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런어웨이
오직 자유를 찾겠다는 희망으로 길을 나서는 사람들……
혼란과 갈등이 뒤섞인 삶 속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감동!
『라스트 런어웨이』는 1997년에 데뷔, 오늘날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신작이다(2013년 10월 출간). 처음으로 모국인 미국의 역사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로, 작가로서의 전환점을 이룬 작품이다. 저자는 2009년 4월, 노벨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의 ‘19세기 지하철도 운동’에 대한 연설을 듣고 이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4년간 19세기 미국 오하이오의 시대상에 대한 면밀한 역사적 고증 작업을 통해 소설의 입체성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당시 미국 경제의 기초인 면직물 생산, 대량의 면화를 생산해야 했던 시대적 분위기, 이에 필요했던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 착취, 아울러 인간을 재산으로 간주하는 데 반발, 노예들의 자유를 되찾아주기 위해 진행된 광범위한 지하철도 운동, 아울러 광활한 대지의 개척자였던 퀘이커 교도들의 신념과 그들 내부의 갈등 등…… 미국 중서부 초기 개척자들의 삶을 면밀하고 섬세하게 관찰하여 각 등장인물들에게 각기 다른 개성을 부여하면서 1850년대 퀘이커 교도들과 도망 노예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재현했다. 작년 말 출간 이후 언론과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아래 참조)
말수가 없고 매사에 차분한 여주인공 아너 브라이트(Honor Bright)는 약혼자와의 결혼을 위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나는 언니 그레이스(Grace)를 따라 상처로 얼룩진 과거의 삶을 등지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언니는 황열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아너 홀로 낯선 땅에 남는다. 이후 아너에게는 순식간에 너무나 많은 변화들이 들이닥친다. 미국인들의 목소리는 크고, 속마음을 그대로 이야기한다. 한낮의 열기도 그렇고, 바느질 방식, 음식, 언어 등 모든 것이 생소하다. 그러나 몇몇 미국인들은 남모르는 비밀을 안고 있다. 바로 집 안 어딘가에 도망 노예를 숨기고 있으며, 그 도망 노예를 뒤쫓는 노예 사냥꾼도 있다. 교회조차 ‘흑인석’이 따로 마련된 험한 분위기 속에서 만민 평등사상과 준법정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퀘이터 교도들의 상황과 내면을 여러 겹으로 조명하고 있다. 소설은 또한 주인공 아너 브라이트를 중심으로 거친 삶을 극복해가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이자 자신의 신념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의 기록이기도 하다.
한 땀 한 땀 섬세한 손길로 수놓는 퀼트의 천 조각들마다
삶의 기로에서 만난 상실과 아픔, 기쁨과 환희의 기억이 깨어난다!
저자가 상상한 주인공 아너 브라이트와 퀼트 (저자 홈페이지)
자투리 천들을 이어 붙여 아름다운 문양을 완성하는 퀼트(quilt)는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자 중요한 상징이다. 주인공 아너 브라이트는 천부적인 퀼트 솜씨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미국에 도착하는 즉시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모자상점 주인 벨 밀즈와 우정을 나눈다. 도망 노예들이 자유를 찾도록 돕는 지하철도 운동에 몸담고 있는 그녀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노예 사냥꾼인 도너번이라는 동생이 있다. 거칠고 야만적인 그는 집요할 정도로 끈질기게 노예들을 뒤쫓는데, 생존을 위한 방편이자 남부에서 노예들로 인해 일거리를 빼앗기고 품삯을 깎였던 상처로 인한 증오의 표현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든 아너에게 퀼트는 유일하게 친숙한 일거리이다. 낯익은 손놀림은 고요함 속에서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위안과 자기 발견의 시간이다.
