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카타와 푸가
여행사를 그만두고 작은 작업실을 얻어 자신이 알던 여자들에 관한 글을 쓰던 주인공. 그는 누군가가 끊임없이 자기의 삶에 개입하고 있다는 느낌에 시달린다. 차의 백미러가 비틀려져 있고, 서류를 훔쳐본 흔적이 방에 남아있고, 전화벨이 울려서 받으면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상과 내면세계를 지켜보고 있는 타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결국 주인공 「나」는 자신을 괴롭혀온 미지의 존재들은 자신을 포함, 자신을 만난 모든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밀도있게 그려낸 작품.
나는 그럼 내가 누구냐고 물었다.
당신은, 병자야, 병자, 정신 병자. 악마의 하수인이야.
나는 그건 오해라고 말했다.
오해라구? 네가 만든 철조망 노래라도 불러줄까. 나나나나나나나나. 이게 미친 놈이나 하는 짓이 아니면 또 뭐야. 넌 악마에게 홀린 놈이야.
나는 내 파일의 암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
벽에서 네 해골이 걸어나와서 내게 말해줬지. 넌 네 친구들을 믿고 있지 않으면서 왜 그 자들을 의심하지 않지?
그리하여 나는 한동안 더 사막에 머물러 있는 쪽을 택했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고, 또한 내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이유없는 죽음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여도, 나로서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수시로 전화벨이 울렸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으며 팩스도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깨어나지 않았다. 1996년 6월 24일.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