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시간 - 인문학자 한귀은이 들여다본 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와 그림
나를 읽는 것 같은 이야기, 나를 그린 것 같은 그림…
그녀들의 시간을 읽는 것은 내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디쯤을 지나고 있을까?
여자에게 시간이란 어떤 의미일까
여자에게 시간이란 어떤 의미일까. 지나온 시간은 종종 돌아보게 하지만 별것 아니었다고 넘기게 되는 시간이고, 다가올 시간은 별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어떤 것도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다. 한 발짝 물러나 거리를 두고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 시간을 현재 바삐 겪고 있는 중에는 객관적인 시선을 자주 잊는다. 지난 시간은 아쉽기만 하고 다가올 시간은 두렵기만 하다.
이 책은 열둘, 스물여섯, 서른넷, 서른아홉, 마흔둘, 쉰, 예순셋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담았다. 내가 겪었고, 겪고 있고, 겪게 될 장면들을 보며, 나는 과연 ‘여자의 시간’ 중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가만히 사색하게 되는 책이다.
공감과 성찰을 동시에 하게 해주는 책
《모든 순간의 인문학》 《가장 좋은 사랑은 오지 않았다》 등을 쓴 인문학자 한귀은은 그동안 주로 여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안겨주는 인문에세이를 써왔는데, 인문학이 삶에 관해 질문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에 지금 여기 살아있는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10대부터 60대까지 각 시기별 성장기를 그림이 있는 옴니버스 에세이로 풀어냈다.
각각의 글이 단편 소설 같은 느낌을 주지만, 소설가나 비소설 작가가 아니라 인문학자의 시선이기 때문에 여성의 내밀한 부분을 포착하고 보여준다. 또한 중간중간 글의 흐름과 관련 있는 명화들을 배치하고 저자만의 인문학적 성찰을 담아 깊은 울림이 느껴진다. 한편으론 소설을 읽는 듯, 한편으론 인문서를 읽는 듯, 공감과 성찰을 동시에 할 수 있다.
그때니까 불안한, 그때니까 소중한 성장통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람은 완전히 태어나기도 전에 죽는다고 했다. 성장은 끝이 없다는 말이고, 온전히 성장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 성장한다는 것은 더 지혜로워지고 더 인내심이 강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혼돈을 수용하는 능력이 더 생긴다는 거고, 불안 속에서도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책 속의 일곱 명의 주인공들도 그때니까 불안한, 그때니까 소중한 성장통을 겪는다. 피아노 콩쿠르에 예쁜 드레스를 못 입은 열두 살 하영이, 백화점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른 기간제 교사 명은, 아이를 가지기 전까지 언니를 멀리했던 서언, 별거 후 도서관에서 답답한 생활을 살고 있는 진숙, 아빠의 외도에 대한 엄마의 대처가 이해 가지 않는 고등학생 딸, 끊임없이 새로운 공간과 생활을 찾으려는 미자, 치매 노인을 모시고 살고 있는 예순셋의 여교수 등.
그녀들의 시간을 통해 내 시간을 돌아보다
어떻게 보면 특별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치 나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이유는, 그녀들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시간을 읽는 것은 내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다. 저자 또한 “간혹 내 삶도 누군가의 삶을 반복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더욱 그러했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쓰는 것은 내 시간을 새로 사는 길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책을 덮은 후 자기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어디쯤을 지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