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
『카모메 식당』으로 잘 알려진 작가 무레 요코에게는 1900년생 외할머니 모모요가 있다. 서양문물에 익숙한 세대이며, 고등교육을 받았고, 전쟁을 경험한 여성으로,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었던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기도 했지만, 아내와 엄마로서의 일을 끝낸 뒤에는 한 개인으로서 25년 동안 "일"을 손에 놓지 않았던 자존감 있는 인간이다. 무레 요코는 딸이 아닌 손녀라는 위치를 통해 획득한 객관성을 바탕으로 "모모요라는 한 개인의 평전"을 완성한다. 그리고 노년을 가장 빛나는 때로 묘사한 "유일한 평전"을 우리 앞에 선보인다.
1995년 출간된 모모요 이야기, 2018년 한국에 도착한 이유
그동안 우리 곁의 할머니는 이런 모습이었다.
삶의 지혜를 모두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존재, 따뜻하고 너른 품, 인자한 눈빛, 기운이 빠져 햇빛 아래서 졸고 있는 모습... 등등.
2002년 한국영화 [집으로]에서 시골 할머니는 도시 소년인 손자와 도통 어울리지 못했다.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은 촌스럽고 불편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점점 할머니의 따스함에 동화되는 손자의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할머니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그 고정된 이미지인 따스함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뮤지션 루시드 폴의 2005년 노래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에서도 시골 할머니는 따스함 그 자체다.
우리에게 할머니는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다. 즉, 대상화되어 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지워지는 존재였다.
그런데, 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요즘 할머니들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한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에도 이제 남녀가 평등하게 교육의 기회를 누린 세대, 정치 경제 사회적인 진전을 경험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긴 노년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세대부터 지금 3,40대까지, 이들은 자신들의 노년을 자신들의 이전 세대에게서 찾지 않는다.
이미 70년대부터 ‘고령화 사회’가 시작된 일본은 약 20년 후인 94년에 고령 인구가 2배로 늘어 ‘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이 책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은 그 시기인 95년에 출간되었다. 작가로서 무레 요코의 눈에 ‘외할머니’의 일상이 포착된 것이다. 2000년에 고령화 사회가 시작된 우리나라에서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현재, ‘노인’은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들이 직면한 개인의 문제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노인을 한 개인으로서 다룬 이 에세이는 우리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모모요는 할머니가 아니다, 모모요는 모모요다
“지금 가지 않으면 다신 도쿄도 못 가보고 저세상에 가버릴지 모르잖냐.”
_모모요(90세)
『카모메 식당』으로 잘 알려진 작가 무레 요코에게는 1900년생 외할머니 모모요가 있다. 모모요는 서양문물에 익숙한 세대이며, 고등교육을 받았고, 전쟁을 경험했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었던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기도 했지만, 아내와 엄마로서의 일을 끝낸 뒤에는 한 개인으로서 25년 동안 ‘일’을 손에 놓지 않았던 자존감 있는 인간이다.
고령화 사회 이전 여성의 삶만 살펴본다면, 아내와 엄마로서의 일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노년을 맞이한다. 짧은 노년은 손자들의 재롱을 만끽하다가 조용히 숨을 거두는 일이 허용되었다. 하지만 긴 노년을 맞이하게 된 모모요는 80살이 넘어서까지 동네 공장에서 일을 하며 활기를 찾는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잉여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을 챙기며 생산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그런 모모요지만, 자식들의 마음을 그렇지 않다. 80살 넘은 노모에게 일을 시키는 자식들이라는 타인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자식된 도리에서도 걱정스러운 것이다. 이 에세이에서 무레 요코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모모요 할머니를 분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가가 써내려간 에세이의 행간마다 고정된 타인들의 시선과 사회적인 통념들이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된다. 이 점은 이 유쾌한 에세이가 갖고 있는 미덕이기도 하다.
졸지에 일을 잃게 된 모모요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해져서 도쿄로의 여행을 감행한다. 이 에세이는 90살이 된 모모요가 자신의 하루를 충만하게 보내려는 의지를 내뿜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무레 요코의 처음 생각도 우리가 ‘노인’하면 떠올리는 고정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도쿄에 모모요가 혼자 올라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정정하다고 하지만 90년이나 산 사람을 혼자 도시에 보내다니, 너무 몰인정한 거 아닌가.”