‘아플리케’라 칭하는 미국 퀼트는 이제껏 아너가 해오던 퀼트와는 문양이나 색상 배치가 다를 뿐만 아니라, 가볍고 단순하고 만들기도 쉬워서 취향에 맞지 않는다. 영국 퀼트가 섬세하고 정교하고 차분하다면, 미국 퀼트는 단순하고 역동적이며 화려하다. 눈앞에 산적해 있는 문제로도 벅차, 편의와 효율을 중시하는 당시 미국 여성들의 생활양식과 태도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마음 편하고 즐겁다는 이유로 미국의 퀼트 방식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아너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밝고 풍부하며 즉흥적인 미국식 퀼트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만의 퀼트를 바느질하기 바라며 천 조각들을 모은다. 새로운 삶을 찾아 머나먼 이국땅에 발을 내디뎠지만 세상을 떠나고 만 언니의 갈색 드레스에서 한 조각, 남매가 어릴 적 추위에 떨며 함께 덮었던 이불의 노란색 실크 천에서 한 조각, 딸아이가 예뻐 보이기를 바라며 엄마가 손수 웨딩드레스를 바느질한 아이보리색 면직물에서 한 조각, 아이와 도망치려는 아내에게 남편이 눈물로 건넨 갈색 외투에서 한 조각……,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천 조각들이 하나하나 모이면서 ‘내면의 빛’을 향해 한 발짝 내디디는 희망의 매혹적인 여정도 완성되어간다.
모국의 역사를 소재로, 작가로서의 전환점을 피력한 첫 장편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 이후 최고 걸작”이라는 언론과 문단의 호평을 받았던 작품
저자가 다닌 오벌린 대학교에 게시된 ‘지하철도’ 운동 팻말 (저자 홈페이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1984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영국으로 건너가 30년째 살아가고 있는 작가는 언제나 자신이 태어난 나라인 미국을 배경으로 소설 쓰는 것을 오랜 소망으로 여겨왔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역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던 ‘지하철도’ 운동을 소재로 극한의 상황에서 사랑과 희망을 꽃피우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작가로서의 숙원을 이뤄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한동안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누구나 이방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자전적 독백이기도 하다.
작가가 런던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두 나라의 서로 다른 느낌들이, 아너가 뉴욕에 도착한 후 마주하는 낯설고 생소한 장면들로 감각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하지만 소설 중반에 이르면서 아너는 영국과 다른 미국의 현실을 깨닫고 그 차이를 인정하며 적응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결국 일상에서 안정을 찾으며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힘은 자아 발견에 의한 자신만의 신념이었던 것이다.
아너는 내면 깊은 곳의 소리를 듣기 위해 침묵과 퀼트를 즐긴다. 침묵은 끊임없이 요동치는 내면을 잠재우며 원하는 평화를 얻게 해주고, 퀼트는 마음속에서 일상적인 생각을 지우고서 내면을 바라보며 깊은 고요 속으로 가라앉는 시간을 선사한다. 또한 퀼트는 소설 속에 나오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니는 개인사의 은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마치 퀼트를 하듯 오랜 세월 조사하고 수집한 자료를 정교하게 이어 붙여 미국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을 재구성해냈다. 아너가 기억하는 영국의 고향 도시와 가족, 복잡하고 기교적인 문양을 자랑하는 퀼트, 그것들과 하나하나 대조되는 미국의 대자연과 벨의 대담하고 다채로운 모자들, 그리고 리드 부인의 스튜 레시피에 이르는 섬세한 세부 묘사는 이야기 전체가 주는 즐거움과 감동을 배가시켜준다.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디딘 한 여자가 다채롭게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읽는 속도감과 매혹적인 장면들, 묵직한 감동을 두루 만족시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 이후 최고 걸작이라 찬사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 지하철도 운동(Underground Railroad Movement) : 남부의 흑인 노예들이 북부에서 자유를 찾도록 돕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지하망을 가리킨다. 1793년 면직물이 발명되면서 미국 경제의 기반이 되었던 면화 생산은 막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노예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인간을 재산으로 간주하는 데 퀘이커 교도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노예제가 폐지될 경우 재정적 파산을 염려해야 했던 국가는 도망 노예법을 제정했고, 지하철도의 확산에 많은 활약을 했던 퀘이커 교도들도 만민의 평등사상과 준법적 시민이 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