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하는 수녀님
“제 꿈은요, 발레하는 수녀님이 되는 거예요!”
사랑스러운 다운증후군 발레리나 지윤이의 아슬아슬하고 당당한 도전!
KBS 인간극장 《날아라 지윤아》를 통해 많은 시청자에게 웃음과 눈물을 선사한 지윤이는 정신지체 1급을 앓고 있는 다운증후군 발레리나이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춤을 사랑하던 지윤이에게,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발레는 단순한 무용이 아니라 험한 세상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자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와 끊임없이 싸우며 발레 연습에 매진한 지윤이는 2013년 겨울 평창스페셜올림픽에서 《지젤》 독무를 훌륭히 소화해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제 곧 대학교 4학년이 되는 지윤이의 꿈은 언젠가 발레하는 수녀님이 되는 것이다. 발레를 하면서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을 잊고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춤을 추는 것이다. 그 꿈을 위해 지윤이는 오늘도 가녀린 몸으로 세상에서 가장 힘찬 도약을 준비한다.
I Can Do It! 난 할 수 있어!
2013년 평창스페셜올림픽 개막 공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무대 위에 오른 지윤이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다. 지윤이는 춤을 출 때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친구들의 놀림도, 불편한 몸도, 슬픔도, 눈물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작은 종달새처럼 푸른 하늘을 향해 날갯짓을 할 뿐이었다. 사실 지윤이에게 발레는 만만한 운동이 아니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태어나 근력이 약하고 평형감각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멀쩡히 길을 가다가도 넘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드디어 지윤이가 가장 힘들어 하는 회전 동작을 할 차례가 되었다. 지윤이는 온몸의 힘을 발끝에 모았다. ‘나는 할 수 있어. I can do it!’ 지윤이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힘들고 외롭고 지칠 때면 늘 주문처럼 외우던 말이었다. 지윤이는 마침내 발끝을 세우고 빙그르르 돌았다. 완벽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춰 버린 것 같았다. 객석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그러나 잠시 뒤, 마침내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브라보! 브라보!” 다운증후군을 앓는 소녀, 근육의 힘이 약해 한쪽 발로 설 수조차 없었던 소녀에게 사람들은 감동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찾아온 아픈 천사
지윤이는 태어나자마자 21번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다운증후군이라는 진단 결과를 받았다. 의사는 가지고 태어난 장애보다 더 많은 합병증이 지윤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윤이는 고작 우유 10cc를 먹기 위해 한 시간이 넘도록 젖병을 물고 있었고, 사시와 고도의 난시로 눈 수술만 서너 번 받아야 했다. 지윤이의 성장은 참으로 더뎠고, 엄마는 그런 지윤이를 지키기 위해 기도를 하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세상과 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지윤이가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렀을 때,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그때가 언제가 돼든 기다리면 된다는 희망을 보게 된 그날부터, 엄마는 지윤이와 하나가 되어 배우고 익히는 것에 온 힘을 다했다.
무엇이든 남보다 몇백 배 더 노력했다. 엄마는 언젠가 지윤이가 혼자 힘으로 자립할 수 있기를 바랐고, 그래서 지윤이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수영, 영어, 컴퓨터, 발레……. 물론 무언가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지윤이네 가족에게 결코 쉽지 않았다. 학원에 다니는 것만 해도 그랬다. 어떤 학부모는 장애아가 다니는 학원에는 아이를 보낼 수 없다고 공공연히 적대감을 드러냈고, 형편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며 걱정스런 눈길을 보냈다. 어떤 사람들은 장애아가 뭘 할 줄 알겠냐며 비웃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는 지윤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해 보도록 했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 열심히 한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홀로 설 수 있는 길이 열릴지 모른다는 가느다란 희망 때문이었다. 앞으로 지윤이가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을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을지 모르지만, 되도록 지윤이가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그 상처를 담담하게 이겨 낼 수 있는 아이가 되길 바랐다. 남들처럼 멋있게 해내지 못해도 좋았다. 그래도 늘 진심으로 격려해 주고 잘했다고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지윤이는 어느 날 엄마에게 찾아온 몸이 많이 아픈 천사니까.
22살 지윤이의 꿈은 계속된다
지윤이는 올해 대학교 3학년이다. 우리 나이로 22살의 어엿한 처녀다. 겨울에는 평창스페셜올림픽 개막 공연에 참가해 큰 박수를 받았고, 봄이 되면서는 보육교사인 엄마의 도우미로 어린이를 돌보는 일을 새로 시작했다. 열심히 대학 수업을 듣고, 컴퓨터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가끔은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번다. 주말마다 성당에 나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물론 발레를 접은 것은 아니다. 지윤이의 꿈은 여전히 발레하는 수녀님이다. 그러나 지윤이가 되고 싶은 발레리나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발레리나가 아니다. 그저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으로 발레를 즐기며, 발레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즐겁게 춤을 추고 싶을 뿐이다.
엄마도 지윤이에게 꼭 성공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장애를 극복하고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꼭 무엇이 되기보다는 어디든 지윤이가 필요한 곳에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일이어도 지윤이가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하고, 웃음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된다고 믿는다. 억지로 무엇을 이루려고 하지 않고, 그저 힘닿는 대로 열심히 아름답게 살면 되는 것이다.
지윤이는 힘들고 아플 때면 예수님을 생각한다. 사람들이 던진 돌을 맞으면서도 참은 예수님처럼 자신도 그 아픔을 참아 낼 거라고 다짐한다. 자기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쓰다듬으며, 작은 소리로 사랑을 전하고, 웃음을 전하는 천사가 되는 꿈을 키워 갈 거라고. 지윤이의 꿈은, 당당한 도전은 그렇게 아직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