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배신 : 생각을 멈추면 깨어나는
게으른 삶에 대한 어느 뇌과학자의 근거 있는 찬양!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기적을 만든다
무조건 열심히, 바쁘게 사는 것이 곧 성공의 길이라 생각하는 집단 최면에 걸린 현대인들에게 왜 휴식이 필요한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우리는 고도로 발전된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노동환경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생산 시스템은 자동화되었고, 업무를 돕는 최첨단 기술들의 발달은 눈이 부실 지경이다. 하지만 인간을 해방시킬 것이라 믿었던 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더 많은 업무를 하도록 만드는 굴레가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이어갈 수 있게 된 우리의 삶은 아무 생각도 없이, 걱정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소중한 습관도 빼앗기게 되었다.
스웨덴의 신예 뇌과학자인 앤드류 스마트가 일중독자들로 가득 찬 세상을 비판하며, 일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행동이 왜 나태하고 게으른 자의 시간 낭비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추적한다. 그가 게으름을 찬양하는 이유 또한 무척이나 과학적이다. 저자는 뇌과학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뇌의 기저 상태인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내세워 설명한다. 불필요한 정보가 제거되고 기억이 축적되는 이 상태가 집중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일을 수행할 때에나 성과를 내고 싶다면 꼭 이런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뇌에서 반짝이는 불빛
과학계의 뜨거운 감자,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비행기에는 오랜 시간 비행을 하는 조종사들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자동으로 운항할 수 있는 ‘오토파일럿(Autopilot)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는 장시간 운전을 하는 동안 조종사들의 피로가 극에 달해 안전한 운항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일종의 안전장치이다.
이 오토파일럿의 도입 덕분에 조종사들은 항공 과정에서 특히 위험한 이륙과 착륙 구간에 정신력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오토파일럿에도 단점은 있다. 가끔 조종사들은 자신이 운전을 하는지, 이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고 한다. 이를 모드 혼란(mode confusion)이라고 하며, 지금까지 심각한 항공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오토파일럿 시스템이 인간의 뇌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휴식 상태에 들어서면 두뇌는 수동 제어 모드에서 이 오토파일럿 모드로 전환된다. 두뇌에 있는 이 시스템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오토파일럿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오토파일럿을 믿고 뇌의 조종을 맡겨야 한다.
항공기의 조종사들이 피곤한 상태에서 수동으로 항공기를 조종하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에 이런 유용한 시스템을 이용할 필요가 있듯이, 우리 인간도 두뇌 활동을 오토파일럿에 맡기고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두뇌를 이 오토파일럿에 맡기는 동안 ‘모드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야근으로 이어지는 업무량도 줄이고, 다급한 일정이 아니면 되도록 보류하고, 중요한 일은 가능한 맡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뇌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상태, 즉 게으름이 필수적이란 말이다.
이렇게 급박한 경쟁 사회에서 일을 미루라니, 이 무슨 해괴한 소리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스웨덴의 괴짜 뇌과학자인 저자 앤드류 스마트는 가급적 일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라니? 이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그의 주장은 다양한 분야의 학문적 근거로 설득력을 갖기 시작한다. 그는 먼저 현대인들, 특히 미국인들의 게으름에 대한 인식은 혐오와 두려움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일을 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바쁘기보다는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 하는 양가적인 감정을 갖기도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빈둥거리고 게으름을 피우는 일을 원하는 이유는 진화 역사적인 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보존하는 일이었다. 먹는 것을 구하는 일 자체가 엄청난 육체적인 소모를 요하는 굉장한 도전이었기 때문에 에너지를 유지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먹을 것이 넘쳐 나서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지금에는 물리적으로 움직이고 활동하는 일에 제약이 사라진 것이다. 이렇게 자유로워진 사람들이 때론 무의미하고, 때론 유의미하기도 한 다양한 활동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적 관습에 의해, 사회적 변화에 의해 게으름이란 지양해야 할 어떤 것이 되었지만, 사실 인간에게 휴식이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생명을 유지시키는 가장 큰 활동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게으름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지만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우리는 이런 본능을 억누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ADHD 환자들이다!
똑똑하게 쉬어야만 집중력과 창의력이 되살아난다
신경과학자인 워싱턴 대학의 마커스 라이클 교수는 흥미로운 실험을 실시해 ‘휴지기 네트워크(Resting-State Network, RSN)’, 혹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라는 개념을 발견해냈다. 이 네트워크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활성화되는 독특한 개념이다. 라이클 박사는 실험참가자들이 문제풀이에 집중하면서 생각에 골몰하자 두뇌 특정영역에서 활동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테스트가 끝나고 실험참가자가 과제에 집중하기를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가 되자 이 영역의 뇌 활동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뇌는 사용할수록 활성화된다는 기존의 연구와 이론과는 전혀 다른 결과에 라이클 박사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라이클은 이 영역의 활동을 ‘휴지기 네트워크(Resting-State Network, RSN), 또는 디폴트 네트워크(Default Network)’라고 이름 붙였다. 이 네트워크는 특별한 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생각의 물결을 따라 갈 때 작동한다. 아무런 자극이 주어지지 않는데 돌연 좋은 생각이 번쩍하고 떠오르는 것은 두뇌가 저장해둔 ‘내면의 지식’이라는 엄청난 보물을 꺼내놓기 때문이다.
DMN은 잔디밭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을 때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눈을 감고 있을 때와 같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저자는 ADHD(행동발달증후군)와 같은 과잉행동장애 아이들의 집중력 저하 문제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DMN 상태와 유관하다고 주장한다. ADHD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경우, 가만히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딴생각을 하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신경 쓰기 때문에 이 ‘휴지기’를 제대로 갖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일에 집중하는 능력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일도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 역시 일상적인 생활 습관으로 인해 ADHD를 앓게 된다는 것이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고 틈틈이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스마트폰으로 SNS까지 확인한다. 이렇게 우리의 뇌는 전혀 쉴 틈이 없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신경과학자 스콧 매케이그는 이런 현상을 “찰나의 도전”이라고 명명하며, 순간적인 일에 응답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설명한다.
이런 순간순간에 대한 대처가 매시간, 매일, 매년 반복된다면, DMN의 상태를 경험하는 일이 계속해서 줄어들기 때문에 창의력이나 집중력,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일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휴대전화와 온갖 IT 기기를 잠시 손에서 내려놓고 어떤 일도 하지 않고 뇌를 쉴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에서 다루는 독일의 천재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세기의 철학자 데카르트도 DMN 상태에서 모두 영감을 얻었다. 이들은 책상 위가 아닌 해안 길을 산책하거나, 침대에 누워 있다가 세계를 놀라게 할 작품과 수학적 발견을 해낸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뇌가 쉬지 못하고 있는 심각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뇌과학적으로 접근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며, 심리학 이론과 풍부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업무의 노예가 된 인간의 슬픈 현실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설명한다. 앤드류 스마트는 《뇌의 배신》을 통해 게으름과 나태라는 오명을 쓴 진정한 휴식의 상태에 대해 독자들이 부디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