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고조선의 건국부터 삼국시대까지
유사역사학 비판의 저자 이문영이 제시하는
우리 고대사의 다채로운 수수께끼
“환웅은 손녀를 사람으로 변하게 한 뒤에 단수신에게 시집을 보냈다. 단웅천왕의 손녀와 단수신 사이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그가 바로 단군檀君이다. 단군은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린 뒤 산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
“명나라는 조선보다 건국이 24년 빠르다. 요임금의 나라와 단군의 나라 차이도 24년이다. 서거정은 중국과 조선이 같은 변화의 주기를 가진 대등한 나라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즉 고조선 건국 연대는 굉장히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단군 신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세워졌으며, 환인의 아들 환웅이 신단수에 내려와 곰이 변한 여인과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마치 정통 역사학계가 인정한 유일한 이야기인 것처럼 여긴다. 단군은 천여 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소위 역사 전쟁이 한중일 간에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 두 나라는 저마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양산하며 그것을 자기들의 역사에 편입하기에 바쁘다. 동시에 부끄러운 역사는 최대한 변형시키고 위조하려 든다. 역사의 위인들을 자기네 조상이라 주장하는 것은 어느 시대건 흔한 일이었지만, 최근에는 그것을 넘어 아예 역사 자체를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조차 그리 낯설지 않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런 식의 움직임은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 선조가 위대했고, 우리 역사는 늘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이야기한다. 한민족이 대륙을 제패했었고,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사의 갖가지 사건과 사물에 우리 민족의 족적이 남아 있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여기에 대항하는 움직임이라 해봐야, 역사의 정설만을 담은 짧고 간결한 역사의 줄거리만을 강조하는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사를 제외한 역사는 전부 사이비라는 식이다. 이렇게 줄거리만 남은 빈약한 역사에 어떤 흥미든 생길 리는 만무하다.
그런 가운데, 정작 풍성해야 할 우리 민족의 역사를 ‘터무니없는 과장된 거짓 역사’ 또는 지나치게 쪼그라든 ‘아주 적은 분량의 역사’로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만 점점 늘어난다. ‘재미는 있지만 진실은 아닌 역사’와 ‘진실이지만 재미는 없는 역사’가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역사의 거의 전부다. 이러니 정작 제대로 된 사료를 제시하며 이야기하더라도, 그것은 귀에 익지 않은 이런 역사라며 ‘사이비 역사’ 혹은 ‘식민사학의 잔재’로 공격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조차 종종 벌어진다.
책은 고조선 시대부터 발해의 통일까지, 우리나라 고대의 역사와 그에 따른 부속 이야기를 시대순으로 다룬다. 학계 공인의 정사를 뼈대로 삼은 뒤, 정사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때론 선택되고 때론 참고 자료로만 남은 알려지지 않은 역사까지 충실하게 담았다. 각 시대에서 오해하고 있거나 잘 모르는 일화들, 또는 잘 알고 있다 해도 그 의미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을 제시했다. 어떤 면에서는 역사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한 부분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는 것이기도 하다.
“공자가 『논어』에서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여기에 이夷가 나오니까 공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살고 싶어 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공자는 중국 동해안 쪽에 사는 그 이夷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 것이다. (...) 동이라는 단어에 매달리는 순간, 우리는 중국의 전통사가들이 규정한 한계 안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책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역사와는 조금 다른, 그렇지만 결코 사이비 역사는 아닌 내용들이 다채롭게 들어 있다. 역사의 진실이 하나인가는 학계의 오랜 논쟁거리이지만, 사료가 말하는 진실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 과거에 남긴 역사책의 기록조차 서로 충돌하는 일이 허다하며, 신화와 전설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모호해서 서로 들어맞지 않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비단 먼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 극히 현대의 사건조차 그러하다. 여기서 역사학자와 사이비 역사학자의 차이가 드러난다.
역사학자들은 ‘사료’라고 부르는 과거의 기록을 단단히 발밑에 두고 그 위에 사건을 재구성해나가는 작업을 해나간다. 밖으로 뻗어가는 가지들은 역사의 다채로움을 보여주는 예시로서, 혹은 훗날 더 나은 재구성을 위한 자료로서 고스란히 모아둔다. 반면 사이비 역사학자들은 역사를 잘 정리된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하고 싶은 의욕으로 가득하다. 이들은 많은 역사들 중에서 사료를 의도적으로 선택하며, 이를 모아 적어도 줄거리로는 완벽한 거짓 역사를 창조해낸다. 선택하지 않은 사료들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당연히, 그러는 편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한 가지 색깔로 칠해진 단조로운 방이 아니라 그 안에 수많은 색깔이 존재하는 다채로움의 빌딩이다. 거짓된 의도에 따라 편파적으로 선택된 사료가 아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사료 모두가 그 빌딩을 구성하는 재료이다. 뼈대와 뼈대 사이, 혹은 알려지지 않은 작은 방 속에 우리 역사의 즐거움과 다채로움이 숨어 있다. 이 책이 역사학의 다채로움을 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