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무엇인가
‘개인’에서 ‘분인’으로, 진정한 나를 만나고 사랑하는 법!
일본을 대표하는 젊은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말하는 새로운 인간관
정체성과 관계의 위기를 겪는 이들에게 전해주는 따뜻한 위로
개인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인간의 기초 단위이며 진정한 자신은 단 하나지만, 어쩔 수 없이 상대나 상황에 따라 ‘가면을 쓰고 여러 가지 모습의 자신’을 연기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깔려 있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진정한 자신’은 단 하나라는 사고방식이 현재 우리들이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의 원인이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습 모두가 진정한 자신이라고 말한다.
- 대단한 착상이다. 자신 안에 자신을 찾지 마라. 자신은 타인과의 사이에 있다. <아사히 신문>
- 젊은이들의 커뮤니케이션이나 그 전망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알맞은 철학을 담고 있다. <기노쿠니야 서점>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파헤친 ‘나’와 관계에 관한 놀라운 통찰
‘진정한 나’는 하나가 아니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모든 모습이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섬세하고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무장한 일본 현대소설의 새로운 아이콘이자 『결괴』, 『일식』 등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는 히라노 게이치로가 쓴 ??나란 무엇인가??는 누구나 마음속 한구석에 품고 있거나 고민해본 적이 있는 자아에 관한 문제를 담담하면서 차분하게 풀어나가는 철학 에세이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한 문제는 작가 스스로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이자 자신의 소설 테마이기도 하다. 그 핵심은 ‘분인주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격이 단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분명 자신이 머무는 자리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겉으로는 다양한 ‘가면’을 쓰고, ‘캐릭터’를 연기하고, 그때그때 다른 ‘페르소나’를 드러낸다. 그렇지만 그 핵심이 되는 ‘진정한 나’, 즉 자아는 하나다. 바로 여기에 한 인간의 본질이 있고 주체성이 있고 가치가 있다. 과연 그러할까? 히라노 게이치로는 그러한 생각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지고 문득문득 자신이 싫어지고 괜히 삶에 지치게 되며, 자신과 마주하는 방법과 마음 편안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분인은 ‘진정한 나’는 단 하나가 아니고, 인간은 상대에 따라 몇 가지 모습으로 변한다는 개념이다. 우리의 일상생활 또는 직장생활을 한번 돌아보라. 혼자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누군가와 마주하고 있다. 그 사람들과 모두 같은 얼굴로 대한다면 과연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까? 언제 어디서나 ‘나는 나’라는 식의 태도로 사람을 대한다면 상대방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싫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히라노 게이치로는 변하지 않는 ‘진정한 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인 관계에 따른 다양한 모습이 모두 ‘진정한 나’라는 것이다.
분인은 타자와의 반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기 내부에 형성되어가는 패턴으로서의 인격이다. 직접 만나는 사람으로 한정되지 않고, 인터넷으로만 교류하는 사람도 포함될 수 있고, 소설이나 음악 같은 예술, 자연 풍경 등 인간 이외의 대상이나 환경도 분인화를 유도하는 요인일 수 있다. 한 명의 인간은 여러 분인의 네트워크이며, 거기에 ‘진정한 나’라는 중심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분인화는 상대와의 관계를 통해 시작된다. 상호작용 속에서 상대에게 영향을 받아 내 생각이 변하는 부분도 있고, 상대도 나로부터 영향을 받아 새로운 분인이 형성된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분인화 과정이 3단계를 거친다고 말한다. 그 첫 단계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범용성이 높은 분인’, 즉 사회적인 분인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치는 주민이나 편의점 점원 등과 같이 미분화된 상태의 분인을 가리키는데, 그 영역은 광범위하다. 두 번째 단계는 학교나 회사, 동아리 같은 그룹용 분인으로 보다 좁은 범위로 한정된다. 이어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특정 상대용 분인이다. 이러한 분인화 과정은 일방통행 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으며, 분인의 수와 크기도 제각각이다.
한편 우리 주변에는 팔방미인이라고 불리는 이들도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당히 맞춰주면 통한다고 얕보고, 상대에게 맞춘 분인화를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실 그들은 제대로 분인화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파티에서 여러 사람과 잘 어울리지만 상대에 따라 제대로 분인화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적당히 좋은 관계로 똑같이 대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분인은 캐릭터나 가면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생겨나고 성장하고, 때로는 도태되기도 한다. 누구와 어떤 관계인가에 따라 분인의 구성 비율은 변화하며 그 총체가 그 사람의 개성이 된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이 책에서 시도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개인과 개인주의라는 개념의 해체다. 인간의 기본 단위인 ‘나’를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이자 현대사회에 대한 작가의 처방전이다. 이 책은 그동안 수많은 독자와 소통해온 작가 자신의 작품을 비롯해 실제로 겪은 경험과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예를 들어가며 자칫 딱딱해질 수도 있는 개념들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써내려가고 있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추상적인 인간 일반에 관한 이론서가 아니다. 그런 체제를 갖추려 들면 아무래도 모델이 선행되기 때문에 우리의 실감에 잠재되어 있는 미묘한 뉘앙스를 억압해버린다. 애당초 나는 학자가 아니다. 소설가다. 따라서 여기에서 언급하는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체적인 이야기들뿐이다. 불필요한 복잡함은 최대한 배제하고, 가능한 한 솔직하고 간략하게, 이해하기 쉽게 논의를 진행하고 싶다.
우리는 현재 어떠한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 현실을 어떻게 정리해야 삶이 보다 편안해질까?
분인이라는 용어는 그러한 분석에 필요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막연하게 알아챈 것을 새삼 다시 고려해보려면 아무래도 개념적인 말이 필요하다. ‘무의식의 존재’를 프로이트 이전 사람들이 어떻게 감지했든, 화제로 삼으려면 역시나 적당한 용어가 할당되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책의 내용 또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명료하게 논의된 적이 없을 뿐이다. 논의를 발전시키려면 아무래도 기반이 필요하다. 이 책의 의의는 일단 그 기반을 정비하는 데 있다.
미디어가 발달하고 인간관계가 점점 더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오늘날만큼 소리 높게 강조된 시대는 없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정체성에 관해 깊이 고뇌하고 있다. 나란 무엇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구태의연한 발상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현대인의 실정에 들어맞는 사상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만들어가야 할 때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이 책을 통해 ‘개인에서 분인’으로‘라는 발상의 전환에 대한 의미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경위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책 말미에 ‘개인(individual)’의 기원과 변천, 나아가 ‘개인’의 성립 과정을 권말에 「부록」으로 덧붙여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