 쉬고 있는 휴화산, 흩어지듯 펼쳐진 숲의 향연. 그리고 온갖 강과 호수.
사실 이런 환경은 안 에르보에게 낯선 것이 아니었어요. 토양학자 아버지와 언어학자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녀는 어려서부터 자연과 뛰놀고, 그 특별함을 글로 표현하면서 자랐거든요. 에르보는 가족 여행을 떠날 때면 그녀의 어머니는 제일 먼저 자신이 읽을 책부터 챙겼고, 아버지는 산과 들로 데려고 다니며 온갖 식물과 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회상합니다.
빌롱에서의 체험은 에르보에게 있어 일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많은 낮과 많은 저녁을 홀로 숲에서 노닐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놀이터를 찾아가는 여행이랄까요? 이제 어른이 된 그녀는 예술가의 눈으로 숲에서 가장 특별한 무언가를 찾을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을 주제로 책을 만들어 먼 곳에 있는 독자들도 숲으로의 여정에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III. 나뭇가지와 잎 사이로 내리쬐는 푸른 햇살은 빛방울을 거인에게 튀겼고요.
에르보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쓰러진 커다란 나무였습니다. 이미 죽은, 하지만 그것을 모판 삼아 새로운 생명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화산이라는 거룩한 죽음의 존재가 잠든 곳이기에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르보는 죽은 커다란 나무를 거인에 비유하여 이야기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불에 의해 쓰러졌지만, 오랜 시간 고통과 싸우고 상처를 치유하여 다시 눈을 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는 총 여섯 개의 챕터로 구성되었습니다. 거인의 죽음, 거인의 고통, 인간의 애도, 거인의 회복, 거인을 지켜주는 숲, 마지막으로 거인의 부활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 에르보는 새로운 시도를 결심해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기보다는 독자들이 숲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죠. 그녀는 이야기의 흐름을 최대한 느슨하게 엮고, 숲을 묘사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숲과 자연을 주제로 16폭의 그림을 그리고, 숲의 모든 것들을, 바람 소리와 구름 흘러가는 모습, 내리쬐는 빛, 심지어 작은 물방울까지 인간의 시적인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그림에 생명을 가득 불어넣었습니다.
“숲은 거인에게 푸르른 대성당이 되어주고, 새의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나뭇가지와 잎 사이로 내리쬐는 푸른 햇살은 빛방울을 거인에게 튀겼고요. 거인은 그 커다란 아치 아래에서 온통 헝클어진 꿈을 꾸고 있네요. 간혹 이를 부딪치는 소리까지 내곤 합니다.
하지만 거인은 벌어진 눈의 틈 사이로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습니다. 또, 피부에 와닿는 햇살에서 달큰한 꿀 냄새도 맡았고요. 그의 생각은 물웅덩이 위에서 반짝거리며 노닐지만, 영혼이 흔들릴 때면 쉬이 길을 잃어버리곤 하지요.”
“골짜기에서는 바람의 큰 숨이, 반짝이는 침묵이, 졸졸 흐르는 물이, 아침을 열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첫 번째 날인 것처럼, 처음으로 단어가 생겨난 새벽처럼요.
이렇게 숲속 빈터에 쓰러진 거인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구름이 지나갑니다. 고요한 뭉게구름입니다. 숲이 숨을 쉽니다.
그리고 숲속 깊은 곳에, 작은 돌이 하나 떨어졌습니다. 별똥별입니다. 심장의 조약돌입니다.”
만약 우리가 숲의 이야기를 듣고 느낄 수 있다면, 자연은 우리를 으스러지게 껴안아 더 많은 기쁨과 감동, 그리고 치유를 선물할 것입니다. 이 『숲의 거인 이야기』는 이를 위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