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매일 글을 쓴다. 그리고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新人,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김연수의 신작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페르난두 페소아의 말이 떠오른다. “산문은 모든 예술을 포괄한다. 한편으로 단어는 그 안에 온 세계를 담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 자유로운 단어는 그 안에 말하기와 생각하기의 모든 가능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설을 쓸 때보다 쉽고 자유로울 단어들로, 김연수는 이 책에서 생각하기와 말하기, 쓰기의 비밀뿐 아니라 이 生을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 소설가의 일
2012년 2월부터 2013년 1월까지, 꼬박 일 년,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연재되었던 이 글은 말 그대로 ‘소설가의 일’에 대한 글이다.
소설가의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소설을 쓰는 일도 있고, 산문을 쓰는 일도 있다. 취재를 하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마감 때 삼십 분씩 끊어서 잠을 자는 것도, 마감이 끝난 뒤의 한가함을 맛보기 위해 아무도 없는 오후의 탁구장에서 탁구를 치는 것도, 다른 작가의 시상식에 갔다가 돌아오는 새벽의 택시 안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일도 모두 소설가의 일이다. 소설가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한다. _‘연재를 시작하며’ 중에서
작가가 밝힌 대로 책 속에는, 신년 독서 계획과 짧은 여행, 크고 작은 만남과 인상 깊게 본 영화와 자전거를 도둑맞은 이야기까지, 사소하고도 다양한 일상들이 녹아 있다. 그리고 그 “생각보다 많은 일”들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모두 창작의 일로 연결된다.
# 창작의 비밀 = 삶의 비밀
일종의 창작론이기도 한 이 책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제1부_열정, 동기, 핍진성)에서부터, 캐릭터를 만들고 디테일을 채우고 플롯을 짜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과정들(제2부_플롯과 캐릭터), 그리고 미문을 쓰기 위한 방법에 이르기까지(제3부_문장과 시점) 여러 가지 실질적인 창작의 매뉴얼들을 선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강조한다.
작가에게 중요한 건 오직 ‘쓴다’는 동사일 뿐입니다. ‘잘 쓴다’도 ‘못 쓴다’도 결국에는 같은 동사일 뿐입니다. 잘 못 쓴다고 하더라도 쓰는 한은 그는 소설가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젊은 소설가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그는 스물네 시간 백치에 가까울 정도로 한 가지 생각만 할 것이다. 문장들, 더 많은 문장들을.
처음 소설을 쓰려고 앉았을 때, 나는 무엇도 감각하지 못하는 영혼과 같다. 그래서 무엇이든 감각하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이 창작의 비밀들은 우리 삶의 비밀/태도에도 정확하게 대입된다.
캐릭터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캐릭터는 이미 만들어졌다. 단지 우리에게 감정이입할 시간과 노력이 없을 뿐이다.
사랑이라는 게 뭔가? 그건 그 사람에 대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을 자기처럼 사랑하는 것, 즉 그 사람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바로 그 사람’에게 시간과 노력을 쏟고, 그 사람에게 감정이입하여, 그 사람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일―그것이 어찌 소설 속의 캐릭터를 만드는 일에만 해당될 것이며,
좌절과 절망이 소설에서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이 감정은 이렇게 사람을 어떤 행동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몸짓이 바로 그의 세계관이다. 다시 말해서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몸짓이 바뀌면 그의 세계관도 바뀐다. 생각만 바뀌는 건 무의미하다.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몸짓이 바뀌어야 한다.
삶의 순간순간,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몸짓이 어떻게 바뀌는지, 그리고 좌절을 겪고 절망을 이겨내며 어떻게 바뀌어가는지―그것은 또한 소설 속의 인물에게만 해당되는 일일 것인가.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자주 서로를 오해하는데, 그건 대화를 통해 우리는 진짜 욕망이 아니라 가짜 욕망을 서로 교환하기 때문이다.
나와 타인이 서로 다르며,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본심에 가 닿을 수 없다는 전제가 없다면 선을 행하는 게 어려워진다.
지금의 이 시간을 어떻게 견디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고,
우리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시간을 경험한다. (…) 결국 비밀은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조금씩 성장해나간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 매일 글을 쓴다는 것
그의 말대로, 하루에 세 시간, 5매만, 느리게, 일단, 써(해)보자. 어쩌면 일 년 후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작품과 작가는 동시에 쓰여진다.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그 작가의 일부도 완성된다. 이 과정은 어떤 경우에도 무효화되지 않는다.
용기는 동사와 결합할 때만 유효하다. 제아무리 사소하다고 해도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건 용기가 될 수 없다.
다정하고 위트 있게, 동시에 정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는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우리 자신이 써내려가는 한 편의 긴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이 삶을 어떻게 써내려가야 하는 것인가는 결국,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장편소설 『원더보이』에서 작가는 “이 인생에서 내가 할 일은 더욱 내가 되는 일”이라고 한 바 있다. 이 책 속 어디에선가도 김연수는 “인간은 누구나 최대한의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대한의 내가 되는 일, 어쩌면 바로 지금, 이 시작일지도.
이 삶이 멋진 이야기가 되려면 우리는 무기력에 젖은 세상에 맞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만 한다. 단순히 다른 삶을 꿈꾸는 욕망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한다. 불안을 떠안고 타자를 견디고 실패를 감수해야만 한다.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이 말은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미문의 인생이다. 소설 속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추잡한 문장은 주인공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인생을 뻔한 것으로 묘사할 때 나온다. 사랑하지 않으면 뻔해지고, 뻔해지면 추잡해진다.
문제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시선이다. 그것마저도 무시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생의 일들은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옳거나 절대적으로 틀리는 일이 없이 중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재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