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신이 내게 왔다
틈만 나면 생활지도 부장한테 불려가는 문제아 ‘꼴통’인 나. 그저 그런 나날을 보내던 2년 전 어느 날, 내게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굣길 우연히 줍게 된 기묘한 검은 수첩. 그 수첩을 찾으러 왔다는 흑문도령과 정체불명의 덩어리 하나. 그들과의 만남으로 마치 드라마 주인공 같은 삶이 내 앞에 펼쳐졌다.
수첩 속 덩어리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빠져 흑문도령의 힘을 이용하게 된 나는 맘에 들지 않으면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무조건 폭력을 행사했다. 친구 하나 없이 ‘왕따’로 지내던 학교에서는 ‘일짱, 싸움짱’으로 소문이 났고, 나 스스로도 세상의 악을 처단하는 ‘거리의 영웅’이라고 자처했다.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 폭력성을 주체하지 못하게 된 나는 급기야 칼까지 휘두르는 큰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외상뿐 아니라 깊숙이 곪은 마음의 병까지 치유하기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완수’라는 형을 만났다. 놀랍게도 그 또한 또 다른 문신을 만나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는데…….
‘공부’라는 잣대로만 학생들을 평가하는 획일적인 교육 환경
폭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이 땅의 청소년들
흔히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른다. 질주하는 바람처럼 요동하는 시기, 확고한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갖지 못한 채 흔들리는 시기가 바로 10대 청소년기이다.
『어느 날, 신이 내게 왔다』의 주인공은 열다섯 살의 남자 중학생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그저 ‘나’로만 명명될 뿐 특별한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뚜렷한 가치관 없이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이 책의 독자들은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신 또는 친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다니고 있는 학교는 그저 아이들을 ‘공부’라는 잣대로만 구분하고 있다.―현실에서의 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모범생’으로, 공부를 못하거나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들은 ‘문제아’, ‘꼴통’으로. 이러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진정한 ‘나’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며, 소설 주인공처럼 자신의 존재를 ‘폭력’으로 드러내는 아이들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앞으로 내 삶의 길은 또 어떻게 펼쳐질까?
흑문도령, 완수 형, 라미 씨 애인과 함께 하는 문제아 ‘싸움짱’의 정체성 찾기 여행
주체할 수 없는 폭력성으로 큰 싸움에 휘말려 병원에서 입원하게 된 나는 그곳에서 여러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외상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도 차츰 치유하게 된다. 작가는 주인공이 변화하는 모습을 ‘만남’이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검은 수첩’을 따라온 덩어리와 흑문도령은 폭력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병원에서 만난 담당 의사는 대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또 자신과 같은 경험을 했다는 완수 형을 통해 폭력성을 주체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악영향도 간접 경험하게 된다. 병원을 퇴원한 후, 아빠와 이혼하고 홀로서기를 시작한 엄마에게서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기쁨을 배우게 되고, 새로 온 음악 선생님(라미 씨 애인)과의 만남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주인공이 폭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은 완수 형과 닮은 전학생을 만나고 나서이다. 그에게서 자신의 옛 모습을 보게 된 주인공은 그를 그저 방치하지 않고 그에게 ‘친구’가 되자고 손을 내민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었던, 친구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조차 알지 못했던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친구를 찾아나서는 모습과 그에게 손 내미는 모습은 주인공의 변화된 모습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가는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문제아’라고 낙인찍힌 청소년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에게 정체성을 찾아주고, 건전한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억압과 통제가 아닌 ‘관심’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재미와 감동, 교훈이 적절히 어우러진 한국형 판타지 소설
학원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한 중학생의 편지를 읽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작가 백승남은 고등학생, 중학생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다. 작가는 만화,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등 재미 위주의 볼거리에 익숙해져 있는 10대들의 취향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이 이 소설을 좀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판타지’라는 그릇에 담았다.
이 책에 나오는 신들은 게임이나 기존의 책에서 나오는 서양 세계의 신이 아니다. 작가는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모습으로 포장되어온 서양의 신 대신 한국 토속의 신들을 등장시켰다. 서양 신들에 비해 역동적인 면은 떨어지지만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우리 고유의 신들의 모습은 청소년들에게 재미는 물론 색다른 호기심과 신비스러움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