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안경으로 본 인간동물 관찰기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오랜 세월동안 종교, 정치, 철학에 가려져 있던
인간의 적나라한 행동을 들여다보다
“우리가 하는 행동을 찍은 다큐멘터리가 있다면 화성인조차 그것을 보는 데 중독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그 흥미진진한 쇼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머리말> 중에서
한 남자가 야외 카페에 앉아 있다. 조금 전 계산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그는 어린 여자 직원을 발견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 여자 직원에게 주문을 하더니 후한 팁까지 준다. 물론 조금 전 다른 남자 직원에게 팁 같은 건 없었다. 남자란 원래 그렇지 않은가?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남자는 왜 어린 여자 직원에게 팁을 주면서 굳이 자신을 과시하는 것일까?
멀리 다른 테이블에 앉아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지켜보던 저자는 다윈의 이론으로 봤을 때 당연한 일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남자의 머릿속에 활성화되어 있는 ‘번식에 대한 본능’이라는 프로그램이 어린 여자를 본 순간 남자의 귀에 속삭인다는 것이다. ‘내가 당신 아이의 엄마가 될 만한 사람을 찍어주면 망설이지 말고 인심을 써요’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긴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진화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행동에 종종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우리의 상식이나 의지보다는 진화라는 오랜 세월동안 만들어져 온 프로그램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에는 수십만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적응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지난 수세기 동안 인간의 행동은 그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볼 여유도 없이 종교와 정치,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되어 왔다. 그러다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의 행동을 규정된 것이 아닌 인간과 함께 진화한 생물학적 특성의 하나로 인식하게 되었다. 인간의 행동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연구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인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를 연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류는 24시간 접근 가능한 행동생물학 최고의 실험대상이다’
인간이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가장 솔직하고 조금은 발칙한 행동생물학
길을 걷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카페, 슈퍼마켓, 버스, 음식점, 병원 대기실 등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모든 장소에서 행동생물학을 위한 적절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인류는 24시간 접근 가능한 행동생물학 최고의 실험 대상인 것이다. 다윈주의는 우리에게 인류의 기원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고, 그를 설명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선사했다. 당연히 남녀노소 누구나 그 지식을 알 권리가 있다.
이 책은 어렵고 딱딱한 학술서가 아니다. 읽는 데 심리학이나 생물학에 대한 배경지식은 필요 없다. 어려운 지식 없이도 다윈의 이론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짤막한 에피소드 형식의 글을 모아놓았다.
이 짧고 일상적인 글에는 ‘회의 시간에 왜 팔짱을 끼는가?’, ‘왜 사람은 피부색이 다를까’ 와 같이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사소한 질문부터 ‘나는 왜 고통을 느끼는가’, ‘진짜 내 모습은 무엇일까’ 와 같이 심오하고 근본적인 질문까지 다양하게 담겨 있다.
다윈의 시선으로 우리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지만 가끔은 마음 한 구석이 뜨끔하기도 한다. 혹시 인간은 진화를 같이 거쳐 온 지구상의 생명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함부로 배척하고 있지는 않은가?
벨기에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행동생물학자이자
국제동물행동학자 위원회 벨기에 대표
마크 넬리슨의 시니컬하고 유쾌한 ‘인간동물 관찰기’
“이 책을 읽는 데 사전 지식이나 생물학 또는 심리학에 대한 배경지식은 필요 없다.
매일 밤 부담 없이 베어 물 수 있는 과학이라는 군것질.
우리의 행동에 대해 배우는 데 더 필요한 것은 없다”
- <이야기를 마치며> 중에서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이야기하면서 거창하고 딱딱한 이론을 설명하는 대신 볕 좋은 카페의 야외 테라스로 나가 사람들을 관찰한다. 수십만 년을 함께 진화해온 모든 생명체, 다양한 인종, 그리고 각양각색의 다른 성격과 행동을 가진 사람들. 다윈의 안경을 쓰고 보면 이들 중 누구도 우월하지도, 항상 옳지도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것은 때때로 우리의 삶에 찾아드는 불안과 의심을 물리치는 데 신앙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인간은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동시에 수십만 년의 시간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된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특별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다윈이 우리에게 안겨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지식’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이 책은 쉽고 재미있고 풀어주고 있다. 다윈주의를 통한 이해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라면 지나친 낙관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모인 장소라면 어디든지 나타나서 다윈의 이론을 들먹이는 이 유쾌하고 시니컬한 행동생물학자와 함께 인간의 행동을 그린 이 책의 풍경을 산책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