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문학인생 오십 년의 담금질
거장 황석영이 피워올린 푸른 불꽃
1962년 「입석 부근」으로 등단한 이래 오십 년 동안 당대의 풍운을 몰고 다닌 작가 황석영,
그가 작년 10월 중국 윈난성 리장에서 집필을 시작하여 올해 3월과 4월 제주도에 칩거하며 완성한 전작 장편소설!
“……이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지금 이곳’은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그 세상인가.
2011년 여름, ‘매트릭스’의 세계에 날려보낸 대가의 푸른 불꽃!
나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시간이 멈춘 듯한’ 장소로서 중국의 리장(麗江)이란 곳을 찾아갔다. 칠백 년이나 되었다는, 언제나 봄날씨인 그 고읍(古邑)에서 나는 뉴욕이나 파리와 별 다름 없는 욕망이 다른 형태로 점령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지구상에서 탈출할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사실을 진부하게 확인했다. 작품을 시작만 해놓고는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고 끝마무리를 하겠다고 바다를 건너 제주에 가서야 간신히 마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다. 몇 달 사이에 삼백오십만이 넘는 생명들이 우리가 사는 땅에서 생매장을 당했고, 겨울에는 연평도 포격으로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몰려왔으며, 봄이 시작되자마자 일본의 대지진과 원전 참사가 일어나서 현재진행중이다. 중동에서는 재스민 혁명이 진행중이라더니 바로 어제는 오사마 빈 라덴이 죽으면서 9·11 이후 세계체제의 일막이 끝났다.
(……)
집필하러 갔을 때 나는 아내가 쓰던 노트북을 가져갔는데, 어느 날 우연히 작업하다 내버려둔 바탕화면의 캄캄한 어둠 속에서 처가의 가족사진이 떠오르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진을 찍은 곳은 아마도 이웃 나라의 관광지였을 것이다. 나는 노인부터 젊은 부모들과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 또는 셋이 둘이 혼자서 찍은 사진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장면을 계속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아주 쓸쓸한 장면들이었다. 어찌 가족뿐이랴, 불교에서는 백년 사이에 온 세상이 바뀌어 변하고 나타나는 것을 거대한 런던아이(London Eye)처럼 ‘수레바퀴의 한 회전’에 비유한다. 백년 뒤에는 현재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거기 살아가는 이들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새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만 모두 사라지고 앙코르와트의 흔적과도 같이 무성한 밀림과 새와 나비들만 남아 있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 자본주의는 세계의 운명인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서로 다 알면서도, 마치 옛날 민담에 나오는 호랑이 꼬리를 잡고 달리는 소금장수 신세같이 놓을 수도 멈출 수도 없다. 파국의 여러 징조가 보이는데도 꼭 잡고 계속해서 달려야만 한다. 내가 도시 외곽의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는 삶의 목적이 되었고 온 세계가 그것을 위하여 모든 역량과 꿈까지도 탕진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이다. 지옥 또는 천국처럼 낯선 것이 아니라 너무도 일상적으로 낯익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만들어낸 세계이기 때문이다. 체르노빌처럼 후쿠시마처럼 ‘매트릭스’로서의 그 세계는 바로 우리 지척에 있다.
(……) 도깨비가 사라진 것은 전기가 들어오고부터라는 시골 노인들의 말처럼, 지금의 세계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온 도깨비를 끝없이 살해한 과정이었다. 나는 이들 우리 속의 정령을 불러내어 그이들의 마음으로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내 속에 그게 정말 아직도 살아 있는 거냐?
_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