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

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

저자
이성주
출판사
추수밭
출판일
2019-05-24
등록일
2019-08-29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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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장면 1
조조가 원술의 근거지인 수춘성을 공략할 때였다. 원술이 농성전에 들어가자 대군을 동원한 조조는 보급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그의 앞에 놓인 선택지는 몇 되지 않았다. 흐지부지되거나, 굶어죽거나, 아니면 하극상이 일어나거나.
조조는 군량미를 담당하던 왕후를 은밀히 불러 지시했다. “이제부터 배급할 때에는 이전보다 작은 그릇을 사용하라.” 당장 식사량이 줄어들자 그동안 불만을 삭이던 병사들이 폭발했다. 조조는 다시 왕후를 불러 은밀하게 제안했다. “자네 목을 내게 빌려주게. 가족의 생계는 책임지겠네.”
조조는 왕후에게 식량을 빼돌려 사익을 챙겼다는 죄를 뒤집어씌운 다음 군졸 앞에서 목을 벴다. 병사들의 원망은 잠시간 사그라졌고, 조조는 군기를 세우며 지휘관으로서의 권위를 되찾았다.

장면 2
전쟁이 끝난 이후 논공행상에서 선조는 이렇게 말했다.
“원균을 선무공신 2등에 녹공했지만 적변이 발생했던 초기에 원균이 이순신에게 구원을 청했던 것이지 이순신이 자진해서 간 것이 아니었다. 원균은 죽기로 결심하고서 매양 선봉이 되어 먼저 올라가 용맹을 떨쳤다. 승전의 공이 이순신과 다를 바 없음에도 도리어 이순신에게 공을 빼앗긴 것이다. … 오늘날 공로를 논하는 마당에 2등에 두었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는가? 원균은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조선왕조실록》 선조 36년(1603년) 6월 26일자)
선조의 주장에 따라 원균은 이순신과 나란히 선무공신 일등에 책봉되었다.


“왜 조직에서 간신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가?”
역사와 함께한 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조직에서 간신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왕이 허락해야 등장하는
만들어진 내부의 적, 간신

정치의 계절이라는 말은 새삼스럽다. 지금 여기에서는 언제나 정치가 격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적 이슈마다 불려나오는 단어가 있다. 바로 간신이다. 간신의 사전적 정의는 군주의 눈을 흐려 국정을 뒤에서 농단하는 간사한 신하다. 정치의 역사는 이러한 간신들의 연대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래서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간신을 경계하고자 하는 이른바 ‘변간법’이 일찍부터 체계화되어왔고 정교하게 다듬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시작된 시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간신은 매 순간마다 끊이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하면 간신을 솎아낼 수 있을까?”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책들이 나름의 해답을 제시해왔다. 《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도 이와 같이 간신에 대해 다룬 흐름의 일부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낯이 익은 간신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그들이 군신을 장악하고 국가를 농락하는 과정을 추적하거나 또는 이러한 간신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지혜를 전달하지는 않는다.
대신 저자인 이성주 작가는 “왜 간신은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익숙하고 오래된 질문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무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간신을 솎아낼 수 없었다면 전제부터 바꿔볼 필요가 있다. 바로 ‘간신들은 조직에서 어떤 쓸모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역사에서 사라질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의 전환이다.
《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에서는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조선 건국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대표 간신 9인의 역사를 통해 권력과 조직의 속성을 파헤친 결과다.

