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다 - 지브리로 고전읽기 1 (미야자키 하야오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영감을 준 소설)
"절망의 시대가 낳은 일본의 대표적 순애소설"
『바람 불다』는 일본 근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호리 다쓰오(堀 辰雄)의 순애소설이다. 폐결핵에 걸린 약혼녀를 산 속 요양소에서 정성껏 돌보는 한 남성의 순애보적인 이야기가 간략한 문체로 가슴 아리게 전해지는 이 소설은 작가의 실제 경험에서 쓰인 자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집필된 1930년대 일본은 폐결핵이 크게 유행했고 군부의 힘이 사회 전체를 뒤덮는 등 희망 없는 시대였다. 이에 많은 젊은이들이 고뇌하며 좌절했다. 오랫동안 폐결핵을 앓고 지내던 젊은 작가 호리 또한 그런 절망의 시대 속에서 순수한 사랑을 겪는다. 약혼녀의 죽음으로 그 사랑은 끝맺지만, 호리는 순수한 사랑이야말로 어둠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 깨닫는다. 『바람 불다』는 그 깨달음의 결정체와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소설을 긴 세월 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이유도 그랬지 싶다. 대량소비와 패스트 문화가 판치는 지금 시대에 ‘지고지순함’이란 더 없이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 지고지순함에서 시작된 것이 거장 미야자키 감독의 2013년 신작 영화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영향을 주다"
『바람 불다』는 죽음 속에서 삶을 추구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여주인공 세쓰코의 죽음을 통해 생명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이 더욱 빛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런 죽음과 삶의 관념은 호리의 작품 대부분에 존재한다. 유럽 문학에서 받은 영향도 적지 않다. ‘바람 불다’란 제목조차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중 한 구절이다. 이야기 마지막에 나오는 시들은 독일 시인 라이너 릴케의 시집 『진혼곡』에서 빌려왔다. 발레리와 릴케 모두 죽음과 삶을 자신만 시각으로 탐구해 작품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병 덕분에 득을 봤다”는 호리의 말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란 요소는 그의 문학을 낳을 수 있는 힘이었다. 이런 창작의 흐름은 후대 소설들에 큰 영향을 끼치며 현대 연애소설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바람 불다』의 영향 하에 놓인 대표적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