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본] 김미수 장편소설 재이 (전5권)
작가의 말
스물하나.
교정의 벚나무와 목련나무 아래 바위에 앉아 있었다.
정오의 팽팽한 공기 속에 심심해서 미치겠다고 중얼거렸다.
심심하다는 말은 뭔가 빠져 있다는 심중의 말이기도 했다.
결핍.
그것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때 재이를 만났다.
오늘
숲 속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침의 느릿한 공기를 휘젓는 뻐꾸기 소리를 들었다.
뻐꾹 뻐꾹 뻐꾹…….
천만 년 전부터 그렇게 노래하고 있었을 것 같은 뻐꾸기 소
리였다.
충만.
그저, 오랫동안,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충분히 충만했다.
키 큰 나무들의 가지와 이파리들
잔풀과 잔꽃과 잔나무들
또, 땅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드는 나무뿌리들까지
뻐꾸기 소리에 충분히 충만해지는 아침이었다.
스물하나.
그때 나는 재이가 늘 궁금했다. 늘 재이를 만나고 싶었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닐수록
더욱 결핍해지던, 속수무책의 재이.
그런 재이가 안쓰러웠고 그런 재이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때는, 재이였다.
지금,
다시 정오다.
벚나무와 목련나무 아래 바위에 앉아
재이를 오래오래 응시하고 싶다.
정오를 지나 저녁이 되고 밤을 지나 아침이 되는 것처럼
도시를 지나 숲 속 나무 의자에 앉아 뻐꾸기 소리를 듣는
재이를 만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