간신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라를 망치는 데에는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송사》에서 유래된 유명한 격언이다. 실제로 역사를 살펴보면 암군 뒤에서 국가를 쇠망으로 이끌었던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암군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후계자 수업을 받았던 왕 또는 격렬한 투쟁 끝에 권력을 쟁취한 강력한 군주들 밑에서도 간신은 들끓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어쩔 수 없는 권력의 속성이나 조직의 한계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까닭에 대해 조금 다르게 이야기한다. 대다수의 간신은 군주의 필요에 의해 ‘발명된 존재’였다는 것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리더는 내부를 단속하고 권력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수단으로 외부의 적을 자주 활용했다. 만약 외부에서 적을 찾지 못한다면 내부에서 적을 새로이 만들어냄으로써 조직에 적당한 긴장감을 조성했다. 그렇게 권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내부의 적’ 간신은 적당히 사용되다가 그 쓸모가 다하면 조직의 오류를 모두 떠안고 버려졌다. 이때 군주는 간신을 처단해 질서를 회복하고 정의를 바로 세웠다는 명분까지 얻는다.
그리고 유일악인 간신의 숙청 이후 재편된 힘의 구도에서 군주는 다시 궂은일을 대신하며 오물을 뒤집어써줄 새로운 간신을 은밀히 구했다. 간신이 끊이지 않았던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간신은 조직을 빠르게 장악하고자 하는 리더에 의해 발명된 쓸모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신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어느 정도 새삼스럽다. 모든 리더들은 언제나 간신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권력의 속성이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간신의 등장은 피할 수 없으니
군주라면 그들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어떤 조직이 부패로 멸망했다면 간신의 농단 때문이 아니라, 이용하기 위해 발명한 간신을 관리하는 데 군주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나라를 망치는 데에는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송사》의 구절에 동의하지 않는다. 군주와 간신은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며, 다른 무엇보다 조직에서 간신은 절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한 말기 학자 유향은 《설원說苑》에서 여섯 유형의 해로운 신하, 육사신六邪臣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여섯 유형이란 자리만 보전하는 데 급급한 구신具臣, 아첨으로 연명하는 유신諛臣,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혈안이 된 간신奸臣, 타인을 끌어내리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참신讒臣, 반역하고 불충하는 적신賊臣,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망국신亡國臣이다.
망국신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육사신에서 어떤 기시감이 들 것이다. 납작 엎드린 채 그저 출퇴근만 성실히 하고,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아첨하며 동료를 뒤에서 헐뜯는 것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의 인격을 시험하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맡겨라If you
want to test a man’s character, give him power.” 간신은 간신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으며 유황불에서 걸어 나온 특별한 존재도 아니다. 욕망에 잠시라도 흔들렸을 때 누구라도 간신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익과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기꺼이 희생했던 충신이야말로 역사적으로는 희귀한 별종이었다. 익숙한 충신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이 인류가 배출한 충신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은 99.9%의 보통사람인 잠재적인 간신과 0.1%의 충신 후보들로 이뤄져 있다. 인류가 역사와 함께 고민해온 변간법이 현실에서 성공하기 힘들었던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에서는 《송사》의 저 유명한 구절보다 《고려사》에서 언급하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성찰에 더 주목한다.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 간신의 등장은 결코 막을 수 없으니 군주라면 간신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때때로 정의로우며 적당히 비겁한 보통사람들로 이뤄진 조직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한계를 찾기보다, 그들 각각이 지닌 다양한 장점에 주목해 그 역량을 최대한 북돋아주며 동시에 욕심을 견제받지 못하고 타락하지 않도록 잘 관리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희귀종인 충신을 선별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조직 관리라는 것이 간신들의 역사를 살핀 끝에 내린 이 책의 결론이다.

한국사의 대표 간신 9인을 통해 본 권력의 맨얼굴
구체적으로 이 책에서는 계유정난을 통해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한명회부터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의 핵심인물인 이완용까지 간신들의 역사를 9가지 에피소드로 정리했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어떻게 등장했으며, 어떻게 물러나게 되었는지를 후일담까지 자세히 추적해 조직에서 간신이 가지는 의미와 역사가 숨긴 맥락까지 밝히고자 했다.

