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신화와 전설을 역사로 바꾼 인류 최초의 모험
《역사》, 조사와 증거를 통해 역사적 사건을 기록함으로써 ‘역사학’의 초석을 세우다!
《역사》의 저자 헤로도토스, 기원전 5세기에 살았던 그가 오늘날까지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헤로도토스 이전에도 역사적 사건을 다룬,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의 저자 호메로스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바로 신화와 인간의 행동이 뒤섞여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조사와 증거 그리고 수많은 탐구와 관찰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사고로 역사적 사건을 기록했다는 데 있다.
또한 그는 확인된 과거의 사실들을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닌, 사건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 본질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헤로도토스는 특히 사건의 전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사건이 다른 사건뿐만 아니라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하나의 형식으로 통일했던 것이다.
또한 《역사》는 기존의 ‘시’ 형식의 글쓰기 단계를 넘어 ‘서사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당시 대표적인 역사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는 서사시의 형식을 띄고 있으나, 헤로도토스는 보다 합리적인 탐구를 위해 ‘시’가 아닌 ‘산문’ 즉 이야기 형식으로 역사를 썼다. 그는 뒤얽힌 갖가지 개별적인 요소들을 적절한 종속관계나 배열로 결합시켜 놀랄 만한 하나의 길고 세밀한 이야기로 만들어낸 것이다.
《역사》는 헤로도토스 자신이 밝혔듯이 “인간의 행동을 사람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썼다.”라는 점―‘신’이 아닌 ‘인간’이 했던 일에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에서 ‘신의 역사’를 ‘인간의 역사’로 바꾼 전환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역사》, 동서 대 격돌을 자유의 관점에서 보다
‘페르시아 전쟁사’로도 불리는 이 책은 기원전 492년부터 479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벌어진 페르시아(동양)와 그리스(서양)의 전쟁을 중심축으로 놓고 그리스와 소아시아, 특히 페르시아의 성장 과정을 상세하게 서술한다.
헤로도토스는 동양과 서양이 맞붙은 최초의 전쟁을 두 문화의 정치제도의 차이, 즉 전제 정치와 민주정치 사이의 충돌로 파악했다. 또한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사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전력과 군비 모두 엄청나게 우세했던 페르시아에 맞서서 싸운 그리스인의 ‘자유를 위한 저항 정신’에 주목했다. 그는 분열돼 있던 전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유를 지켜내려는 의지로 똘똘 뭉쳐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그 교훈을 후세에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역사》, 그 시대의 풍속과 지리, 전승 등 방대한 기록이 담긴 서양 최초의 역사서
이 책에서는 페르시아를 포함한 소아시아 지역의 지리·풍속·종교 등 다양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말하자면 《역사》는 지리적으로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당시의 전 세계를 망라하고, 연대적으로는 기원전 585년 철학자 탈레스의 일식 예언에서부터 기원전 479년 세스토스 함락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에 걸쳐 동서 문명의 역사적 흐름과 동서 문명의 대충돌을 일관성 있게 기술했다.
물론 일화적인 요소가 많고 신의 뜻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등장하고 있어, 근대적인 역사학의 입장에서는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시대의 풍속과 지리, 전승 등 방대한 기록을 담고 있어 페르시아 전쟁사의 사료로서뿐만 아니라, 초기 그리스 도시 국가의 역사와 이집트인이나 스키타이인 등 다양한 민족에 대한 기록이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역사》는 이후 서양 역사 서술의 기준이자 모범이 되었으며 ‘서양 최초의 역사서’로 그 중요성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