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이니
목조선난파사고 실종자 수색 취재 중, 가방에 담긴 엉뚱한 변사체들이 발견되었다.
변사체의 지문은 염산에 지워졌고, 치아는 모두 뽑혔다. 외상 없이 깨끗하게 죽인 다음, 신원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유기한다? 전직 프로파일러였던 류 피디는 이 범죄의 이면에 독특한 무엇이 있음을 직감하고 추적에 나선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기존의 프로파일링 데이터로는 포착하기 힘든, 전혀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가 나타난 것일까?
기담은 그를 괴롭게 하는 귀신을 떨쳐 버리기 위해 귀신 쫓는 장승과 감투를 구매한다. 그렇게 운명처럼 ‘머리에 쓰면 모습이 사라지는 도깨비감투’를 손에 넣게 된다.
다음날, 자고 일어났더니 귀신은 사라졌다. 그런데 장승이 목을 맨 채 거실 천장에 매달려 있다! 대체 누가 그런 걸까. 기담은 도깨비감투를 쓰고 자신을 노리는 괴한의 뒤를 쫓는다.
류PD와 기담이 쫓는 그 끝에는 과연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
어느 가을, 가방에 담겨 유기된 기이한 시체들이 연쇄적으로 발견된다. 우연히 사건을 목격하게 된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이자 전직 프로파일러인 류PD는 이 범죄의 이면에 독특한 무엇이 있음을 직감하게 되고 독자적으로 추적에 나선다. 한편, 귀신에 시달리던 기담은 귀신 쫓는 물건을 사러 골동품 가게를 찾는다. 그곳에서 운명처럼 ‘머리에 쓰면 모습이 사라지는 도깨비감투’를 얻게 된다. 이 감투 덕분에 기담은 괴한들의 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기담의 목숨을 노리는 자는 누구인가. 기담은 도깨비감투를 쓰고 그들의 뒤를 쫓는다.
『내가 보이니』는 류PD와 기담의 입장에서 각각 이야기가 진행된다. 류PD가 쫓는 범인은 누구이고, 기담을 쫓는 괴한은 누구일까. 기담과 류PD의 이야기는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까. 배영익은 두 명의 각각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엮어가면서 숨 막히는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일반적인 범죄수사물이 범죄와 그걸 추리하는 과정으로만 되어 있었다면 이 소설은 ‘도깨비감투’ 설화를 통해 미스터리에 녹여낸 점이 흥미롭다. 도깨비감투는 설화에서처럼 일단 쓰면 정체가 안 보이는 소품이다. 도깨비감투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심 소재로 쓰이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과학수사를 하는 프로파일러의 범죄 수사는 비현실적인 설화 내용과 오가면서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내가 보이니』를 통해 배영익 작가는 치밀한 구성과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펼치고 있다.
도깨비감투를 쓰면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때 본능적 욕구가 고개를 든다. 욕구는 머지않아 욕심이 된다.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으니 남의 재물을 훔치는 등 못할 일이 없다. 부도덕한 방법으로 욕심을 채우는 데 거리낌이 없어진다. 도깨비감투 설화가 만들어질 당시만 해도 도둑질의 대상은 소소한 생필품이나 음식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난한 서민의 보상 욕구였을 것이다. 재산이라 해도 금은전이나 쌀, 가축, 비단처럼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들로 존재하던 시대’였다.
도깨비는 이런 것들을 사라지게 만들거나 사라지지 않게 만듦으로써 도깨비감투를 쓴 사람의 욕심과 유혹을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재산이란 어떤가. 화폐란 주로 전산상으로 표기되고, 그래서 보이지가 않으니, 그런 방식의 통제 수단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405쪽) 욕심과 유혹을 통제할 수 없어 보이지 않는 돈을 끝없이 원하게 된다. 오늘날의 이런 현대적 욕망은 과거 가난한 서민의 보상 욕구와 다르다. 병적인 중독이다.
『내가 보이니』는 돈에 대한 병적인 중독,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현대사회의 추악한 욕망의 민낯을 ‘멘토’를 통해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마치 돈이라는 감투를 쓴 도깨비 같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도덕적인 방식을 취하는 것은 낭비, 구질구질함, 혐오스러운 것이다. 도덕적인 것들을 무시해버리면 효율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그 방법이 살인이어도 상관없다.
멘토의 이런 가르침은 야망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매우 매혹적이다. 야망가라 해서 먼 이야기는 아니다. 문 노인의 손자가 그랬고, 펀드매니저와 형사가 그랬고, 평생 청렴하고 욕심 없는 사람이란 평판을 듣던 노인도 그 유혹에 넘어갔다. 현대사회의 병적인 욕망에 대한 민낯이고 어쩌면 진화의 끝에 남는 최후의 인간이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이자 전직 프로파일러인 류PD의 수사 취재 기록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프로파일러의 시각으로 범죄를 분석하고, 다큐멘터리 피디로서 수사과정을 기록한다. 범죄 단서를 쫓아 현장을 누비고, 프로파일링으로 용의자를 분석하며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각 장마다 나오는 사건 관련자 인터뷰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사건 현장과 취재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처럼 눈앞에서 펼쳐진다.
서사의 짜임새도 영화의 기승전결을 보는 듯하다. 한 명의 살인마를 쫓는 과정에, 그를 쫓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한 가운데의 살인범을 향해 촘촘하게 거미줄을 짜서 들어온다. 각 인물들의 과거와 얽히고설킨 관계가 밝혀지는 타이밍은 바둑판 위에 신중히 놓인 한 수처럼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 거대한 미스터리를 쫓는 중간 중간에 작은 미스터리를 넣어 이야기 흐름에 계속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밀도 높은 이야기 구성과 박진감 넘치는 전개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다른 매체의 스릴러로 각색한다고 해도 무리 없을 정도이다. 영화 시나리오를 써본 작가라 그런지 장면을 구성하고 서사를 끌고 가는 능력이 탁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