1. 홍국영 “명군은 충신이 간신으로 변하기 전에 제어한다”
세종 치하에서 간신이 나타나지 않았던 까닭은 세종의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이지만, 전대의 태종이 기반을 잘 다져놨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기반이 불안정했던 정조는 특정인물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조가 어떻게 간신을 이용해 조정을 장악했고, 동시에 효과적으로 제어했는지를 홍국영의 흥망을 통해 조망한다.
2. 김자점 “이쑤시개는 적당히 쓸모 있고, 적당히 쓸모 없어야 한다”
급작스럽게 조직을 맡게 된 리더가 주변을 장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만 유능한 이의 욕망을 자극해 휘두르는 것이다. 생각이 없고, 인망도 없고, 능력도 없고 욕심만 많았던 김자점이 어떻게 왕에게 전략적으로 총애를 받다가 매국노로까지 타락했던 과정을 추적해 권력의 비정한 속성을 파헤친다.
3. 윤원형 “보통사람이 비범해지려면 미칠 수밖에 없었다”
수렴청정은 외척의 전횡을 각오해야 하는 태생부터 어긋난 통치방식이다. 다만 이러한 구조적 한계 속에서 조선사상 무수한 부패가 일어났음에도 왜 윤원형에게 유독 비난이 집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만하다. 여기에서는 언론을 틀어쥐고 권력을 장악한 윤원형이 무엇을 주장하다 어떻게 간신으로 기록되었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정리했다.
4. 한명회 “사냥이 끝난 사냥개는 이빨을 숨겨야 살아남는다”
권력을 차지하는 것은 어렵지만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렇다면 세조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삼대에 걸친 군주 아래에서 2인자로서 오랫동안 권세를 누린 한명회에게는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 그가 열과 성을 다해 부패했기에 정치적 격동기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역설에 주목해 처세란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5. 김질 “욕망에 충실하고 싶다면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까지 각오해야 한다”
인간은 한 번쯤은 사익과 공익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젊은 학자 김질 또한 그러했다. 그는 단 하루,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천수를 누리며 국정에 자신의 구상을 입힐 수 있었지만, 동시에 세간의 손가락질을 감내하며 역사의 죄인으로 살아야 했다. 여기에서는 욕망을 좇았던 선택으로 역사를 바꾼 김질의 삶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간신의 정체를 다시 들여다보고자 했다.
6. 이완용 “망국의 역사에 매국노는 없다. 매국노들이 있을 뿐이다”
지금도 매국노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완용을 보면서 한 번쯤 이런 가정을 해봤을 것이다. “만약 이완용만 없었다면 한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지만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이 없었어도 대한제국은 일제로부터 권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하지만 이완용은 당대에는 천수를 누렸고, 죽어서도 그에게 나라를 빼앗긴 이들로부터 섭섭하지 않은 대우를 받았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아이러니한 역사를 통해 간신이 어떤 조건에서 생겨나는지, 그리고 간신의 의의는 무엇인지를 살핀다.
7. 임사홍 “어떤 간신은 간신의 길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었다”
강직했던 신료가 어떻게 아들이 죽었음에도 기꺼이 잔치를 열었던 간신 중의 간신이 되었을까? 여기에서는 견제를 받지 않게 된 권력자가 어떤 최후를 맞았으며, 동시에 사림과 정면충돌했던 강직한 신료가 어떻게 간신이 되었는지를 더듬으며 오늘날 권력과 언론의 관계, 그리고 ‘역사전쟁’을 돌아본다.
8. 원균 “지도자에게는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닦아줄 휴지가 필요하다”
원균은 조선 수군을 파멸로 이끌었으면서도 선무공신 일등에 책봉되었다. 선조는 노회한 군주였음에도 원균을 이순신과 비교하며 높이 평가하고 수시로 그를 감싸주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전후 권력의 공백이 불가피했던 어수선한 시기에 무능한 원균이 군주에게 중용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들여다보면 하나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바로 권력이다.
9. 유자광 “누군가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역사의 짐승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얼 출신의 유자광은 갖은 무리를 감내하며 기어코 권력의 정점에 섰지만, 훗날 무리한 만큼의 후폭풍을 그대로 되돌려 받아야 했다. 군주에게 이용당했고, 군주를 이용했으며 그럼에도 군주만을 바라보며 살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을 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법하다. “어떤 간신은 간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간신으로 이용당하지도,
간인으로 이용하지도 말라!
법가의 경전인 《한비자》는 이렇게 말한다. “군주와 신하의 이해는 양립할 수 없다. 신하의 이익이 늘어나면 반드시 군주의 이익을 줄어든다.”
조선은 다른 중국 왕조들처럼 외유내법外儒內法, 즉 유가를 표방하지만 법가로 통치되는 조직이었다. 조선의 역대 군주들 또한 법가의 가르침을 좇아 인간의 본성에 대해 결코 낙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간신이 끊이지 않았던 까닭은 간신의 존재가 군주에게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군주를 ‘요술방망이’에 비유한다. 간신들의 상당수는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들어주는 방망이를 휘둘렀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것에 혼을 빼앗겨 죽을 때까지 휘둘려졌을 뿐이었다. 이러한 요술방망이는 먼 역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직장 상사일 수도 있고, 학교 선배일 수도 있다. 이들은 조직을 쉽게 장악하기 위해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대신해줄 수 있는 존재를 지금도 간절히 찾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대표 간신들의 역사를 빌려 《모든 권력은 간신을 원한다》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조직에서 권력을 쟁취하는 데에는 지름길이 없다. 그러니 빠르게 가기 위해 간신으로 이용당하지도, 또 간신을 이용하지도 말라. 사회인으로서 크든 작든 조직생활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간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본문 소개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왕과 신하라는 표현이 쓰여서는 안 되는 민주주의 체제인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간신이라는 단어는 언어로서의 생명을 가지고 계속 사용되고 있으며, 실제로 사용 용례에 적합한 인물들이 계속 등장한다는 것이다.
〈간신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권력이 그들을 원했기 때문이다〉 중에서

