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번역 트러블

번역 트러블

저자
김미현
출판사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출판일
2017-11-08
등록일
2018-06-11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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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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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약 0

책소개

원본의 반복이 아닌 차이의 반복, ‘문화번역’의 세계를 말하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보면 ‘1파운드의 살’에 대한 재판 내용이 나온다. 안토니오가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1파운드의 살을 떼어내기로 계약했을 때, 안토니오를 구하기 위해 등장한 포오샤는 말 그대로 오직 살만을 떼어내고 한 방울의 피도 흘리면 안 된다는 의미로 바꿔버린다. 이때 포오샤가 샤일록에게 요구한 것은 ‘정의’가 아니라 ‘자비’이다. 그리고 정의보다 가치 있는 자비를 거절한 샤일록의 비인간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것이 그동안 이 텍스트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이었다. 하지만 데리다(J. Derrida)는 이 재판에 대해 ‘유대인’ 샤일록에 대한 ‘기독교인’ 포오샤의 정치적인 권력 행사로 다시 해석한다. 포오샤의 요구는 법과 정의를 수호하려는 유대인 샤일록에게 정신적이고 신적인 자비를 요구함으로써 세속법이 아닌 종교법을 강요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유대인 샤일록을 기독교로 개종하도록 강요하는 것이기에 민족차별적인 폭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럴 때 샤일록은 ‘비인간적인 채권자’가 아니라 ‘억압받는 유대인’으로 새롭게 번역될 수 있다. 이것은 정치나 종교, 민족과 국가 등의 이데올로기가 개입됨으로써 문화 간의 충돌과 갈등, 변화와 확대 등과 관련된 ‘문화번역’이 행해진 사례에 해당한다.

한국소설의 경우에서도 그 자체로 영광이자 상처에 해당하는 이광수 문학 또한 이러한 문화번역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식민지 시기에 이광수는 『무정』과 『재생』, 『흙』, 『사랑』 등의 작품을 거치면서 자발적으로 남의 죄까지 뒤집어쓰는 ‘능동적 피해자’로서의 인물들을 강조한다. 근대의 설계자로서 발전적 근대에 대한 강한 열망을 지녔던 이광수는 소극적 주체에 머물러 있는 한국인들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억압적 가해자인 일본인들보다도 더 우월하고 강력한 위치에 서고자 자기희생마저도 불사하는 민족주의적 영웅의 모습을 절대적으로 추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에 다시 소환된 이광수 문학은 탈정치화된 모습으로 변형되어 소비된다. 1960년대의 개발경제 이데올로기를 위해 무조건적인 인내와 금욕만을 대변함으로써 ‘반(反)개인’과 ‘반(反)자유’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도록 재해석되었다는 것이다. 정신적 고양이나 경건함이라는 외피를 둘렀지만 탈정치성을 중심으로 문화번역되면서 이광수 문학은 식민지 시기보다 더욱 숭고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천박해졌다.

이 책은 이처럼 문학 독자나 특정한 시대 자체가 새로운 번역자로 기능하면서 자신의 정서나 사상, 시대나 사회적 이념을 기반으로 문학을 새롭게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해나가는 행위에 대해서 문화번역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문화번역은 넓은 의미에서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일반적인 해석 행위와는 다르다. 문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해석이라면, 문화번역은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이동시키거나 좀 더 다양한 문화로 확산, 증식시키는 과정에 해당하기에 오히려 ‘해석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문화번역은 원본(출발문화)을 기본으로 삼되, 원본에 대한 객관적이고 충실한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새롭게 진행되는 번역(도착문화)과 원본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과 차이 혹은 상호 관계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번역은 단순히 번역의 범위를 언어가 아닌 문화로 넓힌다는 의미가 아니라, 작품에 대한 재평가와 그 속에서의 갈등과 변형, 차이를 끌어안는 ‘문화적 전환’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적극적 의미를 지닌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논의 대상이 외국어를 한국어로 (언어)번역한 소설들이 아니라 동일한 한국어로 창작되었지만 서로 다르게 문화번역된 한국소설들인 이유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박완서, 박경리, 황석영, 김영하, 이창래, 김유정, 김사과, 오정희 등 한국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문화번역 양상을 ‘근대’, ‘민족’, ‘감정’, ‘젠더’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네 가지 영역은 한국근대소설사에서 가장 빈번하면서도 혼란스럽게 번역되었거나 지금도 번역 중인 영역이다. 이와 관련된 심도 있는 문화번역 관련 논의들을 통해 독자들은 21세기 들어서 더욱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다른 문화들 간의 오염과 영향, 차별과 차이, 향수와 저항의 양면을 함께 체험하며 문화번역을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적인 ‘트러블’이 무엇인지 직접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학을 수동적으로 흡수하는 소극적 ‘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추가하거나 조정하는 적극적 ‘생산자’의 입장에서 한국소설을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 책 내용







이 책은 총 4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근대번역과 다른 여러 근대‘들’〉에서는 근대번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한국의 집약적인 근대 체험 혹은 혼종적 근대성에 대해 살펴본다. 근대를 체험하는 일은 번역자의 입장과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누가 경험하고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근대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근대화의 여부보다 ‘어떤’ 근대화인지에 주목하기 위해 근대를 번역하는 실제적 양상들에 주목하면서 한국의 근대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1」, 이효석의 『벽공무한』, 박경리의 『녹지대』를 분석 대상 작품으로 삼고 있다.

제2부 〈민족번역과 백색신화/황색신화〉에서는 한국적인 것 혹은 한민족적인 것 속에 내재해 있는 민족지적 (무)의식을 통해 어떻게 과거의 역사를 다시 쓰는지 고찰한다. 백인이 번역한 유럽 혹은 서양중심주의를 의미하는 ‘백색신화’만큼 황인종이 번역한 비유럽 혹은 동양중심주의를 의미하는 ‘황색신화’ 또한 위험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민족번역이 민족문화를 규명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민족의 정체성을 불안하게 만드는 틈새까지도 고려해야 함을 강조한다. 황석영의 『손님』, 2000년대 탈북자 소설, 이창래의 『영원한 이방인』이 분석 대상이다.

제3부 〈감정번역과 ‘스캔들(scandal)’로서의 감정〉에서는 감정 자체가 지닌 이성에 대한 타자성과 감정번역에서의 열등한 정체성에 대해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감정은 언제나 감정 그 자체로 평가받지 못하고 ‘이성 아닌 것’으로 번역되다가 20세기 말부터 재번역되기 시작한다. 사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불안정하기에 통제되어야 하는 대상이었던 감정에 대한 억압을 풀면서 기존의 감정번역과는 다른 접근이 이루어진다. 계급이나 자본, 윤리 등과 연관되지 않는 감정은 불가능하다는 인식 하에 사회 변동이나 행위 구조와의 연관성 속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감정의 번역을 감정자본주의, 감정노동, 감정독재, 탈감정사회 등 요즘 더욱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는 다양한 논점들과 함께 살펴보고 있다. 논의는 김유정 소설의 ‘아내 팔기’ 모티프와 박태원의 「명랑한 전망」, 김사과의 『미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제4부 〈젠더번역과 횡단하는 여성성〉에서는 젠더의 번역자이자 반역가로서의 젠더 하위주체들이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매개하고 차이와 대면하는 양상을 살펴보고 있다. 젠더번역의 주체로서 여성작가들은 남성적인 영역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여성성을 어렵게 수행해나간다. 이럴 때 여성작가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권력의 행사가 허용되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다. 박화성의 『북국의 여명』, 이선희의 여성성장소설, 오정희의 「저녁의 게임」을 분석 작품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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