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과 당신
‘구름주스Cloud Juice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물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판매되는 고급 생수로, 빗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빗물을 마신다니,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비를 맞는 것조차 꺼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비를 피할까? 무엇보다 산성비에 대한 우려가 큰 탓이다. 과연 산성비는 얼마나 위험한 걸까? 빗물은 어느 정도의 산성일까?
서울대학교의 한무영 교수는 빗물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산성비 폐해는 괴담일 뿐,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10여 년 동안 빗물모으기운동을 하며 빗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해온 한무영 교수를 만난다. 그의 말을 통해 산성비의 실체와 빗물을 받아 써야 하는 이유, 그리고 서울대와 스타시티의 빗물 시설, 베트남에서의 빗물봉사활동 현장 등 빗물의 행복한 부활을 만나본다.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빠진다?
한국에서는 ‘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말은 상식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한무영 교수는, “정말 그렇다면 내가 머리카락을 다 심어주겠다!”며 이 말을 강하게 부정한다. 한 교수에 따르면 콜라나 맥주, 오렌지 주스, 사과즙, 요구르트 같은 것들이 산성비보다 100배, 1,000배나 더 강한 산성을 띤다. 유황 온천도 그렇고, 샴푸나 린스도 산성비보다 훨씬 강한 산성 제품이 많다.
그러면 산성비가 내려 숲을 죽이고 토양을 산성화시킨다는 상식은 어떤가? 한무영 교수는 “도대체 어느 나라의 언제 적 이야기냐?”고 되묻는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는 모두 산성이다. 깨끗한 대기 상태에서 내리는 비도 산성이다. 대기오염이 심한 곳에서 내리는 비는 좀 더 강한 산성이 된다. 그러나 땅에 떨어지면 금방 중성, 알칼리성으로 변한다. 그런데 무슨 수로 숲을 죽이고 토양을 산성화시키느냐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 실린 ‘산성비의 폐해’는 ‘산성비 괴담’ 수준이다. 한무영 교수는 설령 그 ‘산성비 괴담’이라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은 1970년대나 1980년대의 유럽이나 미국 일부 지역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산성비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무영 교수가 쓴 <지구를 살리는 빗물>이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렸다. 2011년 새학기부터 학생들은 이제 그의 글을 읽고 그의 이론을 배울 것이다. 고등학교 과정과 중학교 과정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부딪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기오염 때문에 빗물은 믿을 수 없다?
고춧가루가 조금만 날려도 기침을 한다. 그러나 코에 자극을 준 만큼의 고춧가루를 물에 타면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한다. 그만큼 적은 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기오염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고 기계장치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오염물질을 내뿜는 양이 많이 줄었다. 실제로 오염물질을 규제한 후 가솔린에서는 납이나 황을 제거했고, 엔진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질소산화물마저 아주 적게 배출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황이나 질소산화물을 배출하지 않는 천연가스로 운행되는 차나 전기자동차도 만들어져서 실제 운행되고 있다.
한무영 교수는 아주 특별한 대기오염 사고가 나지 않는 한국에서 강한 산성비가 내릴 일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물론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에서 비가 내리면 처음에는 황이나 질소산화물, 분진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양이 아주 적고, 비가 내리고 대략 20분 정도가 지나면 오염물질들은 다 씻겨 내려간다고 한다. 그 뒤부터는 거의 증류수에 가까운 물이 된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빗물은 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던 것이 다시 떨어지는 것이다. 그야말로 깨끗한 증류수다.
산성비에 대한 편견은 왜 깨지지 않는 걸까?
한무영 교수의 빗물 이론은 환경론자들이나 개발론자(토목마피아) 모두에게서 외면당하고 있다. 환경론자들은 그동안 산성비를 통해 대기오염, 기후변화, 환경 재앙을 경고해왔다. 그런데 그런 산성비는 없다, 또는 아주 드물다고 하니 그의 생각이 쉽게 받아들여질 리 없다. 또 개발론자들은 빗물을 활용하면 대규모 토목사업이 필요 없다고 하니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2001년 한무영 교수는 빗물연구센터를 사비로 설립해 운영해왔지만 그의 빗물모으기운동에 관심 가지는 이는 드물었다. 왜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는 걸까?
“빗물은 물 문제를 해결하는 아주 중요한 열쇠로, 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거든요. 그리고 빗물을 이용하면 대규모 토목사업의 필요성이 많이 줄어듭니다. 토목사업은 큰돈이 오가는 일이고요. 그러니 만만찮은 저항을 예상할 수 있는 거죠.”
한무영 교수는 또 “산성비는 사실 물 문제가 아닙니다. 대기오염에 대한 경고였죠. 그 덕분에 오늘날 전 세계의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와 자동차의 배기가스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졌잖아요. 그러니 옛날의 산성비 이론도 어쩌면 제 역할을 한 셈입니다”라며 이제는 산성비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은 물 부족 국가다?
유엔은 한국을 물 부족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정부도 10여 년 전부터 한국의 물 부족 문제를 거론해왔다. 물 부족 문제는 댐 건설이나 4대강사업 등 대규모 토목사업을 위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한국은 물이 얼마나 부족한 걸까? 한무영 교수는 한국이 물 부족 국가라는 이야기에 대해 정면 반박하고 있다. 물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사용량과 필요량을 지나치게 부풀려 계산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 내리는 빗물의 양은 대략 1300억 톤인데, 그것의 1~2%만 제대로 받아도 물은 부족하지 않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주로 강을 중심으로 물 관리를 해왔다. 강을 막아서 댐을 만들고, 그 댐을 통해서 홍수나 가뭄의 문제를 해결해왔다. 수돗물도 강물을 가져다가 정수해서 공급한 것이다. 그런데 비는 강에만 오는 것이 아니다. 천지 사방 어디에서나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