충신이야말로 인간의 속성에 반하는 비정상적인 존재다. 역사로 되새김질되는 까닭 또한 그들이 희귀하고 특별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우리의 본성은 간신에 가깝다. 인간은 나약하고, 이기적이다. 우리 보통사람들이 권력을 쥐었을 때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간신은 지옥에서 올라온 별종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나 여상하게 마주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다른 모습이다. 〈간신은 없다〉 중에서

간신은 간신을 허용한 왕과 시대가 있어야 등장할 수 있다. 신하 혼자 욕망한다고 간신이 될 수는 없다. 이를 받아들이고, 허용하는 왕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간신을 바라볼 때 이런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왕은 왜 간신을 받아들였을까?” 왕이 간신을 ‘허용’한 까닭은 결코 무능해서가 아니라 이익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신은 선악으로 평가할 수 없다〉 중에서

홍국영과 정조는 신하와 왕, 그 이상의 농밀한 감정적 교류가 있는 관계였다. 같이 죽을 고비를 넘겼고, 온갖 고난 끝에 권력을 쥐게 된 동지였다. 그런데 정조는 이 관계를 과감하게 정리했다. 이 다음의 행보는 군주가 ‘간신’의 등장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교과서적인 대응이다. 〈권신이 간신으로 변하기 전에 제어하라〉 중에서

기반이 불안했던 인조에게는 자기를 짖어줄 번견이 필요했다. 그 개는 사나우면서도 자신이 쉽게 다룰 수 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없어야 했다. 생각이 없고, 인망이 없으며 능력도 없고 만족을 몰라야 했다. 김자점이 인조에게 선택된 이유다. 〈왕에게는 적당히 쓸모없는 이쑤시개가 필요하다〉 중에서

윤원형은 권력을 잡은 뒤 언론삼사를 자신의 아래에 두었다. 우리에게 기시감이 드는 풍경일 것이다. 정권을 잡은 뒤 언론을 길들이려 하거나 언론과 각을 세우는 풍경은 한국 현대사에서 넘쳐나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언론이라는 감시견을 반드시 묶으려고 한다. 그 시도가 성공했을 때, 바로 간신이 태어난다.
〈성공하기 위해 미쳐야 했던 보통사람〉 중에서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이 끝까지 지켜냈던 가치가 있었다. 바로 조선의 왕통이었다. 그는 이씨 왕조의 명맥만은 유지될 수 있도록 일제와 협상했고, 사회 지배계층들의 지위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 결과 나라 잃은 슬픔과 분노는 오직 백성들의 몫이 되었다. 망국의 역사에서 매국노는 없다. 매국노들이 있을 뿐이다.
〈부조리한 나라를 팔먹은 부조리한 매국노〉 중에서

어쩌면 선조는 원균을 공신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를 덮고 권력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보다 더 컸을 것이다. 자격 없는 원균이 일등 공신이 된 까닭은 여기에 있다. 공정한 신상필벌은 지도자의 책임이고 의무다. 그리고 신조는 그 책임을 도외시했다. 모두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군주에게는 죄를 뒤집어써줄 내부의 적이 필요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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