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전설 용지호
이 원고를 손에 잡는 순간, 곧 이거다! 싶었다. 이 소설의 매력은 무엇보다 건강함이다. 그리고 구체성이며 따뜻함이다. 『흑룡전설 용지호』는 우리 청소년 문학의 퇴행을 극복하고 현실을 향해 견인해 가는 건강한 힘이 될 것이다._유영진(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야기가 산만하지 않은 것이 큰 장점이었다. 특히 양재천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학교 친구들의 이야기가 두 개로 나눠지지 않고 잘 결합된다는 점이 좋았다. 좋은 작품을 만났고 덕분에 즐거운 심사가 되었다._윤성희(소설가)
이 소설이 공감에 이르게 하는 까닭은 ‘해체’의 시절에 놀랍게도 ‘결합’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알게 되고 겪게 되는 사소한 경험들이 우리 청소년들의 보편적인 현실이라면 우리는 오늘날 청소년 문제의 작은 해답을 이 소설에서 찾아봐도 좋을 것이다._안도현(시인)
용지호는 어느새 어떤 전형이 되어 버린, 겉으로는 삐딱하고 속은 깊은 소년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소박하게, 묵묵히 페달을 밟는 소설의 여정을 지켜보는 시간이 즐거웠다._차미령(문학평론가)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적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러한 점을 문학적으로 잘 형상화한 것이 이 작품의 가능성이다. 중학생 주인공의 삶 속에 작동하고 있는 네트워크 관계를 형상화하는 일은 젊은 세대의 새로운 주체를 드러내는 단초일 수 있다._김진경(시인, 동화작가)
제4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를 이끌어 낸 평범한 아이의 특별한 매력
현실 청소년들의 삶과 고민을 파고들며, 그 가운데 청소년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온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이 4회 수상작을 배출했다. 가족 해체 시대를 살아가는 어느 불량 가족의 진화를 그린 『불량 가족 레시피』, 결핍을 지닌 세 소년이 모험을 통해 숨은 성장의 비밀을 찾아가는 『검은개들의 왕』, 인생의 혹한기를 지나는 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그치지 않는 비』, 기성세대를 향한 속 시원한 일침을 날리며 세상이 씌운 틀 대신 본모습을 찾아가려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아는 척』에 이어 이번 4회 대상 수상작인 『흑룡전설 용지호』는 모난 데는 없지만 너무도 평범하여 존재감이 없는 중학생 용지호가 주인공이다. 지호가 자전거를 타면서 만난 다양한 사건들과 사람들, 그들과의 경험을 통해 얻은 동력으로 갈등을 극복하고 성장을 이뤄 가는 과정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그렸다.
심사위원들의 지지를 얻은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등장인물과 이야기의 건강함, 청소년들 일상의 섬세한 결을 살린 구체성과 작품 전반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다. 심사위원들은 이런 장점들이 ‘동시대성을 잃고 작가의 후일담으로 회귀하는 등 침체에 빠져드는 우리 청소년문학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라며 신인 작가의 등장을 반겼다. 또한 문제적 사건 없이도 차근차근 이야기를 쌓아가며 문학적인 완성도를 높인 것도 신뢰감을 준다는 평을 받았다. 가령 이 소설에선 겉으로는 비딱하고 속은 깊은 소년이라든지, 잦은 일탈 혹은 문제적 상황, 쿨한 척하는 시선이나 습관적인 말장난 등으로 표현되는 고착화된 틀은 없지만 ‘있을 법한’아이의 ‘있을 법한’사건이라는 점에서 폭 넓은 공감을 이끌어 낸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유영진 아동문학평론가의 표현대로 중학생 지호부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부모님, 파업에 동참하는 노동자까지 등장인물들은 모두 병든 사회가 던져 준 질병들을 앓고 있지만 신음하기보다 어떻게든 씩씩하게 살아가려 한다. 지호도 우정을 지키려다 왕따를 당하지만 이 소설이 왕따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좀 다르다. 심사평에서 언급한 소설가 윤성희의 말대로 이야기란 좋은 공간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넓어진다. 『흑룡전설 용지호』속에 등장하는 ‘왕따’ 문제는 교실에서 일어났지만 학교 밖으로 공간을 확장시키고 주인공에게 자전거를 태워 허벅지에 통증을 느끼게 함으로써 이야기를 두세 겹 넓히는 데 성공했다.
