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미리보기
미야모토 소위, 명성황후를 찌르다
- 저자
- 이종각 저
- 출판사
- 메디치미디어
- 출판일
- 2015-07-03
- 등록일
- 2016-08-18
- 파일포맷
- EPUB
- 파일크기
- 45MB
- 공급사
- 예스이십사
- 지원기기
-
PC
PHONE
TABLET
웹뷰어
프로그램 수동설치
뷰어프로그램 설치 안내
책소개
을미사변 120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재조명
낭인이 살해범이라는 통설을 뒤엎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 군대와 낭인들이 경복궁 담을 넘어 들어가 왕비를 참혹하게 살해하고 불태웠다. 이른바 을미사변이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범인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당시 여러 증언자의 기록과 일본외교 문서 등을 종합할 때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1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범인의 정체에 대해선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은 미우라 고로 주한공사가 총책임자가 되어, 대원군의 쿠데타로 위장하고 낭인부대를 동원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했다는 정도다. 영화와 드라마가 묘사하는 명성황후의 최후에는 언제나 기모노를 입고 칼을 휘두르는 낭인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황후 시해범이 낭인이라는 통설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을미사변은 일본 군부의 군사 작전이었고, 그 범인 역시 군인이라는 것이다. 이는 저자가 우치다 사다쓰치 주한영사(미우라 공사가 왕후 살해 작전에서 철저히 배제시켰던 인물)가 보고한 「우치다 보고서」를 비롯하여, 그가 본국 하라 다카시 외무차관에게 보낸 개인서신, 그 밖에 관련 자료를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청일전쟁 후 동아시아 패권을 다투던 일본 제국 정부가, 왕비 살해라는 막중한 임무를 깡패와 다름없는 낭인패들에게 맡겼을 리 없다는 것. 곧 을미사변을 바라보는 시각틀 자체를 바꾸어야만 이 사건과 범인의 정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소개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나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2000년까지 사회부, 정치부 기자를 거쳐, 국제부·정치부 차장, 기획팀장, 심의팀장 등을 지냈다. 2000년 말, 일본으로 가 도쿄 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2004년) 뒤 주오 대학교 등에 출강하는 한편 일본 신문 등에 한국 관련 칼럼 집필과 근·현대 한일 관계사에 관한 저술 활동을 했다. 2012년 귀국 후 동양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자객 고영근의 명성황후복수기》, 《이토 히로부미》, 《추락하는 일본》, 《韓?いまどき世相史》,《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가 있다. 역서로는 『夜明けのあかり』가 있다.
목차
제1장 여우사냥
무장 미우라의 서울 부임
‘왕후 폐제廢除’에 나선 군 지휘관들
난입전야
‘왕비 살해’ 긴급 타전
제2장 참극의 현장, 건청궁
서양인이 목격한 참극
건청궁의 비명소리
제3장 누가 명성왕후를 죽였는가
‘왕비 살해자는 우리 육군소위’
결정적 단서 ‘육군사관이 먼저 칼로’
제4장 검증 ‘시해범 미야모토 소위’
의혹 하나, 왜 우치다는 살해범을 은폐했는가?
의혹 둘, 왜 미야모토를 현장에 투입했는가?
의혹 셋, 왜 우편취급 기사, 사진사는 급거 귀국했는가?
의혹 넷, 왜 미야모토 조사는 서둘러 끝냈는가?
의혹 다섯, 왜 미야모토는 타이완 헌병대로 갔는가?
의혹 여섯, 왜 전사자인데도 야스쿠니 명부엔 누락됐는가?
제5장 을미사변, 그 후
낭인들, “너도나도 왕비를 하수”
천황, “해야 할 때는 해야 하는가”
제6장 명성황후는 누구인가
외국인이 본 명성황후
명성황후의 친필 한글편지
에필로그_홍릉에서
맺는 말
참고문헌
부록
자료 1 「우치다 보고서」(전문 번역)
자료 2 「한국왕비살해사건 군법회의 판결서」(전문 번역)
자료 3 「우치다 사신私信」(전문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