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희와 나
아픈 시대를 통렬히 사유하고
불가능한 위로의 가능한 공감을 모색한다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이기호의 「한정희와 나」
“「한정희와 나」는 타자에 대한 절대적 환대가 얼마나 허상에 불과한지 고백한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이면서도 반성할 줄 모르는 한정희에 대한 이해의 실패와, 그런 실패를 소설로 쓸 수 없는 문학적 실패를 이중으로 경험하는 소설가 ‘나’의 속절없음은 윤리의 곤궁困窮을 드러낸다.”
― 심사평 중에서
이기호, 구병모, 권여선, 기준영, 김경욱, 김애란, 박민정, 최은영, 편혜영…
동시대 한국 소설의 가장 뜨거운 자취!
“최종심에 오른 10편의 소설은 사회적 ‘사건’을 문제 삼는다. 이때의 사건은 개인적 사고가 아닌 구조적 폭력이고, 일회적 실수가 아닌 지속적 재난이다. 학교나 군대 내의 폭력, 여성이나 노인에 대한 혐오, 세월호와 같은 인재人災에 침묵할 수 없다는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고 있기에 어둡고 무거웠지만 그에 응전하는 힘도 강했다.”
―심사평 중에서
수상작, 이기호의 「한정희와 나」
‘웃기는’ 작가 이기호, 더 깊어진 시선으로 세상의 고통을 담담히 그리다!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한정희와 나」는 소설가인 ‘나’의 눈으로 바라본, 아내의 먼 친척뻘이자 딱한 사연을 갖고 나의 집에 얹혀 살게 된 초등학교 육학년 ‘한정희’에 대한 이야기다. 허허실실 ‘웃기는’ 이야기꾼으로 먼저 알려졌던 작가는 더욱 깊어진 시선과 담담한 문체로 한 인간으로서나 작가로 타인에게 닿을 수 있는 이해와 공감, 위로의 한계를 털어놓는다.
나의 아내는 어린 시절 집안이 기울면서 ‘마석 엄마아빠’라고 부르던 선량한 부부의 집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들에게 원래 부모에게서보다 더 따뜻하고 편안한 보살핌을 받았던 아내는 그들이 훗날 입양한 아들의 딸인 한정희를 잠깐 맡자고 제안한다. 정희의 아빠는 감옥에 갔고 이혼한 엄마는 소식이 요원하며 조부모인 마석 엄마아빠는 늙고 가난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방탄소년단’ 사진과 립밤과 로션과 교과서를 꺼내 놓는 정희에게서 아내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며 마음 아파하고, 나를 ‘고모부’라고 부르는 정희와 차츰 가족처럼 익숙해진다. 그러나 이내 정희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학폭위’에 회부되고,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정희를 보면서 나는 이전의 연민과 환대를 거둬들이고 만다.
정확한 실패라는, 가장 절실한 문학의 윤리
“작가로 십오 년 넘게 살아오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쓰려고 했던” 나이지만 한정희를 온전히 보듬거나 완전히 이해하는 데 결국 실패하고 만 것이다. 소설은 그 실패의 기록이다. 「한정희와 나」의 화자인 소설가 ‘나’와, 작가 이기호를 분리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또 작가로서 부딪히는 ‘사람, 환대’의 한계에 대한 나의 토로는 곧 작가 이기호의 솔직한 고백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숙련된 배우와도 같아서 고통에 빠진 사람에 대해서 그릴 때도 다음 장면을 먼저 계산해야 하고, 또 목소리 톤도 조절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아서 고통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그게 잘 되지 않는 고통…… 어느 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이란 오직 그것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어쩐지 내가 쓴 모든 것이 다 거짓말 같았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해서 쓰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쓰는 글. 나는 그런 글들을 여러 편 써왔다.