주연으로는 한 번도 살아 본 적도 없고, 살아 볼 기회도 없을 것 같은 ‘지질이’ 용지호가 양재천을 주름잡는 ‘흑룡전설 라이더’가 되기까지, 이 귀여운 영웅담을 완성하기 위해 작가는 치밀하게 지호의 뒤를 따라가며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이 소설이 자신의 평범함과 막연한 존재감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다수 청소년들의 내적 필요에 응답하는 진짜 청소년소설인 이유가 여기 있다.
자전거에 올라탄 순간, 누구나 전설이 된다
소설의 첫 장면은 양재천 라이더들 사이에서 ‘흑룡전설 드래곤’으로 불리는 한 녀석에 대한 소문으로 시작한다. 매일 밤 양재천에서는 등에 용 문신을 한 녀석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레이스를 펼치는데, 그가 나타나면 동물들이 호위 비행을 하고, 모세의 기적처럼 양재천의 물길을 가르기도 한단다. 하지만 자전거에서 내려온 그의 모습은 생각보다 초라하다. 경기도 평촌에 사는 중3 남학생 용지호가 드래곤의 본모습이다. 재미없는 아빠와 간섭 심한 엄마, 말끝마다 신경질을 내는 사춘기 여동생이 하나 있고, 성적은 중간인데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모르겠다. 학교생활도 변변찮다. 축구 시합에도 끼지 못하고, 담임 선생님은 한 학기가 지나도록 지호를 모르고, 여자아이들과는 짧은 인사말 나누기도 힘들다. 친구라고는 개그맨을 꿈꾸는 ‘오밤’이 유일하다. 그동안 청소년문학이 주로 고등학생들 이야기 위주였던 것에 비해, 『흑룡전설 용지호』는 남자 중학생의 일상을 다루며 독자층을 넓히고 있다.
마을버스 파업 때문에 아빠가 회사에서 얻어 온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간 지호는, 자전거 타기에 차츰 재미를 붙여 아예 평촌에서 ‘지호는 꼼꼼하고 손재주가 좋아서 치과 의사 하면 잘할 것’이라며 엄마가 등록한 학원이 있는 대치동까지 자전거로 매일 오간다. 지호는 자전거를 타면서부터 처음으로 자신이 무언가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굵어지는 허벅지처럼 지호의 자신감도 날로 늘어간다. 특히 앞서가는 라이더들을 따라잡는 달밤의 레이스를 펼치며 즐거움에 젖는다. 길 위에서 라이더들과도 친분을 쌓기 시작한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묘기 자전거라는 BMX를 타는 ‘스텔스형’을 시작으로, 썰렁한 개그를 일삼는 배불뚝이 ‘꿍따리 아저씨’도 만나고, 작업복과 안전모를 탄 채 자전거를 타는 ‘하이바 아저씨’도 만난다. 서로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모르고 각자 타는 자전거의 가격도 다르지만 이들은 함께 모여 달리고 수다 떠는 것만으로 즐겁다. 별다른 이유 없이도, 그저 좋아서 만나다 보니 거의 매일 ‘무지개다리’밑에서 모이는 하나의 모임으로 자연스레 발전한다. 그리고 지호가 ‘라 포데로사’라는 이름을 붙여 준 자전거는 지호의 모든 것을 함께하며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단짝 친구가 된다.
‘지질이’와 ‘전설의 흑룡’ 사이, 지호는 한 뼘 더 자란다
김진경 작가는 계급적 관계, 직업적 관계, 학연 지연 같은 고정적인 것들이 기성세대의 관계망이었다면 유동적이고 분열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요즘 십대들은 질적으로 다른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짚는다. 중학생 주인공에겐 자전거 동호인 모임이라는 관계가 때론 고정적 관계보다 중요해지기도 하고 삶의 힘으로 작동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발적으로 만났지만 삶의 밑바닥을 진솔하게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실질적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연령과 계급을 초월하여 모인 이 세계에서 지호는 처음으로 자존감과 안락함을 느낀다. 작가가 꼼꼼한 취재로 현장의 생생함을 살린 덕에, 독자들은 지호가 자전거를 타며 느끼는 쾌감이나, 무지개다리 모임에서 얻게 되는 좋은 에너지들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다.
지호의 학교생활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반장 ‘첼시’가 지호를 축구 시합에 기용했다가 마음에 들었는지 생일 파티에도 초대한다. 행복이 시작된다고 믿는 찰나, 첼시는 지호에게 오밤을 멀리하라며 충고한다. 알고 보니 첼시는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었는데 오밤이 자신을 괴롭혔던 무리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호는 오밤이 오해받는 이 상황이 괴롭고 불편하다. 그러는 중에도 지호는 무지개다리 모임에서 학교에서의 고민들을 얘기하며 긴장감을 조금씩 해소해 간다. 여름방학에는 다 같이 춘천으로 자전거 여행을 다녀오며 무지개다리의 관계는 무르익어 간다. 2학기 개학 날, 지호는 교실의 분위기가 어딘가 미묘하게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지각한다. 오밤을 왕따시키던 첼시 패거리는 이제 지호까지 교모한 방법으로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지질이 용지호와 흑룡전설 드래곤 사이, 지호의 이중생활은 부서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을까.
안녕하지 못한 세상을 살아가는 십대들을 위한 치료제
지호는 복수심에 불타는 첼시도 두렵고, 억울한 누명을 쓴 오밤도 불쌍하지만,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자신의 처지가 가장 당혹스럽다. 지호는 오밤을 믿지만, 잘못된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자신에겐 그럴 만한 용기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무지개다리 멤버들은 지호의 곁을 지키며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조언들을 해 준다. 지호는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고, 치열하게 그 상처를 극복해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호는 무지개다리 멤버들의 응원에 힘입어 두려움과 정면 승부하기로 한다. 첼시에게 두들겨 맞을까 봐 잔뜩 겁먹으면서도, ‘현실은 장담한 말처럼 쉽지 않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마음을 먹으면서도 어떻게든 우정을 지키고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애쓰는 이 소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자전거를 타며 심장이 뛰는 지호처럼 우리의 심장도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일에든 솔직하게 반응하고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지호의 순도 백 퍼센트의 진심이 어느새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 인생의 유일한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다.’ ‘주인공이 아닌 사람은 없다.’ 이 흔한 메시지를 현실에서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주인공은 따로 있고, 자신은 들러리이거나 심지어 등장 기회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우리가 못나서가 아니라 아직 좋은 조연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흑룡전설 용지호』는 말한다. 그것은 사람이기도 하고, 계기이기도 하고, 때로는 고난이기도 하다. 나이와 계급을 뛰어넘은 우정을 보여준 무지개다리 멤버들, 함께 고난을 겪은 오밤, 지호가 동경과 열등감 동시에 느끼는 대상인 첼시, 그리고 지호의 자전거 ‘라 포데로사’도 빼놓을 수 없다. 심지어는 고통까지도 지호가 내면의 힘을 깨워 두 발로 우뚝 서도록 도왔다.
이런 훌륭한 조연들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이 작품의 화법으로 말하자면, 집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먼지를 뒤집어쓴 자전거를 꺼내어 일단 페달을 밟는 것이다. 매일 지나는 길이라도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방법으로 가 보는 것이다. 작가는 일등부터 꼴찌까지, 모두 주인공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막막하고 절실한 순간 한 명이라도 이 책을 읽고 위로를 받고 온기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런 진심이 전해져 『흑룡전설 용지호』를 읽고 나면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평범하면서도 안녕하지 못한 나의 삶이 조금은 더 살아갈 만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