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대전 - 보통 사람의 양심에서 찾은 개벽의 길
《동경대전》, 혼탁한 세상에 새로운 삶의 지표를 제시한 동학의 핵심 경전!
《동경대전》은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1824~1864)의 글을 엮어 놓은 책이다.
최제우가 살았던 조선 후기는 내적으로는 삼정의 문란과 세도 정치의 폐해로 민심이 흉흉했으며 외적으로는 아편 전쟁의 발발로 외세의 침입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인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당시 주류를 이루던 성리학은 더 이상 삶의 지표가 될 수 없다는 것과‘하늘님의 뜻’이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데 앞장서는 서학으로도 혼란과 불안에 휩싸인 세상을 극복할 수 없다고 자각한 최제우는 새로운 사상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그 결과가 바로‘동학’이었다.
최제우는‘민중의 양심이 곧 도덕적 목표’임을 천명함으로써 성리학적 이상인 애민 정치가 아니라 민중의 도덕성에 기반을 둔 평등 세상을 지향했다. 또한 그는 모든 것을 하늘님의 뜻으로 보는 서학, 즉 기독교와 달리 ‘민중의 양심이 곧 하늘’이라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제시했다. 그러므로 동학은 민중이 도덕성의 주체가 되어 신분 차별이 없는 세상 즉, 개벽 세상을 열어야 한다는 보통 사람들의 열망을 담은 사상이 되었다. 이와 같이 이 책은 혼탁한 세상을 극복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최제우의 사상을 담은 동학의 핵심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동경대전》, 민중의 양심에서 찾은 평등 세상의 메시지!
동학의 중심 사상이 담긴 《동경대전》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동학이 어떤 사상이며 어떻게 민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 주류를 이루던 성리학과 동학의 차이, 그리고 민중에게 퍼져 나가고 있던 서학과 동학의 차이를 깊이 있게 다뤄볼 필요가 있다.
우선, 성리학적 이상인 애민 정치로 인해 혼탁한 세상을 올바른 세상으로 만드는 것과 동학에서 주장하는 평등 세상을 이루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
성리학적 애민 정치는 도덕성과 실무 능력을 갖춘 양반 관료들이 세상을 다스릴 때만이 바람직한 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그 이면에는 양반과 상민의 구분을 엄격히 해서 상민이 함부로 행동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는 민중이 자발적으로 선한 마음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최제우가 천명한‘양심이 곧 하늘’에서의 양심은 양반들만이 실현할 수 있는 선한 마음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선한 마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최제우는 세상이 혼탁한 것은 탐관오리들 때문이라는 논리, 양반 관료가 바로 서면 세상도 그만큼 좋아질 것이라는 논리를 철저히 부정하면서 민중에게 늘 자신의 존엄성을 자각하고 실천하라고 외치고 있다. 최제우는 양반 관료의 도덕성에 의해 좌우되는 세상은 막을 내리고 민중의 도덕성이 주체가 되는 제2의 문명 시대, 개벽 세상이 열린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제 서학(기독교)과 동학의 차이를 밝혀 보자. 우선 서학과 동학은 공통점이 많다. 하늘 아래 양반과 상민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과 ‘천주’라는 말을 사용하고 주문을 외운다는 점이다. 그러나 동학과 서학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기독교에서의 천주는 야훼를 의미하지만 동학에서의 천주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방법 곧‘자신의 양심’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독교에서의 평등은 상민도 천당에 갈 수 있다는 평등이고 동학에서의 평등은 신분 차별이 없는 개벽 세상, 즉 평등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경대전》, 보통 사람을 대상으로 쓴 조선 시대 최초의 민중 서적!
조선 시대에 쓰여진 거의 대부분의 책들은 양반의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유학’이라는 말 자체의 뜻이 ‘도덕성으로 무장한 사(士) 계급이 주도해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쓰여진 《동경대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민중을 독자층으로 삼아 발간된 책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양반의 자제였던 최체우가 어떻게 민중의 시각으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최제우는 양반의 자식이었지만 문과에 응시할 수 없는 신분이었고 지배 계층에 편입될 가능성이 없던 사람이었다. 10년 동안 봇짐장사를 하며 세상을 떠돌아다닌 그의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업도 상민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민중의 입장에서 고민하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지은 《동경대전》은 한문으로 쓰이긴 했지만 ‘민중의 시각에서 민중을 이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은 글이지‘민중을 다스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은 글은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최제우 사후 30년 뒤에 일어난 반봉건, 반외세를 내세운‘동학 농민 혁명(1894)’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그 역사적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