_「한정희와 나」 중에서
그러나 이때의 실패를 패배라고 단정해선 안 된다. 아니, 오히려 “정확한 실패는 가장 절실한 문학의 윤리”다.(심사평) 나와 네가 누구든, 어떤 곳에서 어떻게 만났든, 너를 향한 나의 어쭙잖은 연민이나 서투른 위로는 자주 더 큰 상처가 되고 말았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불가능성을 인지할 때, 실패를 부인하지 않을 때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이해’가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의 드문 여지를 작가는 씁쓸한 고백 가운데서도 남겨두려는 듯하다.
우리는 왜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가
이기호 작가의 자선작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불쌍하지만 불편한’ 타인과 ‘나, 우리’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불쌍하지만 어딘지 조금 이상한 권순찬이라는 남자가 불쑥 나타나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농성을 시작하고, 인정 많은 사람들은 그를 가엾어 하며 도우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착한 사람들의 온정이라는 게 결국 눈앞의 불편한 존재를 치워버리고 싶은 바람이나, 상대를 대상화하는 독선적인 시혜는 아니었는지 작가는 묻는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지에 대해서.
_「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중에서
작가의 실패에 대한, 그러나 패배는 아닌 고백을 어떤 위안으로 받아들일지는 이제 독자의 몫이다. “정확한 실패는 가장 절실한 문학의 윤리다. 치열한 무력감을 통해 문학의 실체와 미래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학적 증언을 듣고 난 후 상처받을 권리와 위로해줄 의무는 이제 독자들에게 있다.”(심사평)
수상 후보작 8편
여성, 혐오, 청년, 재난… 소설, ‘침묵할 수 없다’는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다
나머지 8편의 후보작들도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 사건과 치밀하게 연결지어 파고든다. 특히 수상작 「한정희와 나」를 포함해 ‘아이’를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고리로 등장시키거나 나아가 어린이, 청소년, 청년 세대가 당사자로서나 간접적으로 겪는 냉혹한 세상을 배경 삼는 작품이 많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권여선 작가의 「손톱」은 기댈 가족 없이 혼자이면서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인 20대 초반의 ‘저학력?저임금?비숙련 여성 노동자’를 등장시켜 비참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되기 힘든 청년 세대의 암울한 현실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물류 정리를 하다 다쳐 붉게 멍든 주인공 ‘소희’의 손톱은 노동의 열외지대 혹은 가장 열악한 사각지대에서 마땅히 표출할 곳 없이 내면에 꾹꾹 응축한, 청년의 울분과 상처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지난해 국내 최초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다산책방)에 참여한 구병모, 최은영 작가는 이번에도 여성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다. 타인에 대한 무례한 관심과 가부장적 질서를 작동 원리로 삼는 마을에 내던져진 임신 여성의 이야기인 구병모 작가의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와, 초등학생 시절 친구에 대한 기억을 통해 ‘아들중심주의’와 가정폭력을 폭로하는 최은영 작가의 「601, 602」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남성중심문화와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기준영 작가의「마켓」과 박민정 작가의「바비의 분위기」 역시 각각 무책임하거나 무례한 주변인들에게 둘러싸인 유산한 여성과, 사촌오빠의 여성혐오 범죄를 목격하며 자신도 주변 남성에게 위협을 느끼는 대학원생을 통해 여성이 처한 위태로운 위치와 혐오 문제를 비튼다.
사회적 재난으로 어린 자녀를 잃고 이민을 떠난 유가족의 아픔에서 출발한 김경욱 작가의 「고양이를 위한 만찬」, 이른바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과 노인혐오 문제를 소재로 삼으면서 나의 자녀라 할지라도 알 수 없는 타인의 이면을 의심하는 김애란 작가의 「가리는 손」, 군대 내 폭력과 산업재해 피해자 문제를 등장시켜 반성하거나 책임질 줄 모르는 가해자를 묘사한 편혜영 작가의 「개의 밤」 등 8편의 소설은 모두 “침묵할 수 없다는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면서 개인과 사회를 향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