하지만 이런 반응 때문에, 도쿄 여행에서 쩔쩔매는 것은 할머니 모모요가 아니라, 외삼촌 부부다.
“아니, 그게, 우리 집에서 제일 정정하셔. 어쩌면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날지도 몰라.”
모모요의 도쿄 여행은 패키지 여행도 아니며, 돌봐줄 누군가를 동반한 여행도 아니다. 모모요는 심지어 도쿄 버킷리스트 다섯 가지를 준비해온다.
“호텔에서 혼자 잘래.”
“우에노 동물원에 가서 판다를 볼 거야.”
“도쿄 돔 견학.”
“도쿄 디즈니랜드에서도 놀고.”
“할머니의 하라주쿠에서 쇼핑하기.”
‘할머니의 하라주쿠’라는 리스트가 아니었다면, 10대나 20대의 버킷리스트라고 여길 법한 내용들이다. 그녀의 버킷리스트를 잘 살펴보면, 자신이 젊은 시절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 등장한 여행의 형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모모요는 언제나 ‘현재’를 만끽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사회적으로 ‘노인’이라 불린다 해도, 그것은 그들의 의견일 뿐, 본인은 여전히 모모요 자신인 것이다.
자신으로 살고 있는 모모요는 늘 세상의 통념과 싸운다. 도쿄 돔을 보러 가는 할머니, 낯설다. 이는 누구의 시선일까. 젊은 사람들의 시선이다. 모모요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아, 그러세요. 할머니, 무리해서 도쿄 돔에 가지 않아도요,
이 노선으로 가면 황궁과 신사에 가실 수 있어요.
노인분들이 다들 ‘고마워, 고마워.’ 하고 정말 기뻐하신답니다.”
가이드북까지 보여주면서 친절하게 말했다.
그러나 모모요는, “그런 것 봐서 뭐하게. 빨리 도쿄 돔이나 찾아줘요.”
버럭 화를 냈다.
잠시 멍하니 있던 그는, “넵! 알겠습니다.” 하고 허둥지둥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이미 다가온 고령화 사회는 두렵고, 노인은 버거운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모모요를 보고 있으면 노인이 버거운 존재가 아니라, 사회가 ‘버거운 존재로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때, 90살
이 에세이는 세 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1장은 90살의 모모요가 도쿄에 홀로 올라와 딸네집에 머물며 다섯가지 버킷리스트를 클리어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고, 2장은 모모요가 자신의 집에서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가, 또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아주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1장과 2장에서는 무레 요코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따스함이 잘 드러난다. 모모요는 세상에 이런 할머니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시종일관 웃음을 선사한다.
예를 들어, 모모요의 도쿄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도쿄 돔 견학’은 시골 노인네의 그것이 아니다. 축구팬이 응원하는 팀의 홈구장을 찾아 그곳에서 만끽하고자 하는 그 감정 때문이다. 디즈니랜드가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모요의 딸은 기함한다. 하지만 모모요의 에너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게 하는 힘이 있다.
“모모요처럼 늙고 싶다.”
우리 인생에 전성기가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모모요는 그런 세상의 정의에 아랑곳하지 않는 인물이기에, 오늘의 우리에게 도리어 위로가 되며,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즐거운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에세이의 핵심은 3장에 있다. 무레 요코가 자신의 할머니를 단순히 ‘재미있는 캐릭터’라서 글로 옮긴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파트이다. 모모요의 어린시절부터 그녀가 도쿄 여행을 감행하기 이전까지를 다룬 이 파트에서 우리는 작가 무레 요코 특유의 필력을 통해 모모요라는 한 자존감 있는 여성의 개인사를 살펴볼 수 있다.
작가의 눈에 모모요는 좋은 소재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자존감을 지키며 잘 대응해나간 훌륭한 개인이고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무레 요코는 딸이 아닌 손녀라는 위치를 통해 획득한 객관성을 바탕으로 ‘모모요라는 한 개인의 평전’을 완성한 셈이다. 그리고 노년을 가장 빛나는 때로 묘사한 ‘유일한 평전’을 우리 앞에 선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