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그대
내 인생이 남 보기에 그렇게 안되어 보일 만큼 실패한 걸까?
그러자 괜히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아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자기가 동료들과 세상 사람들을 멋지게 속여넘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세상 사람들 앞에 은닉하고 있는 것은 남루한 옷차림의 이도령이 도포 속에 감춰가지고 있던 마패 같은 것은 아니었다.
설사 그가 집에는 한푼도 들여놓지 않고 예전의 씀씀이대로 그것을 하룻밤 술값으로 날려버린다 하더라도, 역시 상관없었다. 문자는 어제 그런 일 때문에 더 이상 마음 상하지 않았다. 한수는 그녀에게 천 개의 흉터를 내었을 뿐, 그녀가 그 흉터를 스스로 딛고 일어선 지금에 이르러서 그는 이미 그녀의 맘속으로부터 지나가버린 그 무엇이었다. 그가 무자비한 칼처럼 그녀에게 낸 상처 하나하나를 딛고 일어설 때마다, 문자의 정신은 마치 짐을 얹고 또 얹고 그러는 동안 자기 속에서 그 짐을 이기는 영원한 힘을 이끌어낸 불사의 낙타 같았다.
세상에, 얼마나 변변치 않은 년이었으면 집 안을 그 꼴로 해놓고 산단 말이우. 미리 겁부터 줄려고 뭘 좀 때려부술까 해도 눈에 띄는게 있어야지. 없다없다 해도 손바닥만한 경대조차 없는 여편네는 내 생전 처음이라니까 한수의 아내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실은 문자의 살림이란 게 캐비닛 하나뿐임을 보고 속으로 적이 안심했었다.
그는 마치 돈 없는 주정뱅이가 어쩌다가 값싼 술집을 발견하고도 긴가민가하여 자꾸 주머니 속의 가진 돈을 헤아려보듯이, 문자가 과연 자기가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자기와 살아줄 것인지를 알고자 끊임없이 탐색의 눈초리를 번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