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
역사학자의 눈으로 다시 바라본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
그 악惡의 역사를 매듭 짓는 유일한 방법에 관한 보고서
2016년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관한 2년여의 진상조사위 결과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감시와 검열은 어떠한 결말을 맞는지, 우리의 처벌은 정당했으며 역사는 오늘의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2차 세계대전의 전범 도조 히데키와 김기춘의 비교로부터 고찰하는 블랙리스트의 현재사가 담긴 책이다.
『우리는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위즈덤하우스, 2019)는 지나칠 정도로 현실과 무관한 역사학의 논의에서 벗어나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서의 역사를 고민하는 한 역사학자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이다. 저자 심용환은 오늘의 현실은 과거의 대한민국사를 압도할 만큼 새로우며,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역사가는 '현대사'가 아닌 '현재사'로서 블랙리스트 사태에 응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몇 개 기사의 헤드라인을 훑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의 해답이 진지하고 냉철한 복기 안에 숨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의 주범인 김기춘을 '현재사의 인물'로서 기술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의 전범 도조 히데키를 비교 분석의 대상으로 소환한다. 또한 조윤선과 김종덕 전 문화체육부장관의 맹종을 이해하기 위한 대상으로 히틀러 시대의 철저한 문화예술계 추종자인 알베르트 슈페어를 비교한다. 흡사 데칼코마니와도 같은 이들의 양태는 같은 선택을 할 때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며,동시에 정당한 처벌 없이 진보하는 사회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는 언제나 망각이 아닌 기억의 편에서 정의를 구현한다!”
‘집행유예’와 ‘혐의 없음’으로 종식되려는 블랙리스트 사태를 고찰한
한 역사학자의 집요하고 꼼꼼한 역사적 투쟁의 기록
2016년 겨울,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화마처럼 대한민국을 휩쓸었을 때, 우리는 그 비상식의 그늘 밑에서 김기춘과 조윤선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민주공화국의 꼭대기에 누구도 알지 못한 자격미달의 통치자가 있었다는 일도 경악할 일이었지만, 그 하수인의 목록에 김기춘과 조윤선의 이름이 오른 것은 너무나 기묘했다. 유신헌법의 설계자이자 이 사회 최고 권력층의 자리에서 단 한 번도 위치를 달리한 적이 없는 인물 김기춘과 숱한 1호 타이틀의 주인공이자 '실세 장관' 조윤선이 그저 대통령의 지인에게 그토록 철저하게 맹종했다는 것은 분명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후 드러난 9,473명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명단은 과연 그 정권의 민낯이 얼마나 뻔뻔하고 과감했는지 보여줬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 자랑하는 듯한 광범위하고 무분별한 검열은 지원금 배제 등의 형태로 치졸하게 자행됐고 이로 인해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지난한 생존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투쟁은 광장의 촛불로 이어졌고 결국은 합리적인 시민의 힘이 승리한 듯 보였으나 거기서 끝이었다.김기춘과 조윤선이 받은 형벌은 각각 3년형과 집행유예였을 뿐지만(1심) 왜 이들의 형량이 이토록 가벼운지를 궁금해하는 이들은 없다. 왜 매번 우리의 투쟁은 모여서 분노하는 데 그치는 것일까. 왜 우리는 그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는 데에까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위즈덤하우스, 2019)는 지나칠 정도로 현실과 무관한 역사학의 논의에서 벗어나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서의 역사를 고민하는 한 역사학자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이다. 저자 심용환은 오늘의 현실은 과거의 대한민국사를 압도할 만큼 새로우며,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역사가는 '현대사'가 아닌 '현재사'로서 블랙리스트 사태에 응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몇 개 기사의 헤드라인을 훑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의 해답이 진지하고 냉철한 복기 안에 숨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의 주범인 김기춘을 '현재사의 인물'로서 기술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의 전범 도조 히데키를 비교 분석의 대상으로 소환한다. 또한 조윤선과 김종덕 전 문화체육부장관의 맹종을 이해하기 위한 대상으로 히틀러 시대의 철저한 문화예술계 추종자인 알베르트 슈페어를 비교한다. 흡사 데칼코마니와도 같은 이들의 양태는 같은 선택을 할 때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며,동시에 정당한 처벌 없이 진보하는 사회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행위의 결과에 따라 처벌은 달라야 한다
드레퓌스 사건과 스페인 내전을 통해 바라본 정당한 처벌과 기억의 문제
책은 드레퓌스라는 유대인 병사를 간첩으로 몰아세웠던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광기와 자성의 모습을 통해 진실이 밝혀진 이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유대인은 간첩'이라는 집단 최면에 빠진 당시 프랑스 사회의 모습은 블랙리스트 사태 직전 대한민국의 모습과 유사하다. 언론은 선동적으로 가짜 뉴스를 양산하고 국민 다수가 이들 선동에 무비판적으로 휘말려 이성적 판단을 배제한 채 혐오와 증오의 대상을 선택한다.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피해자가 입은 고통에 대해선 함구하며 무엇보다 가해자 처벌의 문제는 철저하게 외면한 것이다. 피해자의 삶은 철저하게 망가졌지만 어떠한 처벌도 없으므로 누구도 가해자가 되지 않는 현실은, 1890년대 드레퓌스가 겪었던 일인 동시에 2018년의 대한민국 문화예술계가 겪은 일이기도 하다.
책은 블랙리스트 사태에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가담했던 이들의 처벌에 관해 문제제기한다. 김기춘과 조윤선은 정당한 처벌을 받았는가? 상부의 지시를 받아 하부에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명령한 고위 공무원들의 처벌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그저 말단에 있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처벌의 문제에서 자유로운가? 저자는 과거 친일을 해도 독재를 해도 범법을 저질러도 면죄부를 줬던 우리 역사의 과오를 되짚으며, 처벌이 없는 역사의 진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스페인 내전 당시 양 진영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서로 '망각'하기로 합의한 뒤 발생한 거대한 사회적 혼란을 거론하며, 갈등을 감내하더라도 끊임없이 기억하고 문제제기하는 사회만이 평화를 누릴 수 있음을 역설한다.
철학의 어깨 위에서 조망한 관점이 있는 역사
대안을 제시하는 네비게이터로서의 네 가지 철학 이론
책은 모든 장의 말미에 각 장의 주제를 좀 더 깊이 있게 해석할 수 있는 철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블랙리스트의 탄생과 인간 심리를 추적한 1장에서는 주디스 슈클라의 《일상의 악덕》을, 권력에 맹종하는 관료사회를 꼬집은 2장에서는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을, 부역자 처리에 관한 처벌 문제를 제기한 3장에서는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기억의 문제를 거론한 4장에서는 비어트리스 웹과 시드니 웹의 《산업민주주의》의 이론을 들어 각 장에서 주장하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안고 있는 한계 지점을 돌파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자칫 대안 없는 비판으로 그칠 수 있는 책의 논지가 탄탄하게 보완되었으며,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단순한 보고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제된 인문서를 읽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