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를 읽는 밤
그때의 내 표정이 어떠했을까. 지금까지 궁금하다. 당황하거나 놀라거나 뭐 그런 단순한 표정은 아니었을 거라는 건 분명하다. 나는 그녀를 단계적으로 인식했으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그녀가 목례를 보내 왔을 때는 그 여자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 상기되었으므로 반가웠고, 0.2초쯤 뒤엔 짐을 든 그녀를 그냥 지나쳤다는 기억까지 되살아나 뜨끔했고, 곧이어 그녀와 다시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 장담했던 일이 떠올라 낭패스러워졌다는 얘기다. 내가 객관적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이토록 게으르고 둔하다.
내가 말을 하는데 내 목소리 같지가 않은 거예요. 굉장히 낯선 음성이거든요. 나중에는 말의 내용조차 장애를 일으키는 거예요. 그런 현상이 시선에까지 옮아가 시야가 아리아리해지더니 급기야는 어땠는 줄 아세요? 이젠 제가 쓰는 글에까지 전염이 됐죠. 써놓고 나면 이건 당최 제 문장이 아닌 거예요. 문장은 고사하고 주부와 술부의 상응관계라든지 시제라든지 하는 게 제멋대로라구요. 지평선을 수평선으로 쓰질 않나, 있었다를 한 문장에 세 번 중복해 쓰질 않나, 엉망이예요. 언술체계가 막 무너지는 거예요, 막. 이러다간 언어를 몽땅 잊어버릴 것만 같아요.
말을 쏟아놓는 나를 그녀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갑자기 뜨악해져서 입을 다물고,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했나 곰곰이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글......쓰나요?
그녀의 표정에 갑작스런 생기가 돌았다.
저는 어머니가 소리 없이 얻어맞는 걸 보고......소설을, 처음 썼어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나도 어떤 대답을 바라고 물은 건 아니었다.
친아버지는 제가 열두 살 때 폐렴으로......죽었어요. 어머닌 일본 남자한테 재가했는데, 이틀이 멀다 하고 주먹으로 맞았어요.
자식들이 볼까봐 어머니는 비명을 참았고, 의붓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주먹과 발길로 폭행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탈......피하고 싶지만 될 수가 없어요. 자기 영토에서 문학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도 바로 그점 때문이에요. 영토를 갖지 못한 작가는 소......외감에서 벗어나기 힘들거든요. 숙......명적으로 벗어 날 수 없는 건지도 몰라요. 보세요, 제가 일본에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특이한 제......재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재일 한국인 2세의 재일 한국인 이야기. 여기서 그들은 부분적인 문학적 효용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발견하고 인정하게 된 거죠. 그런데 제가 그런 이야기를 집어치워 봐요. 작가로서의 김유미는 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