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이전에 음식이 있었다
길을 내는 여자,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의 에세이. 그녀에게 인생의 화두는 세 가지였다. 글, 길, 그리고 맛.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열망은 맛난 음식을 먹고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길이 아니라 음식이다.
냠냠 공주, 혹은 먹보 여왕으로 불리는 그녀의 식탐은 유별나다. 맛있는 먹거리에 목숨을 거는 형이다. 치사하고도 집요하게 매달린다. 그녀의 사전에는 다이어트란 없다. '가버린 끼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좌우명 아래 삼시 세 끼를 꼬박 챙겨 먹는다. 초치기 마감에 시달리던 기자 시절에도 끼니만큼은 대충 때우는 법이 없었다. 배 아픈 것은 참아도 배고픈 것은 못 참는다.
어렸을 때 제주에서, 기자 시절 전국을 누비며, 제주올레 이사장으로서 전 세계 곳곳을 돌며 맛본 음식에 관한 에피소드를 이 한권에 담았다. 그녀는 놀랍도록 뛰어난 기억력으로 수십 년 간 먹었던 잊지 못할 음식에 관한 추억을 재생해낸다.
아버지 서송남 씨가 즐겼던 그리운 이북 음식들, 감옥에서 라면 한 봉을 수줍게 건넸던 소년수, 스물일곱에 죽은 중학교 동창 은숙이, 어려서는 코를 싸쥐며 도망치기 바빴지만 임신해서는 주식으로 삼았던 소울푸드인 자리젓과 몸국, 산티아고 길에서 일본과 스위스와 네팔에서 정 많은 사람들과 나눴던 음식, 제주올레 이사장이 돼 다시 고향에 돌아와 만나게 된 진정한 음식과 삶의 고수들. 그녀는 이 책에서 음식이 아니라 인생을 이야기한다. 웃음과 눈물과 감동을 먹을거리와 한데 버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