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노예제도
자본주의와 노예제도의 태생적 내연관계를 폭로하는 명저!
1944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도발적이면서도 냉철한 논저 <자본주의와 노예제도>는 자본주의의 옹호자들 및 지지자들과 불가피한 적응자들 및 순응자들뿐 아니라 비판자들 및 반대자들마저 차마 외면하고 싶을 자본주의의 근본적 치부--자본주의와 노예제도의 태생적 내연관계--를 찌르고 폭로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출간된 이후 갖가지 반론들을 유발했지만, 그런 반론들은 하나같이 지엽적이고 감상적이고 편협할 뿐 주목할 만하거나 결정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옹색한 반론들을 거뜬히 잠재운 “역사의 보물”로 극찬되기도 했다.
이 책은 트리니다드공화국 총리를 역임한 에릭 윌리엄스가 27세이던 1938년 브리튼의 옥스퍼드 대학교에 제출한 박사학위논문을 토대로 개정하고 보완하여 33세이던 1944년에 출판한 것이다. 그는 1962년 브리튼으로부터 독립한 트리니다드토바고 공화국의 독립운동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초대 총리로 선출된 이후 사망할 때까지 총리로 계속 재선되었으며, 이른바 “경험적 사회주의 정책”을 실시하여 트리니다드토바고를 카리브 해에서 가장 부유한 브리튼 연방국가로 발전시킨 “국부”로도 존경받은, 이론과 실천력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서양에서는 자본주의정치경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혀온 이 책은 현대 자본주의의 모태가 된 18~19세기 브리튼 자본주의와 노예제도에 관한 풍부한 증거자료들을 치밀하게 분석함으로써 노예제도가 자본주의의 태생적 필요악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또한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노예제도가 폐지되는 과정에 대한 기존의 감상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통념들을 비판하고 논파한다. 더 나아가 이 책은 ‘초기’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식민자본주의(또는 상업자본주의)”가 태동기부터 노예제도와 긴밀한 내연관계를 맺고 노예제도를 필요한 만큼 충분히 활용한 덕분에 ‘중기’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산업자본주의”로 이행하는 데 필수적인 경제적?심리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시사해준다.
현대 자본주의의 모태가 된 초기 브리튼 자본주의가 이용해먹고 폐기한 노예제도
산업혁명이 완결되기 전까지 브리튼과 유럽 및 북아메리카의 자본주의경제에 필요한 생산용 노동력의 저렴하고 지속적이며 안정된 공급원은 노예들, 특히 흑인노예들이었다. 18~19세기 자본주의는 그런 노예노동력을 이른바 “삼각무역”을 통해 저렴하게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노예제도 덕분에 산업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이행과정에서 성장하기 시작한 산업자본가들과 부르주아들은 기존의 노예제도를 유지하기보다는 오히려 폐지시키는 편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계산”했는데, 때마침 인도주의자들의 노예해방운동도 활발해졌다. 바로 이런 경제적 “수지타산”에 인도주의자들의 이상주의가 곁들여진 결과 브리튼에서는 1807년 노예무역이 폐지되었고, 1833년에는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으며, 1862년에는 미국에서 노예해방선언이 이루어지면서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실질적인 혹은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노예제도가 사라졌다.
흑인노예제도의 기원은 인종차별이 아닌 경제논리
에릭 윌리엄스는 “흑인노예제도는 인종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원인이고, 인종논리의 결과가 아닌 경제논리의 결과이다”고 주장한다. 그가 직접 혹은 간접으로 탐색한 다양한 출처들에서 발굴하여 이 책에 인용하는 다수의 기록들, 증언들, 통계자료들은 이런 도발적인 주장에 충분한 근거들을 부여한다. 그것들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주로 브리튼 본토 및 유럽대륙의 빈민들과 죄수들로 구성된 이른바 “계약노예들”의 존재이다. 초기 브리튼 자본주의의 발달을 선도한 식민농장주들은 식민농장을 경영하는 데 필수적인 노예들을 먹이고 입히며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 즉 “노예유지관리비용”을 계산했고, 그 결과 계약노예들보다 흑인노예들의 유지관리비가 더 저렴했기 때문에 흑인노예들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식민농장주들이 자본주의경제의 필연적인 과정인 “상품가격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자신들의 상품 즉 “흑설탕”의 생산비용을 최소로 줄여야 했기 때문에 계약노예들에 비해 더 저렴한 비용으로 부릴(유지관리할) 수 있고 노예무역을 통해 더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강한 체력을 지닌 흑인노예들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노예무역폐지, 노예제도폐지, 노예해방의 진정한 견인차는 인도주의가 아닌 경제논리
에릭 윌리엄스는 1807년 브리튼의 대서양 노예무역을 폐지시킨 진정한 견인차는 박애주의나 인도주의가 아니라 경제논리였다고 주장한다. 즉 경제논리야말로 브리튼과 유럽뿐 아니라 북아메리카의 노예무역폐지, 노예제도폐지, 노예해방을 견인한 진정한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논리를 따라 진행된 노예해방에 박애주의나 인도주의가 이바지한 역할은 아무리 크게 잡아도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물론 에릭 윌리엄스는 이른바 “성자들”로까지 존경받은 인도주의자들의 노예해방 노력을 결코 폄훼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예해방을 오직 인도주의운동의 결실로만 이해하는 감상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태도야말로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고 자본주의의 갱신 내지 갱생에 이바지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예무역과 노예제도를 폐지시킨 진짜 원인은 인도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발달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빚어지는 경제적 이익세력들(토지귀족들과 부르주아들, 식민농장주들과 산업자본가들)의 경쟁관계와 역학관계